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133)
살아 있다는 느낌 (46)
익자삼우 (23)
요산요수 (12)
수불석권 (23)
구이지학 (11)
천의무봉 (16)
섬섬옥수 (2)
pawn shops near me that buy guns
pawn shops near me that buy guns
http://info.silvercentral.net
http://info.silvercentral.net
http://sightings.elvissighting..
http://sightings.elvissighting..
http://clients.trafficbackdoor..
http://clients.trafficbackdoor..
business.easyprofitsreview.com
business.easyprofitsreview.com
92,198 Visitors up to today!
Today 1 hit, Yesterday 0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Candle
'시'에 해당되는 글 3건
2011.01.28 18:02

한국의 현대시가 소란스러웠던 것은 잠깐이었다. 시를 음미할 수 없는 자들이 낡은 말풍선을 불어대며, 시의 그 근원적인 초월지향과 서정성을 야멸치게 능멸한 세월이었다. 이제 그들은 간 곳 없다. 그것이 오늘의 날렵한 현대시의 편협성이었다는 것을 그들도 알기 바란다. 현실과 기호는 다른데, 그들은 말들의 현실 속에서, 현실의 육체를 유기했다. 그래서 또 한 번 (신이 아니라) 시는 뒷걸음질 쳤다. 그런 풍경 앞에서 오래도록 침묵한 것이 아니라, 낮은 휘파람을 불던 시인들도 있었을 것이다. 껍데기는 껍데기고 알맹이는 말랑말랑한 것이다. 
99쪽. 이명원이 쓴 해설 <말랑말랑한 귀 - 김일영 시의 특이성> 가운데 

올해 처음 읽은 시집이다. 그런데 별로 건질 게 없었다. 외려 위에 옮긴 해설이 더 기억에 남았다. 오랜만에 읽은 시집이라 그런가 싶기도 한데....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 김일영 씀, 실천문학사, 실천시선 181

조팀장 | 2011.02.23 17:4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우연히 들어왔다가... 티스토리에 가입을 안 하고 쓰려니 생뚱맞게 댓글을 남깁니다.
일 찾으시면 언제든 전화주세요. 010-2838-9110 이상한 곳 아니고, 좋은 출판사입니다. 조팀장입니다.
죄송.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1.01.18 09:21

2008년 1월 5일 포항 앞바다에서 찍은 해돋이. 50mm 렌즈로 찍었는데, 이럴 때는 정말 300mm가 필요해.


요 몇 해 동안 새해 계획이란 걸 세우지 않았다. 사실 나는 묵은해와 새해라는 선 긋기조차 달갑지 않다.그러니 내 머릿속에는 새해 계획이란 개념이 전혀 없을 수밖에. 이 박복한 사람은 그저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뿐이었다. 나는 하루하루가 참으로 버거웠다. 

한편으로는 늙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세시에 괜히 호기를 부렸다가 세밑에 낭패감만 남는 경험은 이제 할 만큼 한 셈이다. 가슴 아프게도, 하루하루 나이를 먹으며 깨달은 것은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나이를 먹는 것만큼 절망 또한 깊어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뭔가를 꿈꿀 수 있다. 외려 절망이라는 나락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존재가 인간이지 않은가? 내 박복한 신세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 삶을 즐겁게 해 줄 작은 계획 몇 개를 준비하련다. 세계 평화를 이룰 수는 없어도 내 마음만큼은 평화로울 수 있을 테니까.   

1. 공부 
편집자로서 우리말 공부는 꾸준히 해 왔다. 올해도 계속 공부하고 궁리할 생각이다. 대신 영어랑 한문, 수학을 공부 좀 하련다. 수학은 고등학교 때 보던 <수학의 정석>을 다시 보는 것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거의 20년이나 지났지만 아직 안 버렸다. 그 두꺼운 몇 권(고등학교 때 난 이과였다)을 여태 버리지 않은 나도 참 대단하다.   

2. 책 읽기 
책은 지금껏 해 온 대로 읽을 테지만, 권수를 좀 줄일 생각이다. 한 서른 권 정도? 대신 좋은 책 한 권을 두 번, 세 번 읽을 생각이다. 되풀이해 읽은 책은 서평도 쓸 생각이다. 특별히 시를 많이 읽을 생각이다. 집에 시집이 쉰 권 정도 있다. 한 주에 한 권씩 읽으면 올해 안에 다 읽을 수 있을 듯하다. 

3. 커피 줄이기, 시럽 안 먹기 
한 달에 커피값으로 10만 원 정도 쓴다. 내가 마시는 데 7만 원가량, 남들 사 주는 데 3만 원가량 나가는데 거의 매일 마시는 셈이다. 좀 줄일 생각이다. 우선 홀수날만 마시기로 했다. 아직은 잘 지키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나는 커피를 마실 때 시럽을 많이 넣어 아주 달게 마시는 편이다. 이제는 달게 마시지 않으려고 한다. 이 다짐도 아직 잘 지키고 있다. 

4. 음악 듣기 
집에 시디가 한 250장 정도 있다. 하루에 한 장씩 들으려고 한다. 거진 일 년이면 다 들을 듯한다. 어제 고른 시디는 핑크플로이드(Pink Floyd)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the Dark Side of the Moon)이다. 지금은 콜드플레이(Coldplay) <레프트라이트레프트라이트레프트>(LeftRightLeftRightLeft)를 듣고 있다.

5. 일기 쓰기 
뭘 하고 사는지는 아이캘(iCal)로 정리해 놓지만 아무래도 일기 쓰기만 못한 거 같다. 요즘 느끼는 건데, 적는 자보다 무서운 사람이 없다. 올해부터는 일기를 꾸준하게 쓰려고 한다. 솔직히 아직 한 번도 안 썼다. 시간 내서 꾸준히 써야겠다. 

뭐 이정도? 

솔직히 올해 바라는 소원이 하나 있다. 예의 없고 개념 없는 것들 만나지 않기. 살면서 이 바람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요 몇 달 내가 당한 징한 일들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간절한 소원도 없다. 

새해 복들 많이 받으시기를....  

신동훈 | 2011.01.18 13:0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나도 커피 사조
Favicon of https://heartone.tistory.com BlogIcon 심장원 | 2011.01.18 21:18 신고 | PERMALINK | EDIT/DEL
사장님이 커피 사달라고 하니까 신기해.
내가 가로수길로 가면 되나?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8.08.09 11:00
말이 늙으면 시는 죽으리 

어떤 말이 시가 될 수 있고 어떤 말이 시가 될 수 없을까? 일상어와 시어는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모든 일상어가 시어로 쓰일 수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문장과 대화에서 쓰이는 모든 말은 시어가 될 수 있다. 우리 현대시에는 표준어뿐만 아니라 꽤 오래 전부터 방언과 비속어까지 심심찮게 시어로 등장했다. 김용택은, 

“환장하것네 환장하것어
아, 농사는 우리가 쌔빠지게 짓고
쌀금은 저그들이 앉아 올리고 내리면서
풍년 잔치는 저그들이 먼저 지랄”
<마당은 비뚤어져도 장구는 바로 치자>

이라며 전라도 사투리를 통해 노골적으로 농민들의 편을 든다. 김진경은, 

"복어새끼처럼 왜 그런대유
배에다 바람을 잔뜩 집어넣구
가시를 있는 대루 세우믄 누가 무서워헐 줄 아남유”
<복어새끼처럼 왜 그런대유>

하고 충청도 말로 능청을 부린다. 안상학은, 

“보래요. 삼시세끼 빵만 묵고 살라믄 살니껴? 대한민국 워델 가도 그런 사람 없을께시더”
<강씨 FTA론>

라면서 경북 안동 말을 시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김수영이 일찍이. 

“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
물어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성>

며 너스레를 떨자, 한참 후에 이에 화답하듯 황지우도 풍자의 대열에 합류한다. 

“간밤에도 그는 외국 바이어들을 만났고, “그년”들을 대주고 그도 “그년들 중의 한 년”의 그것을 주물럭거리고 집으로 와서 또 아내의 그것을 더욱 힘차게, 더욱 전투적이고 더욱 야만적으로, 주물러주었다.”
<徐伐, 셔발, 셔블, 서울, SEOUL>

 이에 질세라 박남철은 한 발 앞서간다. 

“내 시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구시대의 독자놈들에게→차렷, 열중쉬엇, 차렷,”
<독자놈들 길들이기>

하고 호통을 친다.

현대어뿐만 아니라 중세국어, 영어, 화살표 같은 기호까지 시어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 그리고 문장에 쓰이는 마침표·쉼표·물음표·따옴표·줄표와 같은 부호가 시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못해 절대적이다. 심지어 옥타비오 파스는 침묵도 말이라고 한다. 

“침묵조차도 무언가를 말하는데, 침묵은 무(無)가 아니라 여전히 기호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활과 리라>

그런데 시어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강철 조각이 아니다. 적어도 용접공이 강철과 강철을 이을 때 일어나는 불꽃이거나 그 불꽃의 뜨거움이거나 불꽃이 내장하고 있는 위험한 미래여야 한다. 그래서 때로 시어는 한글맞춤법이나 국어순화운동에 딴청을 부리기도 한다. 나는 자장면보다 ‘짜장면’이, 메리야스보다 ‘런닝구’가, 브래지어보다는 ‘브라자’가, 펑크보다는 ‘빵꾸’가, 머큐로크롬보다 ‘빨간약’이나 ‘아까징끼’가 더 시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옥타비오 파스도 시적인 언어는 일상으로부터 일탈할 때 태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시적 창조는 언어에 대한 위반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작용의 첫 번째 행동은 말들을 지탱하고 있는 뿌리를 뒤흔드는 일이다. 시인은 일상적인 일들, 그리고 그것들과 맺고 있는 연관 관계에서 말들을 뿌리째 뽑아내어 일상적 언어의 획일적인 세계와 결별시킨다. 이때 단어들은 이제 막 태어난 것처럼 생생한 것이 된다.”

동아시아의 한자문화권 전통 속에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우리는 한자 혹은 한자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시인들은 한자의 형상이 드러내고 있는 시각적 이미지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한자가 시인들을 자극하고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기호의 의미는 같지만 ‘산’이라고 쓸 때와 ‘山’이라고 쓸 때 그 함의는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우스운 이야기 하나. 어릴 적에 나는 음식점 간판에 적힌 ‘산낙지’를 보고 한동안 산에 사는 낙지인 줄 알았다. 가재처럼 심산유곡의 돌덩이 밑 어디쯤 사는……)

그런데 뜻글자라고 해서 그 뜻과 형상이 다 미학적으로 완전한 것은 아니다. 관념적인 한자어는 시에서 척결해야 할 대표적인 낡은 언어다. 시적 언어의 성취 목표를 한 50년 이전쯤에 두고 있는 사람일수록 관념적인 한자어를 쉽게 지워버리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유치환이 <깃발>에서 “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라고 노래한 것은 1930년대 말이었고, 박인환이 “사랑의 진리마저 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라며 절망스러워한 것은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였다. 김현승이 ‘堅固한 고독’을 발표한 때는 60년대 중반이었다. 이 시인들이 ‘애수’와 ‘애증’과 ‘견고한 고독’을 노래할 즈음에 그 시어들은 ‘막 태어난 것처럼 생생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그 시어들은 시간의 무덤에서 하얗게 풍화된 죽은 말들이다.

무엇보다 관념적인 한자어를 써야만 그럴 듯한 시가 된다는 착각이 문제다. 정진규는 시에서 관념이 ‘화자의 우월적 포즈’(<질문과 과녁>)라고 꼭 집어 말한 바 있다. 당신은 관념적인 한자어가 시에 우아한 품위를 부여한다고 착각하지 마라. 품위는커녕 한자어 어휘 하나가 시 한 편을 누르는 중압감은 개미의 허리에 돌멩이를 얹는 일과 같다. 신중하고 특별한 어떤 의도 없이 아래의 시어가 시에 들어가 박혀 있으면 그 시는 읽어 보나마나 낙제 수준이다.

갈등 갈망 갈증 감사 감정 개성 격정 결실 고독 고백 고별 고통 고해 공간 공허 관념 관망 광명 광휘 군림 굴욕 귀가 귀향 긍정 기도 기억 기원 긴장 낭만 내공 내면 도취 독백 독선 동심 명멸 모욕 문명 미명 반역 반추 배반 번뇌 본연 부재 부정 부활 분노 불면 비분 비원 삭막 산화 상실 상징 생명 소유 순정 시간 신뢰 심판 아집 아첨 암담 암흑 애련 애수 애정 애증 양식 여운 역류 연소 열애 열정 영겁 영광 영원 영혼 예감 예지 오만 오욕 오한 오해 욕망 용서 운명 원망 원시 위선 위안 위협 의식 의지 이국 이념 이별 이역 인생 인식 인연 일상 임종 잉태 자비 자유 자학 잔영 저주 전설 절망 절정 정신 정의 존재 존중 종교 증오 진실 질서 질식 질투 차별 참혹 처절 청춘 추억 축복 침묵 쾌락 탄생 태만 태초 퇴화 패망 편견 폐허 평화 품격 풍자 피폐 필연 해석 행복 향수 허락 허세 허위 현실 혼령 혼령 화려 화해 환송 황폐 회상 회억 회의 회한 후회 휴식 희망

“진부한 말이란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쓰는 말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모든 경서와 옛사람들이 이미 언급한 말의 대부분이 이른바 진부한 말이다.”
(김창협, <농암잡지> 외편

시는 이런 진부한 시어의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다. 사유라는 것은 원래 그 속성상 관념적인 것이고 추상적인 법이다. 하지만 관념을 말하기 위해 관념어를 사용하는 것은 언어에 대한 학대행위다. 관념어는 구체적인 실재를 개념화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관념어가 시만 좀먹고 있는 게 아니다. 예식장에도 있다. 흔해빠진 주례사가 그것이다. 행복과 공경과 우애와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간 주례사가 귀에 들리면 한시바삐 밥을 먹으러 가고 싶어진다. 진정한 사랑은 개념으로 말하는 순간 지겨워진다. 황지우의 시처럼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늙어가는 아내에게)> 것, 그게 사랑의 표현 방식인 것이다.

관념어는 진부할 뿐 아니라 삶을 왜곡시키고 과장할 수도 있다. 또한 삶의 알맹이를 찾도록 하는 게 아니라 삶의 껍데기를 어루만지게 한다. 당신의 습작 노트를 수색해 관념어를 색출하라. 그것을 발견하는 즉시 체포하여 처단하라. 암세포 같은 관념어를 죽이지 않으면 시가 병들어 죽는다. 상상력을 옥죄고 언어의 잔칫상이어야 할 시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관념어를 척결하지 않고 시를 쓴다네, 하고 떠벌이지 마라.

관념어를 떠나보내고 나면 그 휑하니 빈자리가 몹시 쓸쓸하게 보일 것이다. 당신은 그 빈자리를 오래 응시하라. 당신의 상상력이 가동하기 시작할 것이고, 상상력은 이미지라는 처녀를 데리고 올 것이다. 말로 그림을 그릴 줄 아는 그 처녀를 꽉 붙잡고 놓지 마라. 관념어를 떠나보낸 자리에 그 처녀를 정실부인으로 들어앉혀라. 그래도 관념어의 옛정이 그리워져 못 견디게 쓰고 싶거든 그 말을 처음 쓴 지 30년 후쯤에나 써라.

당신에게 시 한 편을 읽어주겠다. 이시영의 <그대의 시 앞에> 전문이다. 나는 이 시에서 ‘고독’이라는 말을 발견하고 온몸이 찌릿찌릿해졌다. 이쯤은 되어야 고독을 말할 자격이 있다.

고독을 모르는 문학이 있다면
그건 사기리
밤새도록 앞뜰에 폭풍우 쓸고 지나간 뒤
뿌리가 허옇게 드러난 잔바람 속에서 나무 한 그루가
위태로이 위태로이 자신의 전존재를 다해 사운거리고 있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지난 봄부터 한겨레신문에 '안도현의 시와 연애하는 법'이라는 글이 실리고 있다. "웬 시?" 뜬금 없이 무슨 시 얘긴가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이해할 수 없는 시대를 산문이나 소설로 풀어내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지랄 같은 시절과는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시로나 소통할 수 없는가 하는 절망감이랄까? 도무지 말을 해도 들을 줄 모르는 '미친'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에 뭔가를 기대한다는 것이 가당한 일인가? 이제 이 시대 우리에게는 오직 구호만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내가 알고 있는 시는 정말 알아들을 수 없는, 시인이라는 사람들의 허위의식이 만들어 내는 '황당한 상상력'만은 아니다. 사실 난 시를 좋아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세상 사람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시를 읽는 사람과 안 읽는 사람. 물론 나는 시를 읽는 사람에 더 마음이 기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시를 읽는 사람이 시를 읽지 않는 사람보다는 아무래도 조금이나마 더 여유 있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고 상상력의 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동안 시를 읽지 못했다. 내게 요즘 어떤 시를 읽고 있다고 소개해 주는 사람도 없고, 꼭 읽고 싶게 만드는 서평도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정작 시를 읽지 않은 까닭은 따로 있다. 내가 게을러 일부러 찾아보려 하지 않았음을 고백하는 게 정직할 게다.

(집에 가서 이어 씁니다.)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