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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시'에 해당되는 글 2건
2010.12.31 15:48

오전 10시 55분 그는 911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여자 아이들 열 명을 인질로 잡고 있다. 모든 경찰은 건물에서 나가기를 바란다. 지금 당장 나가지 않으면 2초 안에 아이들은 죽을 것이다. 2초 안에!” 


2008년 가을 친구 소개로 <아미시 그레이스>(Amish Grace)란 책을 편집하게 되었다. 백수로 지낼 때여서 “얼씨구나” 하고 받았다. 웬걸, 곧 ‘이런 개 같은……’이 되고 말았다. 번역된 원고를 누가 한 번 교정 본 것이라기에 한 보름이면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두 달이나 붙잡고 있어야 했다. 무슨 말인지 대충은 알겠지만 명확하지 않은 문장 투성이었다. 한 문장씩 원서와 대조해 확인한 다음 우리말답게 손보는 지루하고 지난한 작업을 거쳐야 했다. 하도 힘들어서 나중에는 책상에 앉는 것 자체가 겁이 날 정도였다. 그렇다고 포기하거나 대충하고 싶지는 않았다. 몇 쪽 작업하다가 그만 울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로버츠는 여자 아이들에게 돌아섰다. “너희들은 우리 딸을 대신해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방에 있던 열세 살짜리 소녀 메리언이 재빨리 어린아이들을 다독이며 아이들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려고 했다. 아이들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서는 동생들을 지켜야 한다는 자신의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했다. 메리언이 말했다. “나를 먼저 쏘세요.”(51쪽)


2006년 10월 2일 월요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니켈 마인스에 있는 아미시 초등학교에 한 남자가 난입해 아이들을 총으로 쏘고 자살했다. 여자 어린이 다섯 명이 죽고 다섯 명이 크게 다쳤다. 이른바 ‘아미시 마을 총기 난사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미국 사회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아미시 사회는 미국에서 물질문명에 물들지 않은 거의 유일한 곳으로, 미국인들이 마지막 남은 천국인 양 동경하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총기 사건이 터지다니……. 이제 미국에서 안전한 곳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게 된 꼴이다. 그렇지만 정작 더 놀랍고도 감명 깊은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용서였다. 곧바로 아미시 사람들은 살인자인 찰스 로버츠를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그이의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복수와 고소가 넘쳐 나는 미국 사회로서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낯선 충격이었다. <아미시 그레이스>는 니켈 마인스 총기 사건에서 시작해, 총기 사건 뒤 아미시 사람들이 어떻게 범인을 용서하고 비극을 초월했는지 보여 준다.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눈물이 고였다. 빨간 펜을 들고 징징 짜는 남자라니. 꼴이 참 우스웠다. 그렇지만 “나를 먼저 쏘세요”라니! 어떻게 열세 살짜리 아이에게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 아이가 용감할 수 있었던 건 무슨 까닭일까? 그리고 어떻게 아미시 사람들은 그토록 쉽게 살인자를 용서할 수 있었을까? 용서야말로 누구나 찬양하지만 모두들 피하고 아무나 못하는 것 아닌가?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는 내 밥벌이를 핑계로 나를 찬 옛날 여친이 아직 밉고, 나를 부당하게 해고하고도 잘난 척하는 그 사장놈은 더더욱 밉다. 게다가 내 밥상에서 김치가 사라지게 만든 대통령은 어떤가? 배추 대신 양배추로 김치 해 먹으라는 그 어처구니없는 대통령이란 작자를 내가 어떻게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전혀 용서할 생각이 없다. 미운 사람 고운 데 없고, 고운 사람 미운 데 없다는 속담대로 여전히 나는 미운 사람이 밉고 앞으로도 미워할 작정이다. 


돌아보면 이런 게 인연인지 모르겠다. 나는 <아미시 그레이스>를 우연히 만났을 뿐이다. 게다가 나를 정말 힘들게 한 책이었다. 그렇지만 내 편집 경력에서 빼고 싶지 않은 작업이었다. 원고를 읽다가 울어 본 편집자가 얼마나 될까? 거의 없을 것이다. 이제 10월이면 아주 잠깐이나마 아미시 사람들과 그들이 보여 준 용서에 대해 생각해 본다. 평범한 사람인 내가 얼마나 관대해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한 번 더 곱씹어 본다. 물론 개념은 없고 똘기만 충만한 그 인간들은 정말 밉다.


아미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아미시 그레이스>에 잘 설명되어 있다. 


Amish Grace와 <아미시 그레이스>

이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 소식지인 <날자꾸나, 민언련> 10월호에 실린 글이다. <날자꾸나, 민언련>에는 '이달의 인물'이라는 꼭지가 있는데 어쩌다가 내가 청탁받아 쓰게 되었다. 10월과 관련 있는 인물 중에서 골라야 해서 처음에는 골치가 아팠지만 전에 써 놓은 블로그 글(아미시 그레이스, 어떻게 용서는 비극을 초월하였나) 덕분에 마무리는 쉽게 할 수 있었다. 200자 원고지 10매 분량을 거의 정확하게 지켜서(1,998자) 담당 간사에게 칭찬받았다. 헤헤. 


책 내용도 훌륭했지만 내게 이 책이 중요한 것은 편집하면서 대단히 좋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원서와 대조하는 과정은 생략하려 했다. 그 작업료로 원서 대조까지 하면 굶어 죽기 십상이었다. 그렇지만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참 좋은 책을 '그 따위' 책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덕분에 원서 Amish Grace와 번역을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하는 작업을 먼저 해야 했다. 그 지난한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게 많다. 우리말과 영어가 어떻게 다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고, 우리말을 어떻게 구사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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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3 23:30
며칠 전 내 블로그에 <소설>이라는 재미있는 소설을 짧게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 앞부분을 보면 재세례파(아나밥티스트, anabaptist)에 관한 간결하면서도 자세한 내력이 나온다. 독일과 프랑스 국경 지대인 알자스(알퐁스 도데가 쓴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기도 한 곳)에 사는 독일계 사람들은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와 울리히 츠빙글리에 남다른 반응을 보였다. 특히 유아세례가 옳지 않다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스스로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나이에 세례를 받는 게 올바르다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은 이 유별난 사람들에게 깔본다는 말맛을 띤 재세례파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들은 독특한 신앙을 이유로 모진 박해를 받았지만 신앙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때마침 영국 사람 윌리엄 펜(이 사람은 퀘이커 교도란다)이 신대륙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주선해 주었고, 재세례파 사람들은 자유로운 신앙을 찾아 지금 펜실베니아라 불리는 곳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자면, 펜실베니아는 '펜의 숲'이란 뜻이란다. 

한데 펜실베니아에 정착한 사람들도 곧 신앙 문제로 둘로 나뉘게 되었다. 더 보수적인 사람들, 그러니까 전혀 문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아미시(amish) 또는 아만 파라 불리며 주로 랭커스터에 자리를 잡았고, 덜 보수적인 사람들, 문명을 적극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지혜롭게 사용하자는 사람들은 메노나이트(mennonites) 혹은 메노 파라 불리며 주로 드레스덴에 자리를 잡았다. 제임스 미치너는 <소설> 의 주요한 화자 가운데 한 사람인 루카스 요더는 집안이 메노 파, 아내 엠마 요더는 아만 파라는 내력을 두 쪽에 걸쳐 짧지만 딱 맞춤한 짜임새로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뉴스앤조이' 사무실에 가면서 읽었다. 뉴스앤조이는 이번에 <아미시 그레이스>(Amish Grace)라는 책을 준비하면서 번역된 원고를 손봐 줄 편집자를 찾았고 지건이가 나를 소개해 주었다. 돈을 많이 주지는 못한다고 해서 얘기나 좀 해 보자고 찾아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에서 이 부분을 읽으며 '이거 나보고 하라는 소린가 보다'는 느낌이 문득 떠올랐다. 어차피 놀면 뭐 하나 하는 생각에 덥썩 받아오기는 했다. 번역도 잘된 거 같아서 쉽게 할 수 있을 거란 속셈도 없지 않았다. 

원고는 몇 년 전 아미시 마을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었다. 2006년 10월 2일 오전 10시 20분께 펜실베니아 랭커스터 카운티 니켈 마인스에 있는 아미시 학교에 한 사람이 트럭을 몰고 들어왔다. 동네 사람인 찰스 로버츠였다. 곧이어 11시 5분께 총소리가 여러 발 울렸다. 학생들을 한 줄로 세워 놓고 총을 쏜 찰스 로버츠는 그 총으로 자살했다. 여자 어린이 다섯 명이 죽었고, 다섯 명이 크게 다쳤다. 이른바 '아미시 마을 총기 난사 사건'이다. '파란 펜'을 들기 전에 먼저 원고를 읽는데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친다. 

그러고 나서 로버츠는 여자 아이들에게 돌아섰다. "너희들은 우리 딸을 대신해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방에 있던 13살 소녀 마리안은 재빨리 어린아이들을 다독이면서 그 아이들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였다. 아이들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서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자기의 의무를 다하려 노력했다. 마리안은 말했다. "나를 먼저 쏘세요."

어떻게 열세 살짜리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뿐만 아니다. 

아미시 사람들은 찰스 로버츠의 홀어미와 자녀들도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남편과 아버지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생활도 잃어버린 희생자-라는 사실을 빨리 깨달았다. 희생된 아미시 사람들과는 달리 로버츠의 가족은 죄 없는 아이들과 그 가족에게 고통을 안긴 가족을 두었다는 부끄러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벌써 몇몇 아미시 사람들은 로버츠의 가족과 접촉하고 있었다. ...... 

총기 난사 사건 다음 날, 에이미의 할아버지는 가족을 잃은 아미시 사람의 집을 방문했는데 그 집은 로버츠가 우유를 수거하던 집이었다. "나는 죽은 아이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엌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서로 얼싸 안았습니다." 로버츠의 친척이 회상했다. "그들은 어떤 원한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용서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정말 믿기 힘든 말이었고 알아듣기 힘든 말이었습니다." 그 뒤에 일어난 일들을 떠올리면서 그 친척이 말했다. "많은 아미시 사람들이 용서와 위로와 함께 선물을 주려고 에이미의 집에 들렀습니다. 나는 아미시 사람들이 에이미네 집에 올 때 창문으로 그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컬럼바인 사건을 비롯해 지금까지 미국에서는 수많은 총기 사건이 일어났다. 그렇지만 아미시 마을 총기 난사 사건은 이전 사건에서 볼 수 없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용서. 누구나 말하면서 아무나 못하는 것. 말은 쉬어도 정작 하기 어려운 것, 그게 바로 용서 아닐까? 세상은 현대 문명을 기꺼워하지 않는 아미시 사람들을 때로는 신기하게 여기기도 하고 때로는 어리석다 깔보기도 했는데, 정작 그 기고만장한 세상은 용서를 무엇이라고 가르치고 있는가? 세상은 이런 용서를 보여 줄 수 있는가?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자본주의 시대에는 결국 용서도 단지 말로 소비할 뿐일 텐데 말이다. 우리는 아미시 사람들이 보여 준 용서와 겸손, 자비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바로 어제가 2주년인 10월 2일이었다. 원고를 받아 와서 일을 하고는 있지만 미처 깨닫지 못하다 <뉴스앤조이>에 올라온 기사를 보고서야 그날이 그날인 것을 알았다. 개념 없이 사는 내 꼴이 참으로 한심하다. 

언젠가 유숙이 누나랑 산책하는데 누나가 노래를 나지막이 부르더라.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이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더라." 그래, 내 영혼이 은총을 입은 건 내가 잘 아는데 나는 왜 요렇게밖에 못 사는 것일까? 누나가 엄마 얘기를 잠깐 꺼냈지만 난 지금껏 고수한 방침대로 무시했다. 난 아직 세상에 속한 사람이니까.

우습게도 내가 아미시 사람들을 알게 된 것은 <엑스 파일> 때문이다. 언젠가 <엑스 파일>에서 아미시 사람들을 소재로 에피소드를 하나 만든 적이 있다. 내용은 아주 단순했다. 멀더가 아미시 사람들을 조사하다가 그 사람들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바로 쳐들어갔는데 그 사이 다 사라졌다는,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때 본 검은 옷, 수염, 모자, 마차 이런 것들이 아미시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굳어지게 된 셈이다. 그렇지만 난 그 사람들이 인간의 이기심을 부추기는 문명을 거부해 그렇게 사는 줄로만 알았다. 신앙이 문제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는 동안 아미시 공동체가 기독교인 한동아리라는 것만은 어렴풋이 알게 되었으나, 그 계통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바로 얼마 전이었다. 아무튼 아미시 공동체가 미국 사회에 비친 모습이 그런 듯하다. 마치 외계인 같은 이미지 말이다. 

| 2008.10.15 02:06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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