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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31 22:49

카페 오르는 계단에 붙어 있는 '조두진 작가와의 만남' 포스터.


조두진 선생님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남겼다. 조명이 붉고 어두워 이 사진 한 장밖에 건지지 못한 게 좀 아쉽다.


왼쪽부터 '도모유키', '마라토너의 꿈', '북성로의 밤'이다. 출간 순서에 맞춘 셈이다.


4월 19일 일이니까 지난 지 한참 됐다만 그래도 몇 자 적어 보련다. 

'조두진 작가와의 만남'에 다녀왔다. 아는 사람 부탁 반, 협박 반으로 엉겁결에 신청한 행사였지만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고 사실 난 이런 데 한 번 가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소설가란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일 때문에 작가는 많이 만난다. 심하게 말해서 요즘은 '강아지님이나 송아지님이나' 다 글을 쓰는 시대가 아닌가? 가끔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사무실로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궁금했다. '무엇이 저 친구에게 저자라는 자의식을 심어 줬을까?' 내가 문학 쪽 일은 해 보지 않아서 그런지 소설가, 시인은 거의 만나 보지 못했다. 그래서 예술을 한다는 소설가는 어떤 점이 다른지 늘 궁금했다.   

조촐했다. 조두진 선생님이랑 한겨레출판 직원이랑 초대받은 사람 해서 열 명 정도 모였다. 출판사에서 차와 머핀을 준비하고 '조두진 담당 편집자'가 자연스레 모임을 이끌었다. 나도 나름 준비한다고 <북성로의 밤>은 다 읽고 갔다. 몇 가지 질문도 했다. "무슨 억하심정으로 주인공 남녀에게 첫날밤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까?"라는 쓸데없는 말로 저자에게 깐죽거리기도 했다. <북성로의 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지만 몇몇 분은 <도모유키>와 <마라토너의 흡연>에 관해 질문했다. 아무래도 조두진 선생님의 출세작은 <도모유키> 아닌가? <도모유키>도 읽고 올 걸 그랬다는 마음이 들었다.   

모임은 조두진 선생님께 사인 받는 것을 끝으로 9시쯤 끝났다. 이날 행사를 위해 일부러 서울 오신 선생님을 생각하면 좀 아쉬웠다. 뭐, 어쩌겠는가? 이날 모인 독자들뿐만 아니라 선생님 또한 내일이면 어김없이 출근해야 하는 월급쟁이인 것을. 사실 나로서는 모임이 조촐하게 끝난 게 더 좋았다. 덕분에 사람 북적거리는 걸 싫어하고 숫기 없는 나도 몇 마디 꺼낼 수 있었다. 비록 흰소리였지만 말이다. 다만 행사가 열린 카페가 어두워서 사진 찍는 게 많이 불편했다. 게다가 조명 또한 붉은 편이라 화이트 밸런스까지 왕창 깨졌다. 행사 소문이 인터넷에 널리 널리 퍼지길 바란다면 주최자는 이런 부분도 놓치지 말고 챙겨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책 얘기를 좀 해야겠다. 사실 난 <북성로의 밤>이 그렇게 재밌지는 않았다. 서울 토박이인 나로서는 그냥 일제강점기 때 대구가 어땠구나 하는 정도밖에 건질 게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 나는 이 책이 과학 소설인 줄 알았다. 어이없게도 '북성'을 '북극성'으로 봤고 더군다나 '밤'이라기에 별, 우주 이야기를 담은 책이려니 지레짐작했다. 북성로는 대구에 있는 거리 이름이다. 지금은 동성로가 대구에서 가장 번화하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북성로가 그랬다고 한다. <북성로의 밤>은 이 북성로의 역사를 보여 준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구한말 조선에 일본 사람들이 한몫 챙기려 몰려온다. 경부선이 지나가는 대구는 이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일본 상인들은 대구읍성 성벽을 허물고 북성로를 닦는다. 그러고는 대구 상권을 장악한다. 어쩌겠는가? 나라가 망했는데 그까짓 상권쯤이야. <북성로의 밤>은 일본인 나카에 도미주로가 북성로에 세운 미나카이 백화점을 중심에 놓고 노치영과 노태영 형제의 갈등을 한 축으로, 백화점 인부 노정주와 나카에의 딸 아나코의 알콩달콩한 사랑을 한 축으로 한다. 어쩌다 보니 순사가 된 노치영과 역시 어쩌다 보니 독립운동을 하게 된 노태영. 어쩌다 보니 서로 좋아하게 된 노정주와 아나코. 다들 어쩌다 보니 기구하고 고통스러운 근대에서 만난 것이라고 해야 할까? 

일단 시작하면 다 찾아 읽는 내 버릇대로 조두진 선생님 소설을 몇 권 더 읽었다. 우선 제10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도모유키>. 상 받을 만하다. 근래 읽은 소설 중에서 단연 최고다. 꼭 문장을 펜이 아니라(사실 컴퓨터로 쓰지 않았을까 싶지만) 칼로 쓴 거 같았다. 칼을 휘두르는 듯한 필력이었다. 처절하고 냉혹했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살점이 떨어지고 선혈이 낭자하는 듯했다. 행간에서조차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쳐들어온 사람에게든 당하는 사람에게든 전쟁은 끔찍한 것일 뿐. 마무리는 좀 아쉬웠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어쩌겠는가? 이순신 장군이 버티고 있는데)을 마무리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내 생각으로는 좀 억지스럽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이 책은 추천한다. 

단편집 <마라토너의 흡연>은 그냥 그랬다. 평범한 직장인이 마라톤에 열심인 이유를 마라톤 뛰듯 기복 없이 풀어낸 <마라토너의 흡연>에서는 잔재미를, 한 여자가 '돼지'가 되는 과정을 섬뜩하게 보여준 <돼지>에서는 끔찍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단편집에 있는 소설 일곱 편 가운데 <도모유키>처럼 독자에게 한 방을 먹이는 이야기는 없었다. 이건 추천하기가 좀 그렇다. 

'조두진 작가와의 만남'에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2005년 <도모유키> 때부터 같은 편집자가 쭉 담당 편집자였다고 한다. 한 작가와 한 편집자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왔다는 사실이 참 부러웠다. 이제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 발표될 텐데 올해는 누가 어떤 작품으로 상을 탈까?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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