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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철'에 해당되는 글 2건
2009.08.31 19:53
"죽음은 삶의 끝에 있지 않습니다. 언제나 삶과 함께합니다." 
실감나는 말이었다. 젊은 시절 사고를 당해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을 때다.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죽음이 바로 옆에 다가와 있었다. 그런데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말치고는 심오했다. 알고 보니 생명보험 회사의 광고였다. 

요즘 전에 미처 읽지 못한 신문들을 몰아서 보고 있다. 5월께부터는 바빠서 신문을 제목 정도만 대충 봤다. 나중에라도 볼 요량으로 쌓아 놓았는데, 두 달 치니 그 양이 꽤 된다. 대강이라도 훑어보고 버리려 건성으로 신문지를 넘기다가 위에 옮긴 문장이 내 눈에 팍 꽂혔다. 이 구절은 작년 10월 18일 치 <한겨레>에 실린 글(김지석의 종횡사해: 삶으로 죽음을 이기는 문화) 가운데 일부다. 올해 신문들뿐인 줄 알았는데 작년 신문도 이따금 끼어 있었던 것이다. 이 문장을 작년에 봤다면 특별하지 않은, 한낱 몸짓에 지나지 않은 구절일 터. 그러나 2009년 여름 내게 예사롭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정치 한답시고 대운하로 사기나 치는 소인배스런 잡놈들이 우글거리는 우리 시대에 정치가다운 빛깔과 향기를 남긴 두 사람의 죽음 때문이다. 오늘은 '선상님' 한 사람만 이야기하련다. 

흔히 정치인과 유권자 관계가 그렇듯, 김대중과 나 또한 중간에 다리를 놓아 줄 뭔가가 있어야만 하는 사이였다. 이를테면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 같은 데서 보도를 해 줘야 정치인 김대중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사이라고나 할까? 그러니 당연히 우리 관계는 평등할 리 없었다. 나는 뉴스에 나온 그 사람이 정치인 김대중이라는 것을 익히 알지만, 정치인 김대중은 유권자 심 아무개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을 테니 완전히 일방적인 관계라고 할 수밖에.  

대의민주제를 채택한 사회에서 정치인과 유권자가 직접 만나는 순간이 딱 한 번 있기는 하다. 바로 선거 때다. 그렇지만 김대중과 내게 이 또한 별 인연이 없었다. 김대중은 대통령 선거에 네 번이나 출마했는데, 난 한 번도 표를 준 적이 없다. 1971년 선거와 1987년 선거는 내가 태어나기 전이거나 너무 어려서 투표하지 못했고, 1992년 선거 때는 아쉽게도 두 달 차이로 투표를 하지 못했다.[각주:1] 1997년 대통령 선거는 내가 처음으로 참여한 선거였다. 그런데 다른 선거 때와는 달리 친구들 사이에 의견이 갈렸다. 대개 김대중과 권영길, 이렇데 두 편으로 나뉘었다. 다행히 이회창을 찍겠다는 바보는 없었다. 인기는 정권 교체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편이었고, 인철이랑 나는 "보수 야당 따위는 필요없어" 하는 쪽이었다. 결국 인기는 김대중에게, 인철이와 나는 권영길에게 투표했다. 이 선거에서 김대중은 이회창을 꺾고 대통령에 당선해 마침내 꿈을 이루었다. 그렇지만 난 그이가 대통령이 되는 데 전혀 도와준 것이 없었다.

우리 세대는 다르고 달라야 한다 생각했다. 그러기에는 삼김이라 불린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은 보수 정치인이란 이미지, 구시대 정치인이란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마빡에 피도 마르면서, 내가 신문도 좀 보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어떤지 어렴풋하게나마 가늠할 수 있게 되면서, 지금껏 배운 교과서와 현실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대다수 정치인들은 국가와 민족을 팔아먹는 모리배에 지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나는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그네들은 그저 노회한 늙은이들일 뿐이라고.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 세 사람을 싸잡아 비난하는 게 공평하지도 가당치도 않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사실 김대중은 남다른 정치인이었다. 근본이 똑똑하고 기품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것을 채우려 끊임 없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깜냥도 안 되면서 나라님 한 번 해 보겠다는 노욕에 사로잡혀 사욕을 채우는 데 여념이 없던 김영삼, 김종필에 견주기에는 급이 다른 정치인이었다. 낭중지추(囊中之錐)[각주:2]라고 했던가? 감추기 어려운 매력들이 그이에게서 은은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퍼져 나와 사람들을 매혹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연설을 정치인으로서 갖춰야 할 첫째 덕목으로 친다면 김대중은 단연 가장 출중한 정치인으로 꼽힐 것이다. 1964년 4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어느 의원에 대한 구속 동의안을 저지하기 위해 다섯 시간 이십 분 동안 연설한 일화는 유명하다. 거침없고 논리 정연한 김대중의 연설은, 그저 남이 써 주는 원고를 받아 교과서 읽듯 하는 다른 정치인들의 연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그이는 고매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이를 높게 평가하는 건, 그이가 아랫사람에게도 결코 하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랫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가 얼마나 성숙한지 가늠할 수 있다. 대통령이랍시고 아무에게나 가리지 않고 반말을 지껄이는 이 아무개는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김대중을 보면 내가 좋아하는 바틀렛 대통령이 떠오른다.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The West Wing)에 나오는 바틀렛 대통령(마틴 신이 연기했다)은 김대중을 모델로 삼은 듯 둘은 쏙 빼닮았다. 청중을 휘어잡는 연설가라는 점, 깊이와 폭을 알 수 없을 만큼 박식하다는 점, 엄격한 기품뿐 아니라 다른 이를 배려하는 재치도 겸비했다는 점, 어떤 사람이라도 허투루 대하지 않고 진심으로 존중하는 인격자라는 점이 그렇다. 분야는 다르지만 노벨상을 받은 것까지도 똑같고, 시리즈가 끝나 바틀렛 대통령을 볼 수 없는 것처럼 김대중 대통령도 더는 볼 수 없게 된 점까지 똑같다. 대통령이 어떠해야 하는지 7년 동안 보고 배웠으면 강아지라도 뭔가 배우지 않았을까? 어디 작은 나라에서 대통령 노릇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나라 정치인과 유권자들은 개만도 못하다는 소린가? 도대체 무얼 보고 배웠기에 이처럼 요망한 잡것이 나라님인 양 행세하려 들 수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이제 사자후를 토하는 연설가, 우리 시대 마지막 연설가가 이 땅을 떠났다. 
그리하여 이제 소통을 아는 정치인, 들을 귀 있는 정치인이 이 땅을 떠났다. 
그리하여 이제 힘 없는 이들을 편드는 투사, 무지렁이 같은 그들을 위해 목소리 높여 줄 투사가 이 땅을 떠났다. 
그리하여 이제 끊어진 조국의 허리를 다시 이은 통일 일꾼, 겨레의 앞날을 걱정하는 통일 일꾼이 이 땅을 떠났다. 
그리하여 이제 사람 사랑을 실천하는 휴머니스트, 가슴 뜨꺼운 휴머니스트가 이 땅을 떠났다. 
그리하여 이제 진정한 거인이 소인들의 나라를 떠났다. 

쇼펜하우어는 진실이 그 정당성을 얻으려면 세 가지 단계가 거쳐야 한다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모든 진실은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 단계에서는 비웃음을 사고, 둘째 단계에서는 격렬한 반대를 받는다. 마지막 셋째 단계에서야 비로소 자명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빨갱이라고 하기엔 너무 우파스러웠던 당신, 김대중 선생님. 
당신은 온갖 비웃음과 격렬한 탄압을 끝내 극복하고 이제 진정한 거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영면하시길…….

  1. 덕분에 선거권도 없는 애송이라는 놀림을 당해야 했다. 재미있는 건 나를 놀린 장본인인 인철이도 하루 차이로 투표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선거날은 12월 18일이었는데, 인철이 생일은 12월 20일이었다. 아마 1972년 12월 19일 생까지만 투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본문으로]
  2. 주머니에 든 송곳을 이름.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됨을 뜻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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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5 21:38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는 좁아지기 마련이야. 

언젠가 (황)인철이가 내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황가 이 친구는 20세기의 마지막 해를 이처럼 의미심장하게 한마디로 마감하더니만, 21세기 첫 달에 장가를 가 버렸다. 자신의 인간관계가 갈수록 좁아지는 게 두려웠기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관계가 좁아지는 꼴을 나보고 한번 당해 보라는 심보였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나는 가장 가까운 친구를 내 손으로 호기롭게 새색시에게 넘겨준 꼴이 되었지만 말이다. 

내가 예나 지금이나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제법 큰소리치기는 하지만, 사실 그렇게 사람 사귀는 데 야박하지 않다(고 주장하련다). 요즘이야 청구서가 무서워 전화를 많이 하지는 않지만, 난 아는 사람들에게 정기적으로 전화도 하고 서로 시간이 맞으면 만나 수다도 떤다. 그렇게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만나는 친구들이 조금 있다. (황)수연이도 그런 친구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처음 수연이를 알게 된 것은 지금은 망해 없어진 '라 스트라다'(La Strada) 덕분이다. 라 스트라다는 나들목교회에서 잠깐 운영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돈만 말아먹고 실패한 '비전'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나들목에서는 아무도 라 스트라다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물론 책임지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었다. 하여간 수연이는 라 스트라다 로고와 인쇄물 몇 가지를 디자인했고 나는 그 디자인을 받아 인쇄해 납품하는 일을 했다. 교회 일이라 둘 다 자원 봉사를 한 셈이다. 그 일이 인연이 되어 수연이는 디자이너로 나는 제작자로 몇 번 같이 일했다. 

내가 이따금 수연이 만난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좀 있다. 사실 수연이는 성격이 예민한 편이고 더욱이 낯을 많이 가린다. 그렇지만 왜 그런 사람들 있지 않은가? 사귀기는 어려워도 친해지면 편한 사람. 수연이가 그런 사람이다. 우리는 일 때문에 만난 사이고 같은 교회를 다녔으니 천천히 친해질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친구와 내게 비슷한 동류의식이 있었다고 하면 내가 넘겨짚은 것일까? 하는 일도 비슷하고, 둘 다 커피 좋아하고, 부모 이야기 또한 엇비슷하고, 서로 부담스럽지 않게 처신한다는 점도 그렇고. 무엇보다 나나 그 친구나 나들목에서 비주류였다. 내게 주류 쪽 사람들을 우습게 아는 경향이 있었다면 그 친구는 예의 바르기는 하나 사람들을 좀 어려워했다고나 할까? 참 둘 다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점도 비슷하구나.  

그 수연이를 일요일 오후 인사동에서 만났다. 지금껏 밥 많이 사 줬으니 이번에는 좀 얻어먹으려 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8월에 만났을 때는 아무 얘기 없더니 이달 27일에 결혼한단다. 신랑은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라는데 어찌어찌해서 작년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집안끼리 가까운 사인가 보더라. 결혼 날짜 잡은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시아버지 될 분이 사랑의교회 장로시란다. 그분이 다른 일 때문에 교회 사무처에 갔다가 12월 27일 하루가 비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결혼식 날을 잡았다고 하더라. 주례는 옥한흠 목사님이 해 주신단다. 

내가 결혼식에 갈 일은 없을 듯해서 따로 만난 것이다. 인사동 커피빈에서 그리고 내가 가끔 사람들 데리고 가는 '칠갑산'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수다다. 신랑이 미국에서 일한단다. 그래서 수연이도 엘에이 가 살 거라고 한다. 수연이에게 교회만 잘 다녀면 시집도 가도 장가도 가는구나, 너 결혼하는 것은 좋지만 미국 가면 나랑 같이 수다 떨 사람 하나 없어지는 건데 미국 안 가면 안 되냐 하고 우스갯소리도 하고 그랬다. 원주 사는 조카 녀석도 똑같은 말을 했단다. 아마 내 정신연령이 그 초등학생 조카랑 비슷한가 보다. 

결혼한다고 다 멀어지는 건 아니지만 엘에이는 너무 멀다. 같은 서울에 살아도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말이다. 우리나라에 잠깐 들어오게 되면 꼭 전화한다고 다짐은 받았다. 글쎄, 또 볼 수 있을까? 아무튼 그런 건 하늘에 맡기고 결혼해 잘 살기를 바란다. 수연이는 영어도 잘하니까 미국 가서도 잘 살 거라 생각한다. 그렇지. 내가 걱정이지 딴 사람들은 잘 살 거다. 

다음 주에는 수연이가 가르쳐 준 '왓더북'(what the book)에나 다녀오련다. 왓더북은 영어책을 파는 헌책방으로 이태원에 있단다. 필요한 책이 있어서 교보나 예스24에 주문하기 전에 들리려 한다. 그리고 새해가 되면 인철이나 한번 봐야겠다. 그 친구가 우리 집에서 산 적도 있고 내가 그 친구네 집에서 신세 진 적도 있어 서로 지겹도록 만난 시절도 있었지만, 인철이 결혼하고는 몇 번 만나지 못해서 많이 아쉽다. 마누라가 그렇게 좋은지...... 오랜만에 만나 맛있는 거나 얻어먹어야겠다.  

사진 찍히는 거 싫어하는 사람 참 많다. 이래서야 찍사들이 먹고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참에 망원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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