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133)
살아 있다는 느낌 (46)
익자삼우 (23)
요산요수 (12)
수불석권 (23)
구이지학 (11)
천의무봉 (16)
섬섬옥수 (2)
pawn shops near me that buy guns
pawn shops near me that buy guns
http://info.silvercentral.net
http://info.silvercentral.net
http://sightings.elvissighting..
http://sightings.elvissighting..
http://clients.trafficbackdoor..
http://clients.trafficbackdoor..
business.easyprofitsreview.com
business.easyprofitsreview.com
92,198 Visitors up to today!
Today 1 hit, Yesterday 0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Candle
'채식주의'에 해당되는 글 2건
2011.04.27 09:49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땅 위에 있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들이 너희의 먹을거리가 될 것이다.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에 사는 모든 것, 곧 생명을 지닌 모든 것에게도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준다."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창세기> 1장 29~30절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창세기> 2장 16~17절 

요즘 성경을 읽고 있다. 교회 다니는 사람으로서 경전인 성경을 한 번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건 내가 생각해도 좀 괘씸한 일인 듯 싶고, 고전으로서 인정받는 텍스트를 완독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쪽수가 많아서 2년 안에 완독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내가 보는 성경은 10년 전에 산 표준새번역 성경인데 신구약 합쳐서 1,588쪽에 달한다. 그것도 글꼴이 대략 7, 8포인트 정도에 2단 편집이라 양이 엄청나다. 내 신심으로는 2년 안에 끝내는 것도 기적일 터. 2년 안에는커녕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하나님은 지극히 관대하신 분이라 애쓰는 나를 기꺼워하시리라 믿는다(천연덕스럽게 이런 말을 써 놓다니.... 내가 생각해도 가소롭다). 이런 성경을 인기는 몇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목사로서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대단하다 싶다. 

가끔 사람들에게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천국에서는 고기를 먹을 수 없을 테니 살아 있을 때 많이 먹어 두라고. 이 생각은 히브리 민요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에서 따온 것이다.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 내리라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가 되면 
사막이 꽃동산 되리 
사자들이 어린 양과 뛰놀고 
어린이들 함께 뒹구는 
참 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1절  


그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이사야서> 11장 6~9절 

사자들이 어린 양과 뛰놀다, "어이 양, 내가 배고프거든" 하고 점심거리로 양을 잡아 먹을 거 같지는 않다. 이사야가 전하듯이 앞으로 올 하나님 나라에서 서로 잡아먹는 일이 없다면 그 옛날 에덴동산에서도 다른 생명의 피와 고기를 먹지 않았을 것이다. 창세기를 읽으면 내 말이 구라는 아닌 듯하다. 창세기 1장 29~30절과 2장 16~17절에 채소와 열매만이 먹을거리로 허락되어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짐승 또한 푸른 풀을 먹이로 삼았다. 육식, 그러니까 고기가 먹을거리로 처음 언급된 건 홍수 사건 이후다(창세기 9장 3절).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너희의 먹을거리가 될 것이다. 내가 전에 푸른 채소를 너희에게 먹을거리로 준 것같이, 내가 이것들도 다 너희에게 준다. 
<창세기> 9장 3절 

내가 전문가는 아니라 확실하게 말하기는 뭐하고 돼지고기랑 정크푸드를 빼면 내 식도락에서 남는 게 없지만, 오랫동안 채식주의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올바르다 생각했다(요즘은 생태적으로도 올바른 일이 되었다)하나님이 사람에게 고기 대신 채소와 열매를 먹을거리로 준 데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고기를 먹는 것이 이래저래 바람직한 선택은 아닌 듯하다. 

그렇지만 질문도 있다. 창세기를 읽어 보면 아벨이 양을 치는 목자였고, 야발은 집짐승을 치는 사람의 조상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왜 짐승을 쳤을까? 제사에나 쓰려고 길렀을까? 눈 앞에 먹음직스러운 고기덩어리가 있는데 정말 참고 먹지 않았을까? 좀 의심스럽다. 아무튼 고기를 끊지는 못하더라도 좀 줄여야 하는데 쉽지 않다. 특히 요즘은 물가가 하도 올라 푸성귀 사 먹는 것조차 나 같은 차상위자로서는 버거운 일이다. 
 

내가 다니는 나들목교회 예배 모습. 2009년 5월 어느 날.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8.07.18 01:37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무더운 여름 한낮 시집을 읽을 때, 에어컨보다는 덜덜거리는 골드스타 선풍기 바람이 더 낫다. 조금만 움직거리면 땀이 쏟아져, 하릴없이 대자리 깔고 누워 백석의 시를 읽었다. ‘개이빨’을 ‘개니빠디’라 하는 평북사투리가 정감 있다.
그중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라는 시가 재미있다.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 방안에는 성주님, 토방에는 다운구신, 부엌으로 도망가면 조앙님, 고방에는 제석님, 굴통에는 굴대 장군, 대문 열고 도망가면 수문장, 밭마당귀에 연자당 구신. “나는 고만 기겁을 하여 곧 행길로 나서서 마음 놓고 화리서리 걸어가다 보니 아아 말마라 내 발 뒤축에는 오나가나 붙어다니는 달걀구신. 마을은 온데간데 구신이 돼서 나는 아무데도 갈 수가 없다.”
바로 지금 이 나라가 ‘맨천 구신’뿐이다.
먹기 싫은 미국 쇠고기 사 가라, 먹으라 성화대는 구신, 촛불 들면 물대포 쏘는 구신, 정부 정책 비판한다고 수사 으름장 놓는 구신, 50대 민간인 여성을 총으로 쏘는 구신,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구신. 이렇게 나오는 북이며 일본에 대해 아무 대책이 없는 구신. 나라가 온데간데 구신이 돼서 우리는 아무 데도 갈 수가 없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바로 내 발 뒤축에 오나가나 붙어다니는 달걀구신이 제일 무섭다. 이 모든 사달은 기실 바로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니 그렇다. 우리는 된장에 김치 말고 부드럽고 고소한 마블링 쇠고기를 싼값에 잔뜩 먹고 싶다. 그래서 미국 소 장사들은 풀 먹는 소에게 고기를 먹인다. 나 하나가 쇠고기 먹으면 네 사람분의 곡식이 없어져도 나는 고기가 먹고 싶으니 이게 바로 달걀구신이다. 지난 석 달 가까이 촛불을 들게 한 이 정부도 바로 우리가 선택했다. 부자 되게 해 달라는 일념으로, 공익을 실현하는 대통령 자리에 돈만 쫓아다니는 회사 사장을 뽑아 놓은 게 바로 촛불 든 우리다. 그러니 단박에 뿌리뽑겠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종교적으로 이야기하면 마땅히 우리 스스로 자신의 죗값을 다 치러야 한다는 말이요, 변증법적으로는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세계화를 가장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렉서스와 올리브>라는 책을 보면 물보다는 콜라를, 떡보다 햄버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의 속성상, 세계화나 신자유주의라는 귀신은 아프간 산골이나 아프리카 밀림에까지 반드시 출몰하게 되어 있다. 바로 내 발 뒤축에 오나가나 붙어다니는 달걀구신을 못 본 체하고 마을에 득시글대는 바깥구신들만 탓할 수는 없다. 효율, 돈, 편안함을 쫓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이길 현실적 대안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 신자유주의를 무너뜨리는 최대 복병은 바로 신자유주의 자신뿐이 아닌가 싶다.
벌써 그 조짐이 보인다. 금융 자본은 온갖 최신기법을 동원해 부가가치를 눈덩이처럼 불려가다가 마침내 전세계에 신용 위기를 가져왔다. 값싸고 맛있는 쇠고기 좋아해서 소를 소 대접 않고 소에게 소를 먹이다가 급기야는 끓여도 죽지 않고 0.001g만으로도 사람을 죽게 만드는 프리온이란 괴물을 만들었다. 변증법의 섭리라면 섭리일까.
신문을 펼치면 온통 무서운 귀신들 이야기뿐.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같은 시는 그만 접고 백석의 또다른 시나 한 수 읽어보자.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는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김형태 변호사



우리 집에는 백시나가 엮고 다산초당에서 낸 백석 시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있다. 책 앞에 적어 놓은 걸 보면, 2006년 12월 29일 헤이리에 놀러 갔다가 '북하우스'에서 산 책이다. 제일 먼저 나오는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반해서 샀는데 시집 뒷부분에 <마을은 맨천 귀신이 돼서>처럼 멋진 시가 숨어 있는지 몰랐다. 분명 다 읽었는데 말이다. 내가 아직 눈이 밝지 못하다는 소리겠지.

요즘 소고기 문제로 온 나라가 몇 달째 시끄럽다. 명백히 이명박 정부가 잘못했다. 그걸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때문에 촛불을 드는 것은 정당하며, 오히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명박 정부를 타도하는 것이 옳다. 그렇지만 이 문제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밑바탕을 드러내 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목숨을 목숨으로 대하지 않고,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은 것이 바로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풀을 먹고 살게끔 태어난 소한테 고기를, 그것도 같은 소를 갈아 먹일 수 있단 말인가? 소를 소로 여기지 않고, 소를 소로 '대접'하는 뻔뻔스러운 행위는 신의 창조 질서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불경이다. 소가 병들어 미친 것이 아니다. 정작 미친 것은 그걸 팔아먹겠다는 인간이다. 화 있을진저, 그 소를 팔아 자기 뱃속을 채우겠다는 자본주의여. 돈 때문에 소를 먹인 소고기를 팔아먹는 자, 장차 사람 고기로도 장사할 치들이다.

그 치들뿐만이 아니다. 다들 이번 기회에 채식주의를 고민해 봐야만 한다. 아무리 돼지들이라고 해도, 닭이라고 해도, 소라고 해도 인간에게 먹히라고 태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이 커다란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는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날개 달린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이것들에게 복을 베푸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여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여라”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닷샛날이 지났다.
(창세기 1장 21~23절, 새번역)

신이 닷샛날 동물을 만드시고는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다고 하시지 않았다. 정작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다고 한 자는 인간, 아담과 이브였다. 나중에 죽어서 그 많은 돼지들과 닭들, 소들을 어떻게 얼굴을 들고 마주 볼 수 있을지 두렵다. 이제 백석 말마따나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오두막)’에서 살 각오를 해야 한다. 가난한 나와 함께할 아름다운 나타샤 한 사람만 있으면 족하지 않을까?

김형태 칼럼은 바로 그 점을 짚고 있다. 그래서 좋은 글이라 생각한다. 내가 알기로 김형태 변호사는 천주교 신자다. 그리고 <공동선>이라는 격월간 잡지 발행인이기도 하다. 언젠가 한번 만나 보고 싶은 사람이다.

밑에 <마을은 맨천 귀신이 돼서>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전문을 옮긴다. 아마 김형태 변호사가 읽은 시집과 내가 읽은 시집이 다른 본인가 보다. 조금 다르다.


마을은 맨천 귀신이 돼서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귀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
자 방안에는 성주님
나는 성주님이 무서워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에는 디운귀신
나는 무서워 부엌으로 들어가면 부엌에는 부뚜막에 조앙님
나는 뛰쳐나와 얼른 고방으로 숨어 버리면 고방에는 또시렁에 데석님
나는 이번에는 굴통 모퉁이로 달아가는데 굴통에는 굴대장군
얼혼이 나서 뒤울 안으로 가면 뒤울 안에는 곱새녕 아래 털능귀신
나는 이제는 할 수 없이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대문간에는 근력 세인 수문장
나는 겨우 대문을 삐쳐나 바깥으로 나와서
밭 마당귀 연자간 앞을 지나가는데 연자간에는 또 연자당귀신
나는 고만 질겁을 하여 큰 행길로 나서서
마음 놓고 화리서리 걸어가다 보니
아아 말 마라 내 발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 다니는 달걀귀신
마을은 온데간데 귀신이 돼서 나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