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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에 해당되는 글 2건
2011.04.27 09:49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땅 위에 있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들이 너희의 먹을거리가 될 것이다.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에 사는 모든 것, 곧 생명을 지닌 모든 것에게도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준다."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창세기> 1장 29~30절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창세기> 2장 16~17절 

요즘 성경을 읽고 있다. 교회 다니는 사람으로서 경전인 성경을 한 번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건 내가 생각해도 좀 괘씸한 일인 듯 싶고, 고전으로서 인정받는 텍스트를 완독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쪽수가 많아서 2년 안에 완독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내가 보는 성경은 10년 전에 산 표준새번역 성경인데 신구약 합쳐서 1,588쪽에 달한다. 그것도 글꼴이 대략 7, 8포인트 정도에 2단 편집이라 양이 엄청나다. 내 신심으로는 2년 안에 끝내는 것도 기적일 터. 2년 안에는커녕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하나님은 지극히 관대하신 분이라 애쓰는 나를 기꺼워하시리라 믿는다(천연덕스럽게 이런 말을 써 놓다니.... 내가 생각해도 가소롭다). 이런 성경을 인기는 몇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목사로서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대단하다 싶다. 

가끔 사람들에게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천국에서는 고기를 먹을 수 없을 테니 살아 있을 때 많이 먹어 두라고. 이 생각은 히브리 민요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에서 따온 것이다.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 내리라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가 되면 
사막이 꽃동산 되리 
사자들이 어린 양과 뛰놀고 
어린이들 함께 뒹구는 
참 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1절  


그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이사야서> 11장 6~9절 

사자들이 어린 양과 뛰놀다, "어이 양, 내가 배고프거든" 하고 점심거리로 양을 잡아 먹을 거 같지는 않다. 이사야가 전하듯이 앞으로 올 하나님 나라에서 서로 잡아먹는 일이 없다면 그 옛날 에덴동산에서도 다른 생명의 피와 고기를 먹지 않았을 것이다. 창세기를 읽으면 내 말이 구라는 아닌 듯하다. 창세기 1장 29~30절과 2장 16~17절에 채소와 열매만이 먹을거리로 허락되어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짐승 또한 푸른 풀을 먹이로 삼았다. 육식, 그러니까 고기가 먹을거리로 처음 언급된 건 홍수 사건 이후다(창세기 9장 3절).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너희의 먹을거리가 될 것이다. 내가 전에 푸른 채소를 너희에게 먹을거리로 준 것같이, 내가 이것들도 다 너희에게 준다. 
<창세기> 9장 3절 

내가 전문가는 아니라 확실하게 말하기는 뭐하고 돼지고기랑 정크푸드를 빼면 내 식도락에서 남는 게 없지만, 오랫동안 채식주의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올바르다 생각했다(요즘은 생태적으로도 올바른 일이 되었다)하나님이 사람에게 고기 대신 채소와 열매를 먹을거리로 준 데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고기를 먹는 것이 이래저래 바람직한 선택은 아닌 듯하다. 

그렇지만 질문도 있다. 창세기를 읽어 보면 아벨이 양을 치는 목자였고, 야발은 집짐승을 치는 사람의 조상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왜 짐승을 쳤을까? 제사에나 쓰려고 길렀을까? 눈 앞에 먹음직스러운 고기덩어리가 있는데 정말 참고 먹지 않았을까? 좀 의심스럽다. 아무튼 고기를 끊지는 못하더라도 좀 줄여야 하는데 쉽지 않다. 특히 요즘은 물가가 하도 올라 푸성귀 사 먹는 것조차 나 같은 차상위자로서는 버거운 일이다. 
 

내가 다니는 나들목교회 예배 모습. 2009년 5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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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0 07:15

아이캘(iCal)을 다이어리 삼아 쓰면 좋은 게, 놓치지 말아야 할 날들을 관리하기 편하다는 점이다. 한 번 적고 '반복'을 '매년'으로 설정해 놓으면 때마다 알려 준다. 가까운 사람들의 생일이나 무슨 기념일(이런 날들을 말하자면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특정한 대가를 치루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따위 같은 개인적인 날들과 함께 의무감 비슷한 마음으로 적어 놓는 날들이 있다. 쭉 적어 보자면, 1월 18일 문익환 목사님 기일, 2월 13일 김남주 시인 기일과 14일 윤동주 시인 기일, 11월 13일 전태일 열사 기일 등이 그렇다. 


벌써 17년 전 일이다. 1994년 1월 22일 난 친구들과 함께 대학로에 있었다. 그곳에서는 18일 세상을 떠난 문익환 목사님 노제가 있었다. 지금도 난 그분을 떠올리면 서럽다. 


문 목사님은 맘만 먹으면 편하게 살 수 있었다. 김영삼 정부 이후에는 더욱 그랬다. 비록 겉모습만이었지만 민주주의가 형식 민주주의라는 모습으로 어느 정도 진척을 이루었으니 어느 한자리 꿰찼어도 핑계거리는 충분했을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김영삼은 문 목사님의 아버지인 문재린 목사님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이런 개인적인 친분과 윤동주의 몇 안 남은 친구라는 배경으로 그리고 군사정권 때 보여 준 빛나는 투쟁으로 맘만 먹었으면 어느 장관 자리 하나쯤은 충분히 차지하고도 남았으리라(물론 조선일보 같은 놈들이 얌전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겠지만). 


그전에도 충분히 그 정도 대접은 받을 수 있었다. 문 목사님은 뛰어난 신학자였다. 특히 이사야서 연구의 권위자로 이름을 떨쳤다. 개신교와 가톨릭이 함께 성서를 번역할 때 구약 번역 책임자였다는 것만으로도 설명은 충분할 것이다. 


그 노신사의 모습에서 나는 신앙인의 삶의 어떤 영감 같은 것을 읽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분이 누군 줄도 몰랐고 감히 말도 걸 생각도 못했다. ... 그분이 바로 문익환 목사님이었던 것이다. 당대 구약학의 대가! ... 내가 처음 뵈웠을 때의 문익환 선생은 정말 완벽하게 그런 분위기와는 무관한 정신세계에 사시고 계셨던 진정한 수도인의 한 사람이었다. 그 뒤 나는 그분에게서 구약개론을 들었다. 그리고 물론 그분의 강의는 매우 듣기 쉬었고, 또 히브리 원전을 완전히 소화한 데서 우러나오는 내용이 풍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깨끗한 영적 체험담으로 우리 수강자들을 감동시키곤 했던 것이다. 저 멀리 교단에 서 계신 모습은 항상 광채나는 해맑은 모습이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 글은 콧대 높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른다는 김용옥이 문 목사님에 대해 쓴 글이다. 그런 분이 보장된 미래를 마다하고 단식으로 감옥으로 고문으로 가시밭길을 자청한 것이다. 만약 그분이 그런 것으로 부를 이루었다든지 아니면 진짜로 한자리 꿰차고 들어앉았다면 내가 이렇게 서럽지 않을 것이다. 서럽기는커녕 그 이름을 내 머리에서 지웠을 것이다. 


서럽다. 개념 없는 인간들이 외려 잘 먹고 잘살고, 사람도 짐승도 아닌 괴물까지 대통령이랍시고 설치고 있으니 참으로 서럽다. 힘들게 이루어 놓은 것을 엉뚱한 놈들이 차지하고는 죽이나 쑤고 있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더더욱 서럽다. 신을 믿지 않았을 때도 난 신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양심을 지켜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인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저주일 뿐이니까. 요즘 들어 내 개인의 삶에서나 우리 사회에서나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사무치도록 궁금하지만, 그래도 난 그분이 우리 삶을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어 주시며,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공의의 나무, 주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 

이사야서 61장 1~3절 


문익환 목사님의 명복을 빈다. 


앞서 간 모든 이들에게 빚진 나. 


뉴스앤조이 문익환 목사님 17주기 기사: 평화와 통일의 꽃이 필 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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