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133)
살아 있다는 느낌 (46)
익자삼우 (23)
요산요수 (12)
수불석권 (23)
구이지학 (11)
천의무봉 (16)
섬섬옥수 (2)
pawn shops near me that buy guns
pawn shops near me that buy guns
http://info.silvercentral.net
http://info.silvercentral.net
http://sightings.elvissighting..
http://sightings.elvissighting..
http://clients.trafficbackdoor..
http://clients.trafficbackdoor..
business.easyprofitsreview.com
business.easyprofitsreview.com
92,021 Visitors up to today!
Today 1 hit, Yesterday 1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Candle
'녹색평론'에 해당되는 글 2건
2008.08.02 18:53

송아지야 걱정 마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맙고 반갑다. 우리 곁에 태어난 걸 환영한다. 너희가 살아남기도 어
려운 험한 세상이다만 한우의 명예를 지켜다오!”

어젯밤 송아지가 태어났다. 우리 마을에서는 소・염소・양계 등 축산을 중고생들이 담당하는데, 소나 염소가 새끼를 낳을 때면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싱글벙글 좋아한다. 무릇 생명의 탄생이란 축복이다. 그래서 사람이든 짐승이든 갓난 것은 모두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이곳은 비탈진 밭이 많아 주로 쟁기로 일을 한다. 몇 해 전 쟁기질할 소 한 마리를 650만원에 구입했는데, 값이 계속 떨어지더니 작년 가을 270만원에 팔렸다. 크게 손해를 보았지만 그가 낳고 간 송아지가 어미가 되어 어젯밤 둘째를 순산한 것이다.

지난봄 우사를 새로 지었다. 친구 신부들에게 ‘한우 펀드’에 투자하시라 꼬드겨서 송아지 두 마리를 200만원씩에 사들였다. 지금은 값이 떨어져 130만원이면 살 수 있다. 친구들과 통화할 때는 ‘펀드’란 말 대신 ‘후원’으로 슬그머니 바꿔 말한다. 체면이 말이 아니다. 어쨌건 태어난 송아지까지 다섯 마리가 되었는데, 두 세 마리를 더 구입하려 한다. 펀드 추락을 막기 위한 시장 개입도 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새 축사는 퇴비 생산 목적으로 지었다. 60㎝ 깊이로 파서 방수를 하고 대량으로 채운 톱밥 왕겨가 소의 분뇨를 흡수하면 유용 미생물(EM)로 자체 발효시킨다. 내년봄이면 퇴비로 쓸 수 있다. 소똥은 축분 중에 가장 효과가 탁월하다. 문제는 사료의 원료인 미국산 옥수수・밀・콩의 90%가 유전자조작 농산물(GMO)인데다, 항생제・성장촉진제・제초제・살균제・방부제 문제로 안심할 수 없다. 사료 값도 3년 전 4600원 하던 것이 요즘 1만800원이다.

우리는 유기농을 하는데 밭농사를 사료가 될 수 있는 작물로 바꾸기로 했다. 추수하고 남은 옥수숫대・콩깍지・야콘・고구마・더덕줄기들을 분쇄하여 발효시키면 영양 좋은 사료가 된다. 분뇨의 질도 좋아 그것이 작물의 퇴비로 가고 작물은 다시 사료가 된다. 이를 ‘경종-축산 순환농법’이라 한다. 그것이 축산비전 제로인 시기에 소 두 세 마리를 더 사려는 이유다. 소값이 더 떨어져도 상관없다. 고기 생산에는 관심 없다.

미국은 곡물 제국이다. 가격 인상만으로도 국내 축산농 농가를 소멸시킬 수 있다. 단연 순환농법이 대안이다. 문제는 그것이 기업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축산 농가는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나 지자체가 농축산 교합 시스템에 관심을 두어야 할 때다. 어쨌건 농업과 축산을 겸하는 일은 소농만이 가능하다. 소농은 감당할 만큼만 하기 때문이다. 사실 신자유주의 시장 질서에서 모든 소규모 체제는 소농과 기업, 국가에 이르기까지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전락한다.

그런데 세계 지성들은 식량 생산과 생태환경 문제의 대안으로, 역설적이게도 ‘소농’에 주목하고 있다. 소농의 생산능력과 가치를 재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로 보아 대농은 부와 권력을 지켰고 소농은 품종을 지키고 전통과 마을 자치의 삶을 지켰다. 농축산 기업은 유전자 변형과 광우병을 가져 왔지만, 소농은 농토와 보호받지 못한 목숨들을 살려냈다. 이는 <녹색평론>에서도 쉽게 배울 수 있다. 이제 국가는 소농을 살리고, 소농은 땅과 식탁을 살리고, 도시인은 육류 소비를 줄여 건강한 섭생을 찾아야 한다.

우리 공동체 마을은 ‘소농’의 신조를 지켜가려 한다. 송아지한테 젖을 물린 채 되새김질하는 어미 소의 커다란 눈망울을 마주 본다. “소야, 걱정하지 마라. 잘 먹고 똥 많이 싸라. 너는 소가 아니고 농사꾼이다.”


박기호 신부


구글에서 '박기호 신부'를 찾아 보았다. 박노해 시인의 형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예수살이 공동체'라는 데도 나오고. 내친김에 '예수살이 공동체'를 찾아 봤다. 물론 이 단체도 천주교 단체인데 사무실이 합정동에 있다. 내가 봄에 합정동 돌아다니다 본 간판이 생각난다. 합정동에 이런저런 기독교, 천주교 단체들이 많이 있는데 예수살이 공동체 간판도 그때 봤던 간판 가운데 하나다. 

박기호 신부님은 단양에 있는 '산위의 마을'이라는 곳에 계시는 것 같고, 예수살이 공동체랑 산위의 마을은 서로 돕는 사이인 거 같다. 요즘 이래저래 천주교에 관심이 많이 생긴다. 전에 형일이가 한 말이 괜한 말만은 아닌 듯하다. 이런 호감, 무시 못할 것이 되어 버렸다. 남녀를 차별하는 천주교라고 날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는 지연이가 들으면 기겁을 하겠지만 말이다. 

서울 살면서 날마다가 죄 짓는 기분이다. 소비의 정점인 도시에 살면서, 생명을 살리며 사는 게 아니라 그 많은 생명들의 목숨에 기대어 빌어먹고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다. 이런 글 볼 때마다 아프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아직 이곳 도시에서 할 일이 남았다, 배울 게 남았다 생각하지만 떠날 준비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 번뿐인 삶인데 그래도 뜻깊게 살아야 하지 않겠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올 2월 홍성 풀무학교에서 찍은 송아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풀무학교에서는 소를 잡아먹으려 키우는 건 아니란다. 학생들 실습용이란다.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8.07.26 17:19
보이콧의 아름다움

다 아는 얘기지만, 고대 그리스 폴리스의 민주주의는 자유 시민만이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였다. 이들 자유 시민은 일상적으로 대개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이었지만, 공동체 전체에 관계된 일을 위해서 자신의 생업을 잠시 접어두고 공공의 공간으로 나오곤 했다. 그것이 이 도시국가에서 정치의 의미였다. 그런데 이 정치적 활동은 철저히 자유 시민에게 국한되어 있었다. 그리스 사회에서 자유인과 노예를 가르는 결정적인 기준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었다. 노예는 단지 힘겨운 육체노동만 했던 게 아니라, 장사를 하여 돈을 벌 수도, 이솝처럼 문학 활동도 할 수 있었다. 노예에게 허락되지 않은 유일한 활동은 바로 ‘정치’였다.
정치는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인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공적 활동이었다. 오늘날 영어에서 바보 혹은 백치라는 뜻으로 쓰는 낱말 ‘이디어트’(idiot)는 ‘이디오테스’(idiotes)라는 그리스 말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 말은 원래 “공공의 문제에 관심이 없이 오직 사사로운 문제에만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그리스인들에게 정치란 근본적으로 개인의 사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공동체 전체의 보편적 이익을 생각할 줄 아는 인간적 능력을 전제로 한 활동이었다.
물론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노예제와 여성차별을 기초로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 한계는 뚜렷하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이 정치 참여를 ‘자유인’ 됨의 핵심적인 징표로 간주하고 있었다는 것은 음미할 만하다.
오늘날 우리는 근대적 국민국가의 틀 속에서 직접민주주의는 불가능하며, 가능한 것은 오직 대의제 민주주의뿐이라는 생각에 길들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원래 민중이 결정하는 자치를 뜻하는 것이라면, 민중 자신의 삶에 관한 결정권을 이른바 정치 엘리트들에게 위임하도록 고안된 제도가 결코 진정한 민주주의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지금 현실적으로 대의제 민주주의 이외의 틀을 상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필요한 것은 이 제도가 민중의 자치 욕구를 조금이라도 더 충실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비판하는 일일 것이다.
지난 5월 이후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는 촛불 집회는 바로 그동안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명백히 실패했음을 증언하면서, 동시에 이 나라 민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엄청나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드러내었다. 촛불 집회를 통해서 분명해진 것은 많은 사람들이 ‘경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와 인간다운 존엄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촛불 집회의 근원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이것은 더는 ‘노예’의 삶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유인’으로 살겠다는 결연한 자세에서 비롯한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민중의 자세가 지배세력에게 달가울 리 없다. 생각해 보면 민중의 살아 있는 정신과 민주적 에너지는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임이 분명한데도, 지금 권력은 민중의 에너지를 전방위로 억압하고 탄압하는 데 광분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이 이렇게 나오는 것은 당분간 선거가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선거가 아니라도 투표는 언제나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사회정의와 공공성을 우습게 여기는 자본과 국가 및 언론 권력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우리가 매일매일 상품과 서비스를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투표 행위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투표 행위의 일상적 실천이야말로, ‘자유인’으로서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손쉬운, 그러나 가장 효과가 확실한 비폭력적 저항운동이 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원문: 한겨레신문 7월 26일 삶의 창

2005년 1월(사실 연이애드를 그만둔 것은 2004년 11월 25일쯤이다. 연이애드 사장이 1월까지 월급을 주겠다고 해서 11월에 짐을 쌌다. 12월 월급은 들어왔는데 1월 월급이 안 들어왔다. 며칠 기다렸다가 전화했더니 월급이 선불 아니었냐는 것이다. 황당한 추억이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 일년 동안 책 열심히 읽었다. 그때 읽은 책 가운데 제일 기억에 남는 책이 김종철 선생이 쓴 <간디의 물레>와 이이화 선생이 쓴 <한국사 이야기>다.

<한국사 이야기>는 모두 22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관통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줬다. 한 권은 사고 한 권은 도서관에서 빌리는 방법으로 다 읽었다. 그래서 집에 14권이 있고 나머지도 틈틈히 사 모을 생각이다. <간디의 물레>는 김종철 선생이 <녹색평론>에 쓴 시론을 모은 책인데 비록 한 권짜리지만 <한국사 이야기> 22권 못지않은 무게감이 남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근본주의자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책이다. 가난한 삶, 자급자족하는 삶이 아니면 죄악이라는 주장에 어쩌면 재림한 예수를 보는 듯했다. 종교 이야기만 뺀다면 예수도 그렇게 외쳤을 것이다(몇 번 당하고 나니 책으로만 떠드는 지식 기사일지도 모른다는 경계심도 없지 않다. 내가 정말 속아만 살아왔나).

처음 현숙이 누나한테 빌려서 봤는데 몇 달 있다 새 책으로 돌려줬다. 좀 봤더니 책이 더욱 헌책다워져서 누나한테 그냥 주기 미안했다. 하여간 그 정도로 인상 깊은 책이다. 그 책을 쓴 김종철 선생을 난 믿고 싶다. 그리고 궁금하다. 김종철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고 <녹색평론> 김종철 사장은 어떤 사장일지 궁금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데 자리에도 변치않는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