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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종지도'에 해당되는 글 1건
2009.04.04 18:30
지난 달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짧게 쓴 글이 있다. 바로 앞에 있는 글인데, 시간도 없고 남들과 나눌 만큼 깊은 생각도 없어 옛날에 어느 게시판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올렸다. 그런데 그 글을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노회찬이 쓴 글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글이다. '세계 여성의 날'의 유래를 밝히고, 그 정신을 좇아서 여성운동을 정치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함을 역설한 글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내에게 붉은 장미를 건넴으로써 자신의 다짐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으니 어쩌면 이리 아름답게 글을 맺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만 내가 쓴 글에는 그만한 깊이나 의지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기껏 일 년에 한 번 꽃으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로 때우려 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다. 결국 나도 한낱 수컷에 지나지 않을 뿐임을 스스로 고백한 꼴이다. 

여성운동의 지난한 역사를 돌이켜보면, 여성의 권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원래 남성들이 너그러워서? 물론 여성 인권을 위해 성심껏 도운 남성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성과 여성 가운데 남성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이상 여성운동에 뜻을 같이한 남성은 소수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엄마의 과거에, 우리 아내의 현재에, 우리 딸의 미래에 강력하고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고 끼치고 있으며 앞으로 끼칠 테지만, 기득권자로서 정치적, 경제적인 이익에서 자유로울 아버지, 남편, 아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굳이 '삼종지도'[각주:1]를 들먹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따라서 분명하다. 여성의 권리는 여성이 쟁취해야 한다.  

여성 스스로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투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운동이 모든 여성이 함께해야 하는 운동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또한 중요하다. 남성과 여성이 평등한 세상은 몇몇 여성이 사회적으로 성공한다고 이룰 수 있는 세상은 아니다. 요즘 '골드 미스'라 불리는 여성들이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잘나가는 여성이 꽤 있다는 소식이 나쁘지는 않다. 그렇지만 전체 여성이 처한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다. 2005년 자료를 보면 여성 임금은 남성 임금의 61%에 지나지 않으며, 여성 세 명 가운데 두 명은 비정규직이다. 지난 1년 동안 일자리를 잃은 103,000명 가운데 남성은 19,000여 명이지만 여성은 무려 84,000여 명이라고 한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현실은 몇몇 잘나가는 '골드 미스'로 덮어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쯤에서 고백해야겠다. 여성 문제와 관련해 뭔가 대단한 경험이 내게 있는 것은 아니며, 이 문제에 관심이 많아 열심히 공부한 것 또한 아니다. 내가 사회적으로 보잘것없는 '차상위자'기는 하지만,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느껴 본 적이 나는 없다. 그리고 나는 잠을 줄여 딴청을 필 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절대 아니다. 다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하나 있을 따름이다. 그것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것이다. 뭔가가 되기를 바라고 뭔가를 가지고 싶은 마음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누구나 똑같이 욕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하여 남성에게 허용된 것이 여성에게는 허용될 수 없단 말인가?  

그렇다고 여성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은 사회를 남성들이 두려워할 이유는 없을 듯하다. 이치와 도리에 맞게 돌아가는 사회, 상식에 어긋나지 않게 움직이는 사회야말로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충분히 누리며 행복할 수 있는 사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난 이 세상의 반쪽인 여성들을 응원할 것이다, 열렬히.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책에서 한 구절을 인용한다. 

남성 주체의 해체는 여성 주체의 해체를, 그리고 여성 주체의 해체는 남성 주체의 해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동일은 같은 것을 차이에서 밝힌 것이고, 차이는 다른 것을 동일에서 밝힌 것"이라는 원효 대사의 <금강삼매경론>을 원용해 위의 주장을 풀이한다면, 남녀의 평등은 같은 인간이라는 문제를 차이에서 밝힌 것이고, 남녀의 차이는 다른 것을 같은 인간이라는 문제에서 밝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와의 대화> 169쪽, 송두율 씀, 한겨레출판 펴냄.
  1. 三從之道: 여자가 마땅히 좇아야 할 세 가지 도리를 말한다. 어릴 때는 아버지 뜻을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며,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 뜻을 따라야 한다는 뜻. 여성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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