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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해당되는 글 3건
2009.04.14 03:02
저녁 아홉 시쯤에서야 늦은 저녁밥을 회사 사람들과 먹었다. ‘낭만’에서 동태찌개와 코다리찜을 시켜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두런두런 오가던 이야기는 얼마 전에 본 영화 <더 리더: 책 읽어 주는 남자>를 거쳐 당연한 듯 결혼과 연애 쪽으로 흘러갔다. 성격 유쾌한 두 선배가 첫사랑 이야기며 몰래 연애하던 이야기며 옛 이야기를 꺼내 밥상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었다. 주린 배뿐만 아니라 야근에 지친 몸과 마음까지 고봉밥을 먹은 듯 배부른 시간이었다. 그렇게 즐거운 저녁 자리였지만 난 몇 가지 잡스런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의외로 내 인생 목표는 소박하다. 부자가 되는 것? 유명해지는 것? 아니다. 사람에게 점수를 매긴다는 게 가당키야 하겠냐만, 아무튼 51점짜리 사람, 평균보다 1점이나마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내 인생 목표다. 누구에겐 이 인생 목표가 우습게 보이고 무지 쉬워 보일지는 몰라도 난 이게 전혀 쉽지 않다. 어디 세상 사는 게 만만한 일이던가? 나는 내 깜량을 잘 알고 있을뿐더러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비록 나라는 놈이 변변찮고 이것저것 많이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나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고자 애쓴다면, 내 피와 땀과 눈물을 모조리 쏟아 붓는다면 그리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또박또박 내딛으려 정성을 들인다면, 난 최소한 삼류는 면할 수 있을 것이며 내게 구원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몇몇 사람들이 누리는, 타고난 재능이라는 축복은 하늘이 내리는 것으로 내가 상관할 바 아니다. 내게는 축복받은 이들을 질투할 겨를이 없다. 그 축복에는 신의 뜻이 담겨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어떻게 하든 삼류만을 면하는 것이 내게 가장 중요한 과제기 때문이다.  

덕분에 난 괜한 욕심 없이, 별 집착 없이 살아온 듯하다. 그렇지만 이따금 이 51점짜리 ‘남자’일 뿐이라는 생각이 나를 참 대책 없게 만들기도 한다. 살면서 아주 가끔 만나는 ‘경이로운’ 여자 때문이다. 아니다. 솔직히 말해 내 자격지심 탓이다. 그 여자가 은은하게 뿜어내는 경이로움에 나는 '열폭'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경이로우면서 아름답기까지 하다니. 감히 어떻게 51점짜리 사내 주제에 찬란하게 빛나는 여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이 미천한 곳으로 몸소 걸음 하시게 할 수 있겠는가? 난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다. 죄 많은 인간을 위해 신이라는 지위를 버린 건 예수로 족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여자가 내 눈에 아주 가끔 뜨인다는 것이다. 고맙게도 과문(寡聞)하고 박학(薄學)한 것이 이럴 땐 다행스럽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 51점에 목숨 거는 사내에게 도대체 무슨 매력이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늘도 충 대충 습해 어떻게든 평균을 맞추는 데 급급한 이 오대수[각주:1]야말로 부족한 점수를 메우기에도, 하루하루 먹고살기에도 버거운 사내 아닌가? 참 어렵다. 난 도무지 52점으로 나아갈 자신이 없는데 말이다.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이 상황을 나는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 내 꼬라지에 가장 적합한 글귀는 아마 이것일 듯하다.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som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촌철살인과 독설로 유명한 버나드 쇼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자신의 묘비명으로 쓴 말이니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맞을 것이다. 이 글귀를 가져다 소설가 이기호가 2006년 발표한 자신의 소설집(<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제목으로 붙였다. 대개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로 옮기는데 난 '우물쭈물'보다는 '갈팡질팡'이 주는 말맛이 더 좋다. '우물쭈물'이 주는 작은 느낌에 견줘 '갈팡질팡'은 더 큰 느낌을 준다. 더 확실하게 안절부절못하는 모양새랄까. 아무튼 갈팡질팡하고 우왕좌왕하고 우유부단하고 우물쭈물한 내 갈짓자 걸음,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이 꼬라지가 안타까울 뿐이다. 

그리고 이 글귀와 함께 떠오르는 말이 있다. '푸줏간 앞의 개'라고. 예전에 <한겨레>에서 본 글인데 찾아보니 <한겨레> 2003년 4월 12일치에 실린 글이다. 딱 6년 전에 읽은 글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난 제자리만 맴돈 셈이다. 글을 그대로 옮겨 본다. 

개에게 백배 사죄하고 하는 말이지만, 정말 '개처럼 사는 것'의 부끄러움을 느낀 적이 있다. '푸줏간 앞의 개'라는 니체의 말과 마주쳤을 때였다. 나는 그 말에서 '너무나 인간적인' 개 한 마리를 보았다. 

"그 개는 공포 때문에 전진할 수도 없고, 욕망 때문에 후퇴할 수도 없다." 

푸줏간 주인에 대한 공포와 고기에 대한 욕망 사이에서 나아가지도 돌아서지도 못하는 개 한 마리. 용기가 없으면 욕망이 곧 고통이다. 사실 우리는 여러 번 푸줏간 앞에 서게 된다. 길에서 이탈하고 싶은 욕망과 길을 잃었을 때의 두려움. 따지고 보면 직장도 푸줏간, 학교도 푸줏간, 가정도 푸줏간이다. 때로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느라, 때로는 스스로 자신이 없어서. 우리는 매번 푸줏간 앞에서 몸을 낮춘 채 꼬리를 휘젓고 있지 않는가. 

푸줏간 앞엔 두 갈래 길이 있다. 욕망을 접거나, 용기를 내거나. 어느 쪽으로든 가지 않으면 그대로 '개'가 되고 만다. 푸줏간 앞에 설 때마다 나는 스스로 '개'가 되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러곤 길을 잃지 않도록 거기에 이정표를 세워 둔다. 욕망을 접을 수 없는 나는 니체의 말 옆에 작은 주석을 달아 두었다. 

"욕망은 용기로 자유를 얻고, 용기는 욕망으로 풍요를 얻는다."

고병권

용기와 욕망 사이, 사람과 개 사이에서 나는 또다시 갈팡질팡만 할 것인가? 참 삶이 얄궂다. 

오랫만에 인기에게서 메일이 왔다. 내용은 간단했다. 건강 잘 챙기고 연애 좀 하란다. 허참..... 나는 너희들이 지난 날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내가 여자 친구랑 헤어졌다는 소식에 쌍수 들고 만세를 부른 놈들이...... 박인기, 황인철. 난 너희들이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전에도 후에도 보지 못했다, 이놈들아. 


이 글이 새로 만든 꼭지 '섬섬옥수'의 첫 글이 되었다. 섬섬옥수는 '가냘프고 고운 여자 손'을 뜻하는 말로, 이 꼭지에는 주로 여자 얘기를 담을 계획이다. 오래 전부터 마음 먹고 있던 주젠데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원래 '영웅호색'이라 이름 붙이려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영웅이랑 나랑 전혀 비슷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는 관계고, 내가 '호색'한 적이 있기나 한가 싶기도 해서 섬섬옥수로 지었다. 


  1. 박찬욱이 감독한 영화 '올드 보이'에 나오는 등장인물. 이유를 모른 채 15년 동안 사설 감옥에 갇혀 있다 풀려난 인물로, 배우 최민식이 연기했다. [본문으로]
누나 | 2009.04.20 03:06 | PERMALINK | EDIT/DEL | REPLY
나는 '개'라는 비유가 맘에 안들어..
사람이 개만도 못할때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개'가 훨 나을때가 있거든..
특히나 '관계'에서 말야..
그리고 오십점이 평균이라고 생각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거야..비꼬는거 아니고..
울 애들 시험 볼때..말야..
반평균이라는게 있잖냐..잘하는애,못하는애..점수 다 합해서 내는 평균..
살아가는것도 그렇더라구..
잘하는게 있고, 못하는게 있고..
이리저리 어우러져 살다보면 서로 도움주고받고 사는 인생들 말야..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몇점짜리 평균이 나올꺼 같냐...?

내생각으로는 오십일점은...상위권일껄..^^

나는 점수 안메길(?)꺼다..특히나 자신에게 메기는 점수같은건 말야..
피곤하거든..

울 아들 낼 수련회간다 해서리..도시락 준비해주려고 눈부릅뜨고 날새고 있다.
잠들면 못일어날까봐..요 며칠 감기때문에 누워있었더니..밤낮이 좀 바뀌기도 했구..
너..요즘에 공수표 남발이 심하던데..
나는 괜찮은데..경이로운 여신들에게는 그러지 말거라..
Favicon of https://heartone.tistory.com BlogIcon 심장원 | 2009.04.21 12:49 신고 | PERMALINK | EDIT/DEL
글을 잘못 읽었네요.
아님 내가 제대로 쓰지 못했나?
'푸줏간 앞의 개'는 그 개를 놓고 비유한 것뿐이에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개, 사람이 되지 말자는 말이잖아요.
전 개가 아무리 예뻐도 사람보다 나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개는 짐승일 뿐...

그리고 50점이 평균이라 생각하는 게 아니라
평균을 50점으로 잡고 글을 쓴 거에요.
평균보다 1점이라도 잘하자는 뜻이잖아요.
누나 | 2009.04.22 17:3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사람보다 개가 훨 낫다..
니..글.. 잘못 읽은거 아니다.
내 생각을 얘기한것뿐..
뭐..일일히 잘못됐다고 지적할것 까지는 없잖냐..?
왜이리..전투적이냐..?
개를 길러보지 못한 네가..단정지어서 할말은 아닌듯..
Favicon of https://heartone.tistory.com BlogIcon 심장원 | 2009.04.23 00:48 신고 | PERMALINK | EDIT/DEL
다른 건 몰라도, 사람보다 개가 훨 낫다는 데 난 반대요.
누나는 어떻게 내가 개를 길러보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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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8 17:59

다만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먹고사는 데 대책이 없어 가난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번거롭게도 요즘 열심히 자기소개서를 고쳐 쓰고 있다. 가끔씩 특별한 것을 요구하는 회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네 출판사에서 낸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라느니, 자기네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이유를 쓰라느니 하는 회사들이 있다. 그 가운데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자세히' 쓰라고 요구한 회사도 있었다. 그 회사 덕분에 996자를 새로 써야 했다. 위에 적힌 문장은 새로 쓴 글 가운데 한 문장이다. 


1991년에서 2001년까지 11년을 996자, 그러니까 200자 원고지 다섯 장으로 줄여 쓴 셈인데, 나는 원래 이 부분은 필요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이쪽 일을 시작한 2002년 이후만 적어도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뻔한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자하신 아버지와 자상하신 어머니 어쩌구 저쩌구......" 남들 다 쓴다는 그런 내용은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껏 어떤 회사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해 얼마나 실력을 쌓았는지만 쓰려고 했다. 사람을 뽑아야 하는 회사로서는 이 사람이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잔가지를 쳐 내어 출판 경력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어제 거여동 사는 막내 동생네 다녀왔다. 제수씨가 유민이에게 벙어리장갑이 필요하다고 전화한 적이 있었다. 꽤 오래전 일인데 얼마 받지도 못하는 알바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 어제 다녀왔다. 장갑은 핑계일 뿐이었다. 동생네 다녀간 게 작년 11월이다. 1년이 넘도록 가 보지 않았으니 놀러 오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잘 얻어먹고 왔다. 


밥 먹다 엄마 얘기가 잠깐 나왔다. 어떻게 지내냐고 내가 심드렁하게 물었고 동생 또한 짧게 대답했다. "그냥 그냥 지내지 뭐." 그렇다면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그렇다. 결국 예언은 스러졌다. 우리에게 했던 그 많은 예언들, 그 많은 언약들이 모두 스러져 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며,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우리 운명"이라던,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그토록 심오한 비밀들은 허황한 꿈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애당초 그것은 예언이 아니었다. 그저 부질없는 욕망, 정신 잃은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어리석었다. 그런 거짓말에 속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아니다. 나는 그 말들을 믿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기름 부은 예언자의 정체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나만이 제정신이었기 때문에 도저히 그런 거짓 예언을 믿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내 나약한 믿음을 탓하기도 했다. 어쩌면 예언이 성취되지 못한 이유가 모두 다 내 의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책해야 했다. 정말로 신이 그렇게 언약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 뒤로 십여 년이 흘렀다. 이제 자칭 예언자는 늙은이가 되어 막내 아들에게 얹혀살고 있다. 그런 늙은이에게 다시는 계시 따위는 없을 것이다. 아니, 한 번이라도 그런 적이 있었던가? 그렇게, 결국 그렇게 예언은 아스라이 스러졌다. 예언이란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차라리 거짓말이거나 부질없는 욕망이었을 테니까. 


그 사이 조카 유민이도 많이 컸다. 작년에 봤을 때는 버르장머리 없이 누워만 있더니, 어제는 일어나 맞아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작년에 봤을 때는 아비를 닮아 그런지 생긴 게 꽤나 괴상하더니만, 이제는 제법 귀엽다. 아마 점점 아빠보다는 엄마를 닮아 가는 듯하다. 정말 다행이다. 귀찮아서 카메라를 챙겨 가지 않아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동생 부부에게는 유민이가 소심한 것이 걱정인가 보더라. 아빠 닮아서 그럴까 엄마 닮아서 그럴까? 그렇지만 돋아난 젖니라고는 8개뿐인 이 아기에게 세상은 아직 낯설 수밖에. 이제 겨우 세상을 열일곱 달 겪은 아기에게 바라기에는 무리지 않을까? 그렇지만 나는 유민이가 최소한 우리들보다 더 씩씩하게 자랄 것이라 확신한다. 자신감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바로 어렸을 때 얼마나 사랑받았느냐 하는 점이라고 하는데, 유민이는 자기 삼촌들이 받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다만 할머니라는 사람이 손자까지 망치려 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유민이에게 형제(사촌 형제까지 해서)가 얼마나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막내 동생 얘기로는 하나 더 낳고 싶다고는 하지만, 요즘처럼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만만한 선택은 아닐 테고, 최소한 큰아버지 쪽으로는 사촌 형제가 없을 것이고, 둘째 삼촌네도 하나 아니면 둘일 테고. 어쩌면 유민이가 유일한 손자일지도 모른다. 제발 아들들한테 저지른 잘못을 손자에게 똑같이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아직도 소심하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


막내 동생네 가족. 6월 1일 방이동에서 같이 냉면 먹고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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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3 23:28
이사 와서 좋은 점 하나가 맘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맘 편하게'라고 쓴 것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겠다. 차라리 '몸 편하게'가 맞겠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전에 광명 살 때는 내 '금 같고 은 같은' 시디가 상할까 봐 잃어버릴까 봐 이삿짐 상자에서 꺼내 놓지를 못했다. 책은 쉽게 절판되지 않아서 상하거나 없어져도 다시 구할 수는 있지만, 요즘처럼 음반 산업이 죽어 있을 때는 시디 구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책장 위에 올려 놓은 상자를 내려서 시디를 골라야 했다. 시디 한 장 찾으려면 두세 상자는 꺼내 봐야 했으니 몸이 편하려야 편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책상 바로 옆에 시디장이 하나 붙어 있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큰맘 먹고 시디랑 디브이디를 꼽아 놓을 장을 하나 짰다.

요즘 주로 듣는 건, 여전히 팻 메시니와 에이브릴 라빈이랑 엘리엇 스미스다. 특히 엘리엇 스미스 음악이 많이 그리웠다. 전에 은경이가 구워 준 시디에 엘리엇 스미스 음악이 많이 있었는데 몇 번 이사하고 나서는 그 시디가 어디 있는지 찾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 엘리엇 스미스 시디 두 장을 사서 듣고 있다. 거의 자살이 예정되어 있는 목소리와 음악이 아닌가 싶다.

어제 늦게 잠들었는데 일찍 깼다. 5시 30분쯤 깨서 누워 있다가 8시쯤 회사 갔다. 아침에 따뜻한 이불 속에서 밍그적(사전 찾아 보니 '밍그적거리다'라는 말은 북한 말이라고 한다. 남쪽 말은 '뭉그적거리다'라고 한다. 그럼 내가 지금껏 '밍그적거리다'는 말을 더 많이 쓰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나를 그렇게 가르친 사람이 바로 간첩이란 소린가?)거리고 있다 문득 떠오른 말이 있다.
"욕망에 끌려 다니지 말자."
(처음에는 '욕망의 노예가 되지 말자'는 말이 생각났는데, 그 말보다는 '욕망에 끌려 다니지 말자'는 표현이 더 깔끔하다 싶다.)

이래저래 인간은 욕망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목숨붙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인간으로서 기품이나 품위는 잃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 지금 내 모습이 욕망에 푹 빠져 있는 꼬락서니기는 하다. 혼자 있으니 넘쳐 나는 자유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래도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꽉 잡힌 회사 일정에 맞춰 열심히 몸과 머리를 굴리고 있지만 토요일 일요일 쉬는 날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그나마 어제는 명희 누나랑 희진이랑 수다라도 떨어서 괜찮게 보낸 하루였기에 다행이기는 하다. 두 사람 덕분에 내 업보를 줄일 수 있었으니까. 하여간 사람으로 산다는 게 그렇게 만만한 건 아니다. 그래도 난 사람으로 살아남고 싶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그런 얘기는 아니다. 다만 할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말이다.

오늘 신문 읽다가 그리고 오랜만에 산 <팝툰>에서 좋은 글귀를 찾았다. 먼저 <팝툰>에서.

"...... 악연이 천생연분으로 끝나는 건 트렌디 드라마의 공식 같은 건대 그렇다면 시대를 조금이나마 앞서 나가는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팝툰> 29호 편집장 이성욱이 쓴 글에서)

2006년 노벨 문학상을 탄,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이 우리나라에 왔다. <한겨레>에 오르한 파무크와 황석영이 나눈 대담이 실렸는데 조금 옮겨 본다.

"책상 앞에 혼자 앉아서 글을 쓴 35년 동안 보이지 않는 경계를 끊임없이 발견했다. 작가는 금지되어 있는 것들, 삶을 제약하는 것들을 깨서 일상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함께 이야기를 나눈 작가 황석영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여태껏 썼던 작품들은 모두 경계를 넘나들고, 경계를 깨거나 경계에 속박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회적 경계, 국가적 경계와 우리 안에 내면화해 있는 여러 경계를 뛰어넘고, 서로 다른 바를 인정하면서 다원주의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작가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한겨레>에서 본 기사와 저녁에 <팝툰>에서 읽은 글. 난 이게 같은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만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라는 것쯤은 알아서 이치에 맞게 머리가 돌아가는 목숨붙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누구 말대로, 구태여 인간이 필요가 있을까? 물론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욕망에만 이끌리는 따라지목숨에서 벗어나려면 한번쯤 생각해 볼 거리들이 아닌가 싶다.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사람으로 사는 게 정말 쉽지 않다.
정주 | 2008.10.24 09:3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어떤 모임에 대화자로 초청받았는데 위의 글을 좀 인용할게요. 그냥 가져가려다가..^^
Favicon of https://heartone.tistory.com BlogIcon 심장원 | 2008.10.24 15:29 신고 | PERMALINK | EDIT/DEL
그렇게 해. 초청받았다니 부럽다 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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