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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에 해당되는 글 2건
2009.08.17 14:00

마크 트웨인이 그랬다고 한다. 

고전이란 사람들이 칭찬하면서도 결코 읽지 않는 책이다. 

어느날 문득 책장에 꼽혀 있는 <홍길동전>(보리출판사, 2007)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홍길동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홍길동전>을 읽게 된 건 이 때문이다. 고작 객기를 부린 것이었지만 그래도 좀 고상하게 부리고 싶었다.

<홍길동전>은 조선 시대 광해군 때 허균이 지은 소설로 우리나라 한글 소설의 효시다. 이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부분은 홍길동이 이름 있는 홍씨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서자라는 이유로 온갖 천대를 받으며 자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오니 어찌 사람이라 하오리까”(17쪽)라고 또박또박 대꾸하는 장면에서는 그 설움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결국 길동이 집을 떠나는 것으로 그 다음 부분이 시작된다. 길동은 정처 없이 헤매다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와 사는 곳’(37쪽)에 이르게 되고, 자신의 뛰어난 재주로 활빈당을 이끌며 조선 팔도를 들쑤셔 놓는다. 염불보다는 잿밥에만 마음이 쏠린 중과 패악스런 탐관오리들을 혼내 주고 그 재물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준다. 마지막 부분은 병조판서에 제수된 길동이 활빈당과 그 식솔 3,000여 명을 이끌고 조선을 떠나, 율도국이라는 새 세상을 건설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허균은 이달에게 시를 배웠다고 하는데, 바로 스승 이달이 서출이었다고 한다. 품은 뜻이 높고 그럴 능력 또한 충분히 갖추었음에도 서얼이라는 이유로 옥당(홍문관)에 참례하지 못’하고 ‘선전관이 될 수 없는 몸’(70쪽)이었다. 허균은 조정에 나아갈 기회조차 박탈당한 스승과 동기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적서 차별의 불합리성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자라는 족속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조선 사람들은 바로 몇 해 전 임진왜란을 겪으며 양반 사대부들이 얼마나 무능하고 엉뚱한지 직접 겪어 보았다. 오죽하면 임금이 도성을 버리고 의주까지 파천하고는 여차하면 명나라로 망명하려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홍길동전>에 담긴 온갖 탐관오리들과 그들에게 뇌물이나 챙기는 조정 대신들에게서 양반입네 하는 족속들의 무능하고도 사대적인 모습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어찌 보면 허균이 역모죄로 참형된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기존 체제를 거침없이 까 대는 사람을 권력이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허균과 <홍길동전>에도 한계는 있다. 첫째, 기존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조선이란 사회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다. 인간을 임금과 백성으로 나누고, 백성을 사대부와 양민과 천민으로, 혹은 사내와 계집으로 엄격하게 나누어 놓은 신분제도라는 거대한 차별에 견주면 적서는 차라리 사소한 문제였을 테지만, 신분제도 자체에 대한 고민과 이를 타파하려는 낌새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홍길동은 이상 사회인 율도국을 건설해 놓고도 스스로 신분제도의 정점인 왕으로 등극한다. 오히려 기존 체제를 이용해 한자리 꿰차기까지 한 것이다. 둘째로, 일부다처제에 대한 아무런 반성이 없다는 점이다. 보리판 <홍길동전>에는 그 내용이 없지만 원문을 보면 홍길동에게 아내가 두 사람 있었다. 백 씨 부인과 조 씨 부인이 그 둘이다. 아내가 둘 이상이라는 것은 적서 차별이 생길 수밖에 없는 조건이 아닌가? 한편으로는 이 두 가지 한계가 허균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닐 테다. 시대의 한계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렇지만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허균이 조금 더 깊이 있게 사고를 밀고 나가지 못한 점은 무척 아쉽다. 
  
“재상집에서 천한 몸으로 태어난 사람이 너뿐 아니거늘 어찌 이리 버릇없는 말을 함부로 하느냐?”(17쪽) 

이 말은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자, 홍 판서가 한 대답이다. 나는 이 구절이 <홍길동전>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그런데 이 말은 홍 판서만 한 게 아니다. 

“재상집에서 천한 신분을 타고난 사람이 어디 너뿐이더냐?”(33쪽) 

놀랍게도 이 말은 길동의 어머니 춘섬이 한 말이다.   

나는 요즘 이 말이 이렇게 들린다.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이 어디 너뿐이더냐?” 

조선 시대에 서자들이 서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기회조차 박탈된 채 그 차별에 울어야 했다면, 지금 우리는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그 차별에 피눈물 흘리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사람이 어디 너뿐이더냐?’라는 말 한마디에 인간답게 살 권리를 포기하고 잠잠해야 한단 말인가? 이 뿐만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돈이 없으면 배우지도 못하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가난이 가난을 대물림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도 ‘배우지 못한 사람이 어디 너뿐이더냐?’라는 말 한마디에 배울 권리를 포기하고 우리 아이에게 가난이 대물림되는 것을 뻔히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는 <홍길동전>에서 배워야 한다. 길동이 적서를 차별하는 집을 떠나 활빈당을 조직했듯이, 주자학에 빠져 뼈와 살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굳어 버린 조선 팔도를 휘젓고 나라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았듯이, 그리고 끝내는 새로운 세상을 이루어 적서 차별을 끊었듯이 우리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 어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단 말인가? 

헤겔은 <역사철학>이라는 책을 쓰며 그 서문에 이런 말을 남겼다. 

“경험과 역사가 가르치는 바는 이러하다. 국민과 정부는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거기서 얻은 원칙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험과 역사에서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단 말인가? 이제는 헤겔의 비야냥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웃자고 덧붙이는 글

01. 
길동이에게 서자로 태어나지 않을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원문을 보면 홍 판서가 용을 품에 안는 태몽을 꾸고 정부인 유 씨에게 가 은근히 수작을 거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부인 유 씨가 비루하다 홍 판서를 내친다. 홍 판서는 부인의 지식 없음을 한탄하고 여종 춘섬을 침실로 끌어들인다. 곧 길동이 서자로 태어난 것은 목석 같은 부인 유 씨 탓이 크다. 이 황당하고도 당황스런 이야기를 왜 넣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말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부인 유 씨가 임신을 했으면 홍길동 같은 아이는 낳지 못했을 거 같다. 적자 홍길동이 적서 차별이라는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아마 작품을 위해서 홍길동은 서자로 태어나야 할 운명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02. 
재미있는 건 홍길동 때문에 골머리 썩은 왕이 바로 세종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아는 세종은 성품이 어질고 지혜로운 임금으로, 할아버지 태조가 세운 조선의 기틀을 굳건히 다졌다. 단연코 조선 시대 임금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임금이었다. 그렇지만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세종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얼마나 아랫 사람들을 단속하지 못했으면 사모관대를 걸친 벼슬아치치고 탐관오리 아닌 자가 없으며, 그 가렴주구가 얼마나 혹독했으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데가 깊은 산골밖에 없었겠는가? 그리고 지혜롭지도 않다. 어리숙하게도 홍길동을 병조판서에 제수하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허균에게 무슨 원한이 있어 성군 세종을 이렇게 깎아내렸는지 궁금하다. 소설일 뿐이라고, 창작일 뿐이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 말이다. 

03. 
이런 '무협' 소설을 볼 때마다 아쉬운 게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개발할 게 아니라 차라리 축지법을 연구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석유 때문에 머리 싸매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화장이나 성형 기술보다 먼 옛날 도사들이 부렸다는 둔갑술을 계승해 발전시켰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요즘도 화장술이나 성형 기술을 일컬어 변장술, 둔갑술이라고는 하지만, 홍길동이 부린 둔갑술이야말로 진짜 '원조'며, '원천' 기술 아닌가? 축지법이든 둔갑술이든 며느리도 모르게 몇몇 제자에게만 몰래 몰래 전해 준 도사들의 밴댕이 같은 소갈머리가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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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3 17:07
수요일 저녁마다 김수행 교수와 함께 비주류 경제학(마르크스 경제학을 에두른 말)을 배우고 있다. 한물간 경제학이라는, 그리고 마르크스 개인에 대한 비난, 이를테면 하녀와 놀아났다느니, 엥겔스와 어쨌다느니, 가장으로서 무능했다느니 하는 주류 쪽의 비웃음에서부터 어리석게도 19세기 눈으로 20세기를 바라보았다는 비주류의 자기비판에 이르기까지 어디 하나 따뜻한 격려 한마디 없지만,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이 묵묵히 배우려 모여 든다. 글쎄 모두들 돈 되지도 않는 것을 배워 뭐 하려고들 그러지? 몇일 전에 본 영화 얘기 해 줄게. 제목은 <브래스드 오프>(Brassed Off).

1994년 영국 요크셔에 있는 그림리(Grimley) 탄광은 존폐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정부와 자본가는 사양 업종인 석탄 산업을 정리하려고 하고 노동자들은 자신의 삶과 지역 공동체를 지키려 하고, 결국 상당한 보상금을 받고 폐쇄에 동의하든지 수익성을 다시 조사하든지 투표로 결정하기로 한다.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그림리 탄광밴드(Grimley Colliery Band)가 전국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렇지만 지휘자 대니는 쓰러져 입원하고, 아들 필립의 아내는 아이들과 집을 나가고 사채업자들은 살림을 다 실어 내가고, 앤디는 글로리아와 연애에 빠지고 글로리아는 배신자로 몰려 밴드에서 쫓겨났다가 오해가 풀려 다시 들어오고. 몰래 병원을 빠져나온 대니는 알버트 홀에서 우승 트로피를 거절하며 짧은 소감을 밝히는데......

1979년 마가렛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영국에서는 사회보장제도가 축소되었고 국영기업이 민간에 불하되었으며 (주로 부자에게 부과하던) 세금이 줄었다. 김수행 교수 말로는 보수당이 집권하게 된 것은 웃기지도 않는 사건이다. 보수당이 집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면서도 집권 노동당에 실망한 노동자들이 보수당에 투표했기에 보수당은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단다. 이는 당시 노동당이 어설픈 타협으로 자신의 지지 기반을 잃었기 때문이란다. 이와 비슷한 일이 지금 독일 사민당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고, 이와 반대로 '공약대로'를 외친 프랑스 사회당은 몇해 전에 우파 정부를 갈아치웠다.

다시, 이 세 가지, 사회보장제도 축소, 국영 기업 민영화, 세금 감면은 사실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다. 보수당은 먼저 세금을 낮췄는데 이는 자신의 지지 세력인 부자들-세계 보수정당의 지지 기반이 몇 명 안 되는 부자, 고상한 척하는 상류층, 생각할 줄 모르는 지식인들이라는 공통점은 새겨 놓을 만하겠지-을 위한 조치였다. 그렇게 해서 부족해진 예산 때문에 모든 사회 구성원을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축소되었고 그래도 부족한 예산을 채우기 위해 국영기업을 팔아 돈을 만든 것이다. 그래, 대처가 영국병을 고친 철의 여인이라는 찬사를 얻기는 했다만 그 나라 사람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이지?

이 영화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이 그것이다. 우리 솔직해지자고. 그것은 허위의식일 뿐이라고. 거의 모든 사람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지역 공동체는 해체되었으며 빈부의 격차는 더 심해졌는데, 그러면 보수당 정부가 무엇을 이루었다는 말이지? 개개인의 삶이 박살나 버렸는데 '염병할' 대처의 명성이 무슨 소용이지?

"음악만이 중요하다 생각했죠. 그렇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어떻게 사람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10년 동안 정부는......"
대니의 수상 소감

"하느님, 그래 대단한 양반이지. 그런데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존 레논과 앤즐리 탄광의 젊은이 셋을 데려가고 이제는 우리 아버지까지 데려가려고 하면서 마가렛 '젠장할' 대처는 왜 살려두는 거지?"
필립

내가 이 영화에 나오는 음악 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곡은 <대니 보이>(Danny Boy)라는 곡이다. 그 곡은 대니(원래 이 대니가 그 대니는 아니지만)가 입원했을 때 동료들이 연주해 준 곡이다. 제일 멋진 장면이지. 탄광 폐쇄가 이미 결정되었기 때문에 다들 마지막 연주라 생각하고 모였다. 한밤중에 유니폼을 입고 광부 헬멧을 쓰고 병원 뜰에서 연주하는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눈에 무엇인가 맺히고 가슴 뭉클해져 벅차오르고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그래, 우린 해낼 수 있어. 영광스런 그날을 우린 이룰 수 있단 말야!" 그렇게 그렇게 희망을 느껴. 허무 덩어리라고 믿는 이 세상에서 희망을 느낀다는 거짓말 같은 일이 나에게 벌어진단 말이야. 절망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널부러져 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만들어 가는 광부들의 의지와 자부심에 눈물이 나.

전국 대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연주하는 <위풍당당행진곡>. 상처받았다며 주저앉지 않고 딛고 일어서는, 이겨내는 그 성숙한 당당함. 그 연주가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마스터 키튼>이라는 만화를 보면 이런 문구가 있더라. '시합에서 많이 질수록 승리의 기쁨이 큰 것이라구'

해마다 이맘 때면 친구들에게 묻는다. "11월 13일이 무슨 날인지 아니?" 거의 해마다 묻는 말이지만 잊혀 가는 그날과 그 사람. 안타깝지만 이제는 그 이름을 말하기도 썰렁해졌다. 그래도 내가 자꾸 되새기는 건 이것이 내게 남은 마지막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잊는다면 난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나마저 잊는다면 그 누가 기억해 줄까. 그래, 어찌 그를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다시 마르크스를 붙잡는 것은 무엇이 중요한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가 마르크스가 그리고 전태일이 깨우쳐 주고 외치고 싶었던 것은 사람, 나아가 생명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이었겠지. 그것은 우리가 정말 고집 부려야 할, 놓을 수 없는 것이다. 나중에 신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고 싶다. 솔직하고 싶고 처음으로 돌아가 조심스레 첫 발자국을 찍고 싶다. 다시 묻고, 더불어 생각하며. 힘들겠지만 조금이라도 내가 도움이 된다면. 조금이라도 내가 도움이 된다면......

“사랑하는 친우여, 받아 읽어주게.
친구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 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꺽어 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고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내 좌석을 마련하여 주게.
......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데, 굴리는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전태일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

1970년 11월 13일은 전태일이 분신해 죽은 날이다. 조금이라도 우리 역사를 아는 사람은 그가 왜, 어떻게 죽었는지 알 것이라 생각한다. 모른다면 이번 기회에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서점에 가면 돌베개 출판사에서 낸 <전태일 평전>이라는 책이 있다. 사실 난 다 읽지 못했다. 몇 페이지 읽다가 그만 울어 버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책을 펼치면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해서 엄두도 못내고 있다. 난 이 부질없고 기약 없는 삶은 서둘러 끊어 버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죽어서까지 자신의 돌덩이를 굴리려 하는 그 사람 앞에서 난 부끄러워 할 말을 잃었다.

이제는 이런 슬픔이 이 땅에서 사라졌기를 바라지만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전태일이 다시 분신하더라도, 예수가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더라도 사람들은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밥 먹을 것이며 연애할 것이며 기도할 것이다. '아들 대학, 남편 승진' 하며. 이런 현실 속에서 신은 무얼 하고 계시는가? 예수 믿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힘이 되겠는가? 이런 절망을 언제까지 보고만 있어야 한단 말인가?

가끔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면 난 아마 죽어 버리는 것을 택할 것이다. 살아남았다는 비애의 버거움에 견주면 사라져 버리는 편이 훨씬 더 깔끔하겠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대신해 죽은 자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 또한 버릴 수 없다. 일단 살아남았으니까. 그리고 다른 억울한 희생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잊지 않는 것, 기억하는 것. 남아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예의란 이런 것이 아닐까? 우리가 잊은 '척'한다면 그래서 외면한다면(사실 외면은 적극적인 행위다) 그 역사는 되풀이되겠지. 헤겔의 비아냥이 생각난다. '경험과 역사가 가르치는 바는 이러하다. 국민과 정부는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거기서 얻은 원칙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먼저 간 모든 이들에게 빚진 나.

2005년 11월 11일 청계천 전태일 다리에서 찍은 사진.


이 글은 거진 10년 전에 내가 여자를 꼬실 목적으로 쓴 글이다. 이른바 '연애편지'랍시고 쓴 것이다. 결과? 친구들이 그러더라. 이딴 식으로 연애편지를 쓰니 어떤 여자가 너랑 사귀겠냐고. 그 말이 다 맞았다. 10년만에 읽어 보고 내가 느낀  소감이 딱 그랬다. 그때 친구들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내가 읽어도 낯 뜨거운데 편지를 받은 그 친구는 어떠했겠는가? 감정이 너무 지나치거나 모자르지 않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아 어지간히 애쓴 편이라 생각했는데 내 꼬락서니가 안쓰럽다. 아무튼 전태일이 세상을 떠난 날을 기리기 위해 뭔가는 해야겠고 해서 옛날 편지를 끄집어 내 많이 손봤다.이렇게라도 전태일이 세상을 떠난 오늘을 기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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