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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2 18:53

송아지야 걱정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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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고 반갑다. 우리 곁에 태어난 걸 환영한다. 너희가 살아남기도 어
려운 험한 세상이다만 한우의 명예를 지켜다오!”

어젯밤 송아지가 태어났다. 우리 마을에서는 소・염소・양계 등 축산을 중고생들이 담당하는데, 소나 염소가 새끼를 낳을 때면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싱글벙글 좋아한다. 무릇 생명의 탄생이란 축복이다. 그래서 사람이든 짐승이든 갓난 것은 모두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이곳은 비탈진 밭이 많아 주로 쟁기로 일을 한다. 몇 해 전 쟁기질할 소 한 마리를 650만원에 구입했는데, 값이 계속 떨어지더니 작년 가을 270만원에 팔렸다. 크게 손해를 보았지만 그가 낳고 간 송아지가 어미가 되어 어젯밤 둘째를 순산한 것이다.

지난봄 우사를 새로 지었다. 친구 신부들에게 ‘한우 펀드’에 투자하시라 꼬드겨서 송아지 두 마리를 200만원씩에 사들였다. 지금은 값이 떨어져 130만원이면 살 수 있다. 친구들과 통화할 때는 ‘펀드’란 말 대신 ‘후원’으로 슬그머니 바꿔 말한다. 체면이 말이 아니다. 어쨌건 태어난 송아지까지 다섯 마리가 되었는데, 두 세 마리를 더 구입하려 한다. 펀드 추락을 막기 위한 시장 개입도 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새 축사는 퇴비 생산 목적으로 지었다. 60㎝ 깊이로 파서 방수를 하고 대량으로 채운 톱밥 왕겨가 소의 분뇨를 흡수하면 유용 미생물(EM)로 자체 발효시킨다. 내년봄이면 퇴비로 쓸 수 있다. 소똥은 축분 중에 가장 효과가 탁월하다. 문제는 사료의 원료인 미국산 옥수수・밀・콩의 90%가 유전자조작 농산물(GMO)인데다, 항생제・성장촉진제・제초제・살균제・방부제 문제로 안심할 수 없다. 사료 값도 3년 전 4600원 하던 것이 요즘 1만800원이다.

우리는 유기농을 하는데 밭농사를 사료가 될 수 있는 작물로 바꾸기로 했다. 추수하고 남은 옥수숫대・콩깍지・야콘・고구마・더덕줄기들을 분쇄하여 발효시키면 영양 좋은 사료가 된다. 분뇨의 질도 좋아 그것이 작물의 퇴비로 가고 작물은 다시 사료가 된다. 이를 ‘경종-축산 순환농법’이라 한다. 그것이 축산비전 제로인 시기에 소 두 세 마리를 더 사려는 이유다. 소값이 더 떨어져도 상관없다. 고기 생산에는 관심 없다.

미국은 곡물 제국이다. 가격 인상만으로도 국내 축산농 농가를 소멸시킬 수 있다. 단연 순환농법이 대안이다. 문제는 그것이 기업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축산 농가는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나 지자체가 농축산 교합 시스템에 관심을 두어야 할 때다. 어쨌건 농업과 축산을 겸하는 일은 소농만이 가능하다. 소농은 감당할 만큼만 하기 때문이다. 사실 신자유주의 시장 질서에서 모든 소규모 체제는 소농과 기업, 국가에 이르기까지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전락한다.

그런데 세계 지성들은 식량 생산과 생태환경 문제의 대안으로, 역설적이게도 ‘소농’에 주목하고 있다. 소농의 생산능력과 가치를 재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로 보아 대농은 부와 권력을 지켰고 소농은 품종을 지키고 전통과 마을 자치의 삶을 지켰다. 농축산 기업은 유전자 변형과 광우병을 가져 왔지만, 소농은 농토와 보호받지 못한 목숨들을 살려냈다. 이는 <녹색평론>에서도 쉽게 배울 수 있다. 이제 국가는 소농을 살리고, 소농은 땅과 식탁을 살리고, 도시인은 육류 소비를 줄여 건강한 섭생을 찾아야 한다.

우리 공동체 마을은 ‘소농’의 신조를 지켜가려 한다. 송아지한테 젖을 물린 채 되새김질하는 어미 소의 커다란 눈망울을 마주 본다. “소야, 걱정하지 마라. 잘 먹고 똥 많이 싸라. 너는 소가 아니고 농사꾼이다.”


박기호 신부


구글에서 '박기호 신부'를 찾아 보았다. 박노해 시인의 형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예수살이 공동체'라는 데도 나오고. 내친김에 '예수살이 공동체'를 찾아 봤다. 물론 이 단체도 천주교 단체인데 사무실이 합정동에 있다. 내가 봄에 합정동 돌아다니다 본 간판이 생각난다. 합정동에 이런저런 기독교, 천주교 단체들이 많이 있는데 예수살이 공동체 간판도 그때 봤던 간판 가운데 하나다. 

박기호 신부님은 단양에 있는 '산위의 마을'이라는 곳에 계시는 것 같고, 예수살이 공동체랑 산위의 마을은 서로 돕는 사이인 거 같다. 요즘 이래저래 천주교에 관심이 많이 생긴다. 전에 형일이가 한 말이 괜한 말만은 아닌 듯하다. 이런 호감, 무시 못할 것이 되어 버렸다. 남녀를 차별하는 천주교라고 날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는 지연이가 들으면 기겁을 하겠지만 말이다. 

서울 살면서 날마다가 죄 짓는 기분이다. 소비의 정점인 도시에 살면서, 생명을 살리며 사는 게 아니라 그 많은 생명들의 목숨에 기대어 빌어먹고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다. 이런 글 볼 때마다 아프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아직 이곳 도시에서 할 일이 남았다, 배울 게 남았다 생각하지만 떠날 준비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 번뿐인 삶인데 그래도 뜻깊게 살아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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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홍성 풀무학교에서 찍은 송아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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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학교에서는 소를 잡아먹으려 키우는 건 아니란다. 학생들 실습용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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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8 01:37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무더운 여름 한낮 시집을 읽을 때, 에어컨보다는 덜덜거리는 골드스타 선풍기 바람이 더 낫다. 조금만 움직거리면 땀이 쏟아져, 하릴없이 대자리 깔고 누워 백석의 시를 읽었다. ‘개이빨’을 ‘개니빠디’라 하는 평북사투리가 정감 있다.
그중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라는 시가 재미있다.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 방안에는 성주님, 토방에는 다운구신, 부엌으로 도망가면 조앙님, 고방에는 제석님, 굴통에는 굴대 장군, 대문 열고 도망가면 수문장, 밭마당귀에 연자당 구신. “나는 고만 기겁을 하여 곧 행길로 나서서 마음 놓고 화리서리 걸어가다 보니 아아 말마라 내 발 뒤축에는 오나가나 붙어다니는 달걀구신. 마을은 온데간데 구신이 돼서 나는 아무데도 갈 수가 없다.”
바로 지금 이 나라가 ‘맨천 구신’뿐이다.
먹기 싫은 미국 쇠고기 사 가라, 먹으라 성화대는 구신, 촛불 들면 물대포 쏘는 구신, 정부 정책 비판한다고 수사 으름장 놓는 구신, 50대 민간인 여성을 총으로 쏘는 구신,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구신. 이렇게 나오는 북이며 일본에 대해 아무 대책이 없는 구신. 나라가 온데간데 구신이 돼서 우리는 아무 데도 갈 수가 없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바로 내 발 뒤축에 오나가나 붙어다니는 달걀구신이 제일 무섭다. 이 모든 사달은 기실 바로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니 그렇다. 우리는 된장에 김치 말고 부드럽고 고소한 마블링 쇠고기를 싼값에 잔뜩 먹고 싶다. 그래서 미국 소 장사들은 풀 먹는 소에게 고기를 먹인다. 나 하나가 쇠고기 먹으면 네 사람분의 곡식이 없어져도 나는 고기가 먹고 싶으니 이게 바로 달걀구신이다. 지난 석 달 가까이 촛불을 들게 한 이 정부도 바로 우리가 선택했다. 부자 되게 해 달라는 일념으로, 공익을 실현하는 대통령 자리에 돈만 쫓아다니는 회사 사장을 뽑아 놓은 게 바로 촛불 든 우리다. 그러니 단박에 뿌리뽑겠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종교적으로 이야기하면 마땅히 우리 스스로 자신의 죗값을 다 치러야 한다는 말이요, 변증법적으로는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세계화를 가장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렉서스와 올리브>라는 책을 보면 물보다는 콜라를, 떡보다 햄버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의 속성상, 세계화나 신자유주의라는 귀신은 아프간 산골이나 아프리카 밀림에까지 반드시 출몰하게 되어 있다. 바로 내 발 뒤축에 오나가나 붙어다니는 달걀구신을 못 본 체하고 마을에 득시글대는 바깥구신들만 탓할 수는 없다. 효율, 돈, 편안함을 쫓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이길 현실적 대안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 신자유주의를 무너뜨리는 최대 복병은 바로 신자유주의 자신뿐이 아닌가 싶다.
벌써 그 조짐이 보인다. 금융 자본은 온갖 최신기법을 동원해 부가가치를 눈덩이처럼 불려가다가 마침내 전세계에 신용 위기를 가져왔다. 값싸고 맛있는 쇠고기 좋아해서 소를 소 대접 않고 소에게 소를 먹이다가 급기야는 끓여도 죽지 않고 0.001g만으로도 사람을 죽게 만드는 프리온이란 괴물을 만들었다. 변증법의 섭리라면 섭리일까.
신문을 펼치면 온통 무서운 귀신들 이야기뿐.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같은 시는 그만 접고 백석의 또다른 시나 한 수 읽어보자.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는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김형태 변호사



우리 집에는 백시나가 엮고 다산초당에서 낸 백석 시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있다. 책 앞에 적어 놓은 걸 보면, 2006년 12월 29일 헤이리에 놀러 갔다가 '북하우스'에서 산 책이다. 제일 먼저 나오는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반해서 샀는데 시집 뒷부분에 <마을은 맨천 귀신이 돼서>처럼 멋진 시가 숨어 있는지 몰랐다. 분명 다 읽었는데 말이다. 내가 아직 눈이 밝지 못하다는 소리겠지.

요즘 소고기 문제로 온 나라가 몇 달째 시끄럽다. 명백히 이명박 정부가 잘못했다. 그걸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때문에 촛불을 드는 것은 정당하며, 오히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명박 정부를 타도하는 것이 옳다. 그렇지만 이 문제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밑바탕을 드러내 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목숨을 목숨으로 대하지 않고,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은 것이 바로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풀을 먹고 살게끔 태어난 소한테 고기를, 그것도 같은 소를 갈아 먹일 수 있단 말인가? 소를 소로 여기지 않고, 소를 소로 '대접'하는 뻔뻔스러운 행위는 신의 창조 질서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불경이다. 소가 병들어 미친 것이 아니다. 정작 미친 것은 그걸 팔아먹겠다는 인간이다. 화 있을진저, 그 소를 팔아 자기 뱃속을 채우겠다는 자본주의여. 돈 때문에 소를 먹인 소고기를 팔아먹는 자, 장차 사람 고기로도 장사할 치들이다.

그 치들뿐만이 아니다. 다들 이번 기회에 채식주의를 고민해 봐야만 한다. 아무리 돼지들이라고 해도, 닭이라고 해도, 소라고 해도 인간에게 먹히라고 태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이 커다란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는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날개 달린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이것들에게 복을 베푸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여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여라”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닷샛날이 지났다.
(창세기 1장 21~23절, 새번역)

신이 닷샛날 동물을 만드시고는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다고 하시지 않았다. 정작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다고 한 자는 인간, 아담과 이브였다. 나중에 죽어서 그 많은 돼지들과 닭들, 소들을 어떻게 얼굴을 들고 마주 볼 수 있을지 두렵다. 이제 백석 말마따나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오두막)’에서 살 각오를 해야 한다. 가난한 나와 함께할 아름다운 나타샤 한 사람만 있으면 족하지 않을까?

김형태 칼럼은 바로 그 점을 짚고 있다. 그래서 좋은 글이라 생각한다. 내가 알기로 김형태 변호사는 천주교 신자다. 그리고 <공동선>이라는 격월간 잡지 발행인이기도 하다. 언젠가 한번 만나 보고 싶은 사람이다.

밑에 <마을은 맨천 귀신이 돼서>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전문을 옮긴다. 아마 김형태 변호사가 읽은 시집과 내가 읽은 시집이 다른 본인가 보다. 조금 다르다.


마을은 맨천 귀신이 돼서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귀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
자 방안에는 성주님
나는 성주님이 무서워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에는 디운귀신
나는 무서워 부엌으로 들어가면 부엌에는 부뚜막에 조앙님
나는 뛰쳐나와 얼른 고방으로 숨어 버리면 고방에는 또시렁에 데석님
나는 이번에는 굴통 모퉁이로 달아가는데 굴통에는 굴대장군
얼혼이 나서 뒤울 안으로 가면 뒤울 안에는 곱새녕 아래 털능귀신
나는 이제는 할 수 없이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대문간에는 근력 세인 수문장
나는 겨우 대문을 삐쳐나 바깥으로 나와서
밭 마당귀 연자간 앞을 지나가는데 연자간에는 또 연자당귀신
나는 고만 질겁을 하여 큰 행길로 나서서
마음 놓고 화리서리 걸어가다 보니
아아 말 마라 내 발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 다니는 달걀귀신
마을은 온데간데 귀신이 돼서 나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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