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다시 봄이다. 봄이라는 게 시간이 흐르면 오고 다시 시간이 흐르면 가는 계절일 뿐이라 뭐 그리 대단할까 싶기도 하지만 그 추운 겨울을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겨울이 끝났다는 소식만으로도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을 테니까. 더구나 겨울 도시가스비가 무서운 나 같은 차상위자들에게는 더 말해 무엇하랴. 새봄이 반갑기 그지없다.
슬슬 운동도 할 겸 설악산 오를 체력도 키울 겸 주말마다 산에 오를 계획을 세웠다. 멀리 갈 것까지는 없고 우선 서울에 있는 산들만 돌아다닐 작정이다. 대충 뽑아본 목록은 다음과 같다. 남산(262미터), 아차산(287미터), 안산(296미터), 인왕산(338미터), 북악산(342미터), 용마산(348미터), 남한산(480미터), 청계산(618미터), 관악산(632미터), 북한산(837미터). 요기 말고 수락산과 도봉산도 있지만 거기는 좀 멀어서, 우면산은 작년에 수해로 휩쓸려 간 지뢰가 있다고 해서 포기했다. 아차산과 용마산 또한 가까운 건 아니지만 한 번에 다녀올 생각이고 남한산은 거여동 사는 막내 동생네 다녀오는 길에 올라갈 계획이다.
3월 18일에 남산을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24일 안산, 25일 인왕산, 27일 북악산, 31일 다시 인왕산을 다녀왔다. 25일에는 종필 선배 꼬셔서 같이 다녀왔다. 확실히 혼자 오르는 것보다 같이 오르는 게 덜 힘들기는 하더라. 선배한테 얻어먹은 삼계탕이 맛있기도 했고. 4월 1일에는 용마산에 가려고 했는데 추워서 다시 집에 들어왔다. 8일에 교회 갔다가 다시 용마산에 도전할 생각이다. 내려오는 길에는 옛날 살던 군자동 골목을 헤맬 작정이고.
좋은 소식이 하나 있다. 인왕산 성곽길에 못 가게 막아놓은 구간이 하나 있다. 그 구간이 5월 27일에 풀린다고 한다. 인왕산 갈 때마다 그 길로 다니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는데 잘됐다.
3월 18일 안산을 오르는데 눈이 내렸다.
안산 정상 봉화대. 오른쪽으로 눈 덮인 북한산이 보인다.
안산 봉화대 한 장 더. 파란 하늘에 방울져 보이는 건 먼지가 아니라 빛 알갱이다.
인왕산에 같이 간 종필 선배.
서울 북문인 숙정문. 조선 시대에는 닫아놓는 문이었다고 한다. 열어놓으면 도성 안 여자들이 음란해지기 때문이라고.
인왕산에서 내려다 본 경복궁.
인왕산 기차바위 모습. 이쪽으로 내려가면 홍지문이 나온다.
작년에 설악산 가서 찍은 사진.
이런 사실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결론이 나온다. 첫째, 백수는 이미 나들목에 존재하는 모든 세력들에게서 실재하는 세력으로 인정받았다. 둘째, 따라서 백수는 단풍놀이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와 목적, 의도를 공공연하게 나들목에 밝히고 백수의 유령이라는 동화(童話)에 당 자신의 선언으로 맞서야 할 적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와 같은 목적으로 온갖 업종에 몸담았던 백수들이 신설동에 모여 강원도,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사투리로 발표할 다음 선언문을 작성했다.
하나. 이제까지 놀이의 모든 역사는 단풍놀이의 역사다.
같이 가실 분들은 연락 주세요. 사람들이 모이는 거 봐서 회비와 행선지, 날짜를 결정할 생각입니다. 별 호응이 없으면 둘이서 다녀올 생각이고요. 제 생각으로는 평일에 다녀오지 않을까 합니다. 댓글 달아 주십시오. 참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백수일 거 같습니다. 후원 받습니다. 자동차를 빌려 주실 분, 콘도를 빌려 주실 분, 지정헌금 해 주실 분…... 단 한 건도 거절하지 않을 테니 맘 놓고 후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백수들은 자신의 단풍놀이에 대한 견해와 의도를 감추는 일을 경멸한다. 백수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백수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이 자유롭고 당당하게 단풍놀이 가는 세상을 구현하는 것임을 공공연하게 선언한다. 부지런한 척하는 모든 월급쟁이와 부지런함을 강요하는 사용자로 하여금 단풍놀이 앞에 벌벌 떨게 하라. 백수가 잃을 것이라곤 족쇄뿐이요, 얻을 것은 단풍놀이와 풍류다. 나들목의 백수들이여 단결하라!
올해 어떻게든 설악산을 가려고 하는데 하는 일이 지리멸렬해 때를 못 잡고 있다. 그냥 옛날에 쓴 글이 생각나 옮겨 본다. 2005년 10월 25일 나들목교회 게시판에 쓴 글을 좀 다듬었다. 원래 글은 사라졌다. 교회에서 게시판을 옮기면서 옛날 글들이 다 사라지게 되어 아쉽다. 아무튼 단풍놀이는 2005년 11월 7일 월요일에 동훈이랑 둘이서 북한산 다녀오는 걸로 대신했다. 인증 사진 한 장 올린다.
구파발 역에서 만나 북한산성 매표소로 올랐다. 지금 보이는 문은 대남문이다. 동훈이도 사진 찍히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 뒷모습만 올린다.
좋은 소식 하나와 나쁜 소식 하나가 있다면 사람들은 보통 어떤 소식을 먼저 들으려 할까? 난 이쪽으로는 보수적인 사람이어서 나쁜 소식을 먼저 듣겠다 할 것이다, 아마. 그래서 소식을 전할 때도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을 먼저 전한다. 내게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이 하나씩 있다. 그럼 먼저 안 좋은 소식부터 전하겠다. 나, 회사 그만뒀다. 그럼 좋은 소식은? 나, 회사 때려치웠다. 뭐 그렇게 되었다. 난 최소한 내년 2월까지 어떻게든 일년은 버티려고 했는데 뭐 그렇게 되었다.
<행동경제학> 편집하면서 배운 개념 가운데 하나가 '피크 엔드 효과'(peak end effect)다. 어떤 일이나 과정을 평가할 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가장 강렬한(peak) 느낌과 마지막(end) 느낌이라는 이론이다. 다시 말해, 과정 전체를 종합해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느낌에 좌우된다는 소리다. 회사 그만둘 때 내가 느낀 바를 얘기하자면 이 이론이 맞는 듯하다. 지난 일곱 달(정확하게는 여섯 달 보름) 동안 사장이 아무리 좋게 보였다고 해도 마지막 보름 동안 보여 준 지저분함은 다 덮을 수 없을 것이다. 한 가지만 쓰겠다. 사장이 그랬다. 나 때문에라도 더 악랄한 경영자가 되어야겠다고. 무슨 말인가 하면, '무능한' 나를 진작에 짤랐어야 하는데 자기가 너무 마음이 여려 차마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여기서 내가 무능한지 어쩐지는 더 쓰지 않겠다. 나라고 왜 할 말이 없겠나). 참 기가 막혔다. 일곱 달 동안 어이없고 경우 없는 일을 많이 당했지만 마지막까지 이 모양이니, 박복한 내 팔자를 어디 가서 하소연한단 말인가. 내가 듣기로는, 여기에서 일한 편집자 가운데 여덟 달을 넘긴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보름 일한 사람도 있었다는 전례를 끄집어 내면 내가 버틴 일곱 달은 결코 짧다고 할 수 없을 게다. 더군다나 한 달만 더 있으면 기존 기록을 갈아치울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왜 이렇게 편집자가 자꾸 갈리는 것일까? 그동안 거쳐 간 편집자들이 모두 다 무능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정작 깨우쳐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정작 무능한 사람은 누구?
이런저런 줄다리기 끝에 한가위 연휴 끝나면 그만두기로 합의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백수가 되었다. 지난 일곱 달 동안 가시방석이었다. '오늘' 그만두게 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다녔다. 달품팔이 신세를 얘기할 때면 윗도리에 항상 넣고 다닌다는 사표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딱 내 마음이 그랬다. 말 같지도 않은 원고를 그럴 듯하게 새로 쓸 때도, 보도 자료를 만들 때도 그랬다. 이걸 내일 아침까지 쓰든지 아니면 사표를 쓰든지 둘 중 하나는 써야 한다고. 지난 여섯 달 동안 주말이나 일요일에도 일 생각에 편히 쉬지 못했다. 처음으로 맘 편하게 쉰 게 8월 15일 광복절 연휴였으니까.
요즘은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하고 있다. 봄부터 못 보고 쌓아 놓은 신문이 꽤 된다. 지난 주부터 그걸 몰아 읽고 있는데 거진 반 정도 본 거 같다. 이제는 전혀 새로운 소식(news)이 아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다. 어떤 기사가 정확히 예측했는지 어떤 기사가 헛다리 짚었는지 찾아보며 읽는 재미로 신문을 되짚어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 <20세기 소년>도 24권(<21세기 소년 상, 하>까지 해서)을 모두 빌려다 봤다. 마포도서관, 서강도서관에서 책 빌려 보는 건 여전하고. 최근 한 달 동안 읽은 책이 꽤 된다. <햄릿>, <나비가 없는 세상>, <얘들아 정말 작가가 되고 싶니?>, <웨스팅 게임>, <한밤의 숨바꼭질>, <희망의 결말>, <완득이>, <달콤한 나의 도시>.
무엇보다도 설악산 다녀올 준비를 하고 있다. 작년처럼 힘들게 대청봉을 오르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 아침에는 유숙이 누나랑 같이 안산에 가고, 저녁 때는 혼자 한강을 따라 달린다. 달리기 때문에 초시계가 하나 필요한데 자꾸 아이포드 나노에 눈이 가서 고민이다. 얼마 전에 2002년에 산 내 아이포드가 망가졌다. 음악도 듣고 싶고 초시계 기능도 필요하고.
그래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한다. 지난 일곱 달 동안 나름대로 배운 것도 많고 느낀 것도 많아 최소한 내가 퇴보한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앞으로 고민이 깊어지겠지만 지금껏 그래 왔던 대로 내 길을 꾸준히 갈 것이다. 아마도 말이다.
여섯 달 보름 동안 내가 다닌 회사 지형출판사. 참 허름한 문패다.
사무실 내 자리. 여름에 찍어 놓은 사진이다.
2008년 9월 15일 저녁 지형출판사 마지막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