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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오테스'에 해당되는 글 1건
2008.07.26 17:19
보이콧의 아름다움

다 아는 얘기지만, 고대 그리스 폴리스의 민주주의는 자유 시민만이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였다. 이들 자유 시민은 일상적으로 대개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이었지만, 공동체 전체에 관계된 일을 위해서 자신의 생업을 잠시 접어두고 공공의 공간으로 나오곤 했다. 그것이 이 도시국가에서 정치의 의미였다. 그런데 이 정치적 활동은 철저히 자유 시민에게 국한되어 있었다. 그리스 사회에서 자유인과 노예를 가르는 결정적인 기준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었다. 노예는 단지 힘겨운 육체노동만 했던 게 아니라, 장사를 하여 돈을 벌 수도, 이솝처럼 문학 활동도 할 수 있었다. 노예에게 허락되지 않은 유일한 활동은 바로 ‘정치’였다.
정치는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인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공적 활동이었다. 오늘날 영어에서 바보 혹은 백치라는 뜻으로 쓰는 낱말 ‘이디어트’(idiot)는 ‘이디오테스’(idiotes)라는 그리스 말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 말은 원래 “공공의 문제에 관심이 없이 오직 사사로운 문제에만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그리스인들에게 정치란 근본적으로 개인의 사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공동체 전체의 보편적 이익을 생각할 줄 아는 인간적 능력을 전제로 한 활동이었다.
물론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노예제와 여성차별을 기초로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 한계는 뚜렷하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이 정치 참여를 ‘자유인’ 됨의 핵심적인 징표로 간주하고 있었다는 것은 음미할 만하다.
오늘날 우리는 근대적 국민국가의 틀 속에서 직접민주주의는 불가능하며, 가능한 것은 오직 대의제 민주주의뿐이라는 생각에 길들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원래 민중이 결정하는 자치를 뜻하는 것이라면, 민중 자신의 삶에 관한 결정권을 이른바 정치 엘리트들에게 위임하도록 고안된 제도가 결코 진정한 민주주의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지금 현실적으로 대의제 민주주의 이외의 틀을 상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필요한 것은 이 제도가 민중의 자치 욕구를 조금이라도 더 충실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비판하는 일일 것이다.
지난 5월 이후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는 촛불 집회는 바로 그동안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명백히 실패했음을 증언하면서, 동시에 이 나라 민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엄청나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드러내었다. 촛불 집회를 통해서 분명해진 것은 많은 사람들이 ‘경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와 인간다운 존엄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촛불 집회의 근원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이것은 더는 ‘노예’의 삶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유인’으로 살겠다는 결연한 자세에서 비롯한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민중의 자세가 지배세력에게 달가울 리 없다. 생각해 보면 민중의 살아 있는 정신과 민주적 에너지는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임이 분명한데도, 지금 권력은 민중의 에너지를 전방위로 억압하고 탄압하는 데 광분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이 이렇게 나오는 것은 당분간 선거가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선거가 아니라도 투표는 언제나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사회정의와 공공성을 우습게 여기는 자본과 국가 및 언론 권력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우리가 매일매일 상품과 서비스를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투표 행위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투표 행위의 일상적 실천이야말로, ‘자유인’으로서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손쉬운, 그러나 가장 효과가 확실한 비폭력적 저항운동이 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원문: 한겨레신문 7월 26일 삶의 창

2005년 1월(사실 연이애드를 그만둔 것은 2004년 11월 25일쯤이다. 연이애드 사장이 1월까지 월급을 주겠다고 해서 11월에 짐을 쌌다. 12월 월급은 들어왔는데 1월 월급이 안 들어왔다. 며칠 기다렸다가 전화했더니 월급이 선불 아니었냐는 것이다. 황당한 추억이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 일년 동안 책 열심히 읽었다. 그때 읽은 책 가운데 제일 기억에 남는 책이 김종철 선생이 쓴 <간디의 물레>와 이이화 선생이 쓴 <한국사 이야기>다.

<한국사 이야기>는 모두 22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관통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줬다. 한 권은 사고 한 권은 도서관에서 빌리는 방법으로 다 읽었다. 그래서 집에 14권이 있고 나머지도 틈틈히 사 모을 생각이다. <간디의 물레>는 김종철 선생이 <녹색평론>에 쓴 시론을 모은 책인데 비록 한 권짜리지만 <한국사 이야기> 22권 못지않은 무게감이 남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근본주의자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책이다. 가난한 삶, 자급자족하는 삶이 아니면 죄악이라는 주장에 어쩌면 재림한 예수를 보는 듯했다. 종교 이야기만 뺀다면 예수도 그렇게 외쳤을 것이다(몇 번 당하고 나니 책으로만 떠드는 지식 기사일지도 모른다는 경계심도 없지 않다. 내가 정말 속아만 살아왔나).

처음 현숙이 누나한테 빌려서 봤는데 몇 달 있다 새 책으로 돌려줬다. 좀 봤더니 책이 더욱 헌책다워져서 누나한테 그냥 주기 미안했다. 하여간 그 정도로 인상 깊은 책이다. 그 책을 쓴 김종철 선생을 난 믿고 싶다. 그리고 궁금하다. 김종철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고 <녹색평론> 김종철 사장은 어떤 사장일지 궁금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데 자리에도 변치않는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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