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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해당되는 글 2건
2011.01.20 07:15

아이캘(iCal)을 다이어리 삼아 쓰면 좋은 게, 놓치지 말아야 할 날들을 관리하기 편하다는 점이다. 한 번 적고 '반복'을 '매년'으로 설정해 놓으면 때마다 알려 준다. 가까운 사람들의 생일이나 무슨 기념일(이런 날들을 말하자면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특정한 대가를 치루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따위 같은 개인적인 날들과 함께 의무감 비슷한 마음으로 적어 놓는 날들이 있다. 쭉 적어 보자면, 1월 18일 문익환 목사님 기일, 2월 13일 김남주 시인 기일과 14일 윤동주 시인 기일, 11월 13일 전태일 열사 기일 등이 그렇다. 


벌써 17년 전 일이다. 1994년 1월 22일 난 친구들과 함께 대학로에 있었다. 그곳에서는 18일 세상을 떠난 문익환 목사님 노제가 있었다. 지금도 난 그분을 떠올리면 서럽다. 


문 목사님은 맘만 먹으면 편하게 살 수 있었다. 김영삼 정부 이후에는 더욱 그랬다. 비록 겉모습만이었지만 민주주의가 형식 민주주의라는 모습으로 어느 정도 진척을 이루었으니 어느 한자리 꿰찼어도 핑계거리는 충분했을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김영삼은 문 목사님의 아버지인 문재린 목사님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이런 개인적인 친분과 윤동주의 몇 안 남은 친구라는 배경으로 그리고 군사정권 때 보여 준 빛나는 투쟁으로 맘만 먹었으면 어느 장관 자리 하나쯤은 충분히 차지하고도 남았으리라(물론 조선일보 같은 놈들이 얌전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겠지만). 


그전에도 충분히 그 정도 대접은 받을 수 있었다. 문 목사님은 뛰어난 신학자였다. 특히 이사야서 연구의 권위자로 이름을 떨쳤다. 개신교와 가톨릭이 함께 성서를 번역할 때 구약 번역 책임자였다는 것만으로도 설명은 충분할 것이다. 


그 노신사의 모습에서 나는 신앙인의 삶의 어떤 영감 같은 것을 읽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분이 누군 줄도 몰랐고 감히 말도 걸 생각도 못했다. ... 그분이 바로 문익환 목사님이었던 것이다. 당대 구약학의 대가! ... 내가 처음 뵈웠을 때의 문익환 선생은 정말 완벽하게 그런 분위기와는 무관한 정신세계에 사시고 계셨던 진정한 수도인의 한 사람이었다. 그 뒤 나는 그분에게서 구약개론을 들었다. 그리고 물론 그분의 강의는 매우 듣기 쉬었고, 또 히브리 원전을 완전히 소화한 데서 우러나오는 내용이 풍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깨끗한 영적 체험담으로 우리 수강자들을 감동시키곤 했던 것이다. 저 멀리 교단에 서 계신 모습은 항상 광채나는 해맑은 모습이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 글은 콧대 높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른다는 김용옥이 문 목사님에 대해 쓴 글이다. 그런 분이 보장된 미래를 마다하고 단식으로 감옥으로 고문으로 가시밭길을 자청한 것이다. 만약 그분이 그런 것으로 부를 이루었다든지 아니면 진짜로 한자리 꿰차고 들어앉았다면 내가 이렇게 서럽지 않을 것이다. 서럽기는커녕 그 이름을 내 머리에서 지웠을 것이다. 


서럽다. 개념 없는 인간들이 외려 잘 먹고 잘살고, 사람도 짐승도 아닌 괴물까지 대통령이랍시고 설치고 있으니 참으로 서럽다. 힘들게 이루어 놓은 것을 엉뚱한 놈들이 차지하고는 죽이나 쑤고 있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더더욱 서럽다. 신을 믿지 않았을 때도 난 신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양심을 지켜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인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저주일 뿐이니까. 요즘 들어 내 개인의 삶에서나 우리 사회에서나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사무치도록 궁금하지만, 그래도 난 그분이 우리 삶을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어 주시며,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공의의 나무, 주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 

이사야서 61장 1~3절 


문익환 목사님의 명복을 빈다. 


앞서 간 모든 이들에게 빚진 나. 


뉴스앤조이 문익환 목사님 17주기 기사: 평화와 통일의 꽃이 필 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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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6 17:19
보이콧의 아름다움

다 아는 얘기지만, 고대 그리스 폴리스의 민주주의는 자유 시민만이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였다. 이들 자유 시민은 일상적으로 대개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이었지만, 공동체 전체에 관계된 일을 위해서 자신의 생업을 잠시 접어두고 공공의 공간으로 나오곤 했다. 그것이 이 도시국가에서 정치의 의미였다. 그런데 이 정치적 활동은 철저히 자유 시민에게 국한되어 있었다. 그리스 사회에서 자유인과 노예를 가르는 결정적인 기준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었다. 노예는 단지 힘겨운 육체노동만 했던 게 아니라, 장사를 하여 돈을 벌 수도, 이솝처럼 문학 활동도 할 수 있었다. 노예에게 허락되지 않은 유일한 활동은 바로 ‘정치’였다.
정치는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인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공적 활동이었다. 오늘날 영어에서 바보 혹은 백치라는 뜻으로 쓰는 낱말 ‘이디어트’(idiot)는 ‘이디오테스’(idiotes)라는 그리스 말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 말은 원래 “공공의 문제에 관심이 없이 오직 사사로운 문제에만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그리스인들에게 정치란 근본적으로 개인의 사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공동체 전체의 보편적 이익을 생각할 줄 아는 인간적 능력을 전제로 한 활동이었다.
물론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노예제와 여성차별을 기초로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 한계는 뚜렷하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이 정치 참여를 ‘자유인’ 됨의 핵심적인 징표로 간주하고 있었다는 것은 음미할 만하다.
오늘날 우리는 근대적 국민국가의 틀 속에서 직접민주주의는 불가능하며, 가능한 것은 오직 대의제 민주주의뿐이라는 생각에 길들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원래 민중이 결정하는 자치를 뜻하는 것이라면, 민중 자신의 삶에 관한 결정권을 이른바 정치 엘리트들에게 위임하도록 고안된 제도가 결코 진정한 민주주의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지금 현실적으로 대의제 민주주의 이외의 틀을 상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필요한 것은 이 제도가 민중의 자치 욕구를 조금이라도 더 충실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비판하는 일일 것이다.
지난 5월 이후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는 촛불 집회는 바로 그동안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명백히 실패했음을 증언하면서, 동시에 이 나라 민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엄청나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드러내었다. 촛불 집회를 통해서 분명해진 것은 많은 사람들이 ‘경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와 인간다운 존엄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촛불 집회의 근원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이것은 더는 ‘노예’의 삶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유인’으로 살겠다는 결연한 자세에서 비롯한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민중의 자세가 지배세력에게 달가울 리 없다. 생각해 보면 민중의 살아 있는 정신과 민주적 에너지는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임이 분명한데도, 지금 권력은 민중의 에너지를 전방위로 억압하고 탄압하는 데 광분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이 이렇게 나오는 것은 당분간 선거가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선거가 아니라도 투표는 언제나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사회정의와 공공성을 우습게 여기는 자본과 국가 및 언론 권력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우리가 매일매일 상품과 서비스를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투표 행위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투표 행위의 일상적 실천이야말로, ‘자유인’으로서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손쉬운, 그러나 가장 효과가 확실한 비폭력적 저항운동이 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원문: 한겨레신문 7월 26일 삶의 창

2005년 1월(사실 연이애드를 그만둔 것은 2004년 11월 25일쯤이다. 연이애드 사장이 1월까지 월급을 주겠다고 해서 11월에 짐을 쌌다. 12월 월급은 들어왔는데 1월 월급이 안 들어왔다. 며칠 기다렸다가 전화했더니 월급이 선불 아니었냐는 것이다. 황당한 추억이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 일년 동안 책 열심히 읽었다. 그때 읽은 책 가운데 제일 기억에 남는 책이 김종철 선생이 쓴 <간디의 물레>와 이이화 선생이 쓴 <한국사 이야기>다.

<한국사 이야기>는 모두 22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관통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줬다. 한 권은 사고 한 권은 도서관에서 빌리는 방법으로 다 읽었다. 그래서 집에 14권이 있고 나머지도 틈틈히 사 모을 생각이다. <간디의 물레>는 김종철 선생이 <녹색평론>에 쓴 시론을 모은 책인데 비록 한 권짜리지만 <한국사 이야기> 22권 못지않은 무게감이 남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근본주의자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책이다. 가난한 삶, 자급자족하는 삶이 아니면 죄악이라는 주장에 어쩌면 재림한 예수를 보는 듯했다. 종교 이야기만 뺀다면 예수도 그렇게 외쳤을 것이다(몇 번 당하고 나니 책으로만 떠드는 지식 기사일지도 모른다는 경계심도 없지 않다. 내가 정말 속아만 살아왔나).

처음 현숙이 누나한테 빌려서 봤는데 몇 달 있다 새 책으로 돌려줬다. 좀 봤더니 책이 더욱 헌책다워져서 누나한테 그냥 주기 미안했다. 하여간 그 정도로 인상 깊은 책이다. 그 책을 쓴 김종철 선생을 난 믿고 싶다. 그리고 궁금하다. 김종철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고 <녹색평론> 김종철 사장은 어떤 사장일지 궁금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데 자리에도 변치않는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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