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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불석권'에 해당되는 글 23건
2008. 9. 25. 18:28

다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책 읽기를 위해 세운 원칙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두 번 읽는다. 처음 읽을 때는 나무보다 숲에 집중하고 두 번째 읽을 때는 숲보다는 나무에 집중한다. 둘째, 블로그에다든 어디든 독후감을 쓴다. 셋째, 책은 일단 도서관에서 빌려 본다. 넷째, 읽어 보고 정말 괜찮은 책이면 돈 주고 산다. 이 가운데 요즘 들어 중요해진 원칙이 셋째와 넷째 원칙이다. 정작 어느 원칙이 중요한 원칙이냐면, 그 책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드는 첫째와 둘째 원칙이 더 본질적이고 중요하다 할 수 있지만 그것도 관리가 되어야 가능한 얘기 아닌가. 무작정 사들이면 책만 자꾸 늘어서 책장에 꼽아 놓을 데도 없게 되고 나중에 이사할 때도 힘들기 마련이다. 당인동으로 이사 오면서 이제 더는 꼽아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다. 많이 나눠 주고 왔는데도 이 모양이다. 내 책장에 아직 한 500권 정도 꼽혀 있는데, 앞으로는 솎아 내 엄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한밤의 숨바꼭질><희망의 결말>도 일단 도서관에서 빌렸다. 이 책은 일본 사람 호시 신이치가 쓴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가운데 두 권이다. 내가 일본 책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작년에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사를 읽고 언젠가 읽어 봐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다. 그래서 마포도서관에서 3권과 29권을 빌려 왔다.

200쪽 분량에 소설 15편 가량을 실었으니 말 그대로 쇼트-쇼트(short-short) 소설이다. 짧디 짧은 소설이라 쉽게 금방 읽힌다. 그 짧은 분량에도 반전이 숨어 있다. 그래서 호시 신이치라는 이름이 현대 일본 대중문학사에서 빠지지 않는 게 아닌가 싶다. 재미있고 황당하다. 황당하지만 말이 된다. 가령 <한밤의 숨바꼭질> 제일 앞에 실린 <어느 귀향>과 <신록의 계절>만 읽어 봐도 무슨 말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귀향>은 이런 이야기다. 마흔 살이 되면 죽게 되는 집안 내력 때문에 방탕으로 가산을 허비한 남자가 마흔 살이 되어서야 듣게 되는 황당한 진실. 온 동네 사람들을 배신하고 살려 준 여자와 도망친 대가로 자신이 제물이 되고마는 남자 이야기를 들려 주는 <신록의 계절>.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밤에 읽으면 더 좋다. 아주 오싹오싹하다. 괴기스런 이야기, 특히 악마와 거래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다만 <한밤의 숨바꼭질>은 편집이 엉망이다. <희망의 결말>은 괜찮지만 <한밤의 숨바꼭질>은 띄어쓰기 틀린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같은 번역자에 같은 편집자가 맡아 책을 만들었고 오로지 출간 시기가 여섯 달 정도 차이 나는 것만 다른데 왜 이럴까?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는 33권까지 나왔다. 시간 날 때마다 한 권씩 빌려 읽을 생각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시리즈물은 다 찾아 읽는 재미로 읽는 거 아닌가? 다만 이 시리즈물을 찾아 도서관 서너 군데를 뒤져야 한다는 점이 안타깝다.

<웨스팅 게임>은 한가위 연휴에 읽으려고 빌렸다. 한가위 때나 설 때 보통 이런 식으로 계획을 세운다. 등산 한 번, 가벼운 책 한 권, 좀 무게 있는 책 한 권, 영화 한 편. 이번 연휴는 길지 않아서 등산은 계획을 잡지도 않았고 책은 한 권만 읽기로 했다. 영화는 그 전주에 본 <블레이드 러너>로 대신했다.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 여름 휴가 때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하는 기사가 생각나 그 책으로 결정했다. 오랜만에 읽는 추리소설이라는 점도 책을 정하는 데 한몫했다.

읽어 보니까 한가위에 딱 맞는 책이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대부호 웨스팅이 죽고 유언장에 적힌 유산 상속자로 16명이 모인다. 그런데 그 유언이라는 것이 요상하다. 자신은 살해되었으며 범인은 유산을 상속받을 16명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범인을 잡는 사람에게 유산을 모두 물려주겠다며 게임을 제안한다. 처음부터 유언을 무시한 두 사람을 빼고 14명이 게임을 시작하는데.......

나는 추리소설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로 충격과 논리와 사연을 꼽는다. 전혀 뜻밖인 사람이 범인으로 드러나는 충격, 그 사람이 범인일 수밖에 없는 논리, 그 사람에 얽힌 사연이 추리소설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웨스팅 게임>을 다 읽고 억지란 생각이 들었다. 웨스팅이 게임을 제안한 이유도 그렇고. 범인(?)을 잡는 사람도 그렇고. 살인자(?)도 그렇다. '미국 최고 권위의 뉴베리 상 수상작'이라는 금딱지가 책 표지에 커다랗게 붙어 있다. '옮긴이의 글'을 보면, 뉴베리 상이 미국 최고 아동문학상이며 이 책이 추리소설로는 처음 수상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주인공과 연결해서 봐도 될 듯하다. 그 상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지어낸' 것인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추리소설에 살인 사건이지만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은 점도 있겠지만 말이다. 읽어 보면 알 것이다. 내가 왜 이 책이 한가위에 적절한 책이라고 했는지 다 읽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돈? 명예? 나이 들면 다 소용없다오. 가족이 최고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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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 2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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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홍보 사이트에서 내려받았다.


지난 토요일 밤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줄여서 <놈놈놈>이라고 하자. 제작사도 영화 홍보용 홈페이지 주소를 간단하게 www.3nom.co.kr로 해 놓았다. 제목처럼 세 놈팡이가 뭔가를 정신 놓고 쫓는다는 이야기가 이 영화다.)를 보았다. 토요일 오후에 사무실에서 일 좀 보고 있는데 유숙이 누나가 전화했다. 특별한 일 없으면 저녁 때 영화 보러 가자고 해 <놈놈놈>을 보기로 했다. 

영화, 재미있었다. 김지운 감독. 제작비 200억 원. 송강호, 정우성, 이병헌 주연. 이 정도면 상업 영화로서 갖추어야 할 것들은 다 갖춘 게 아닐까? 김지운 감독 영화라면 시나리오가 터무니 없지는 않을 테고, 제작비 200억 원이면 금박 입힌 필름과 다이아몬드로 깎은 렌즈로 찍었을 테고, 송강호, 정우성, 이병헌이면 뭐가 부족할까. 아, 여자 배우가 없구나. 엄지원이 독립군 장교로 나오기는 하는데 정말 몇 장면 없다. 그렇게 곱디고운 독립군 여자 장교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차피 이 영화는 남자 영화, 어쩌면 마초 영화로 기획되었다고 해야겠지. '만주 웨스턴'을 계승해 '김치 웨스턴'으로 부활시킨 영화라고 하지 않는가? 이렇게 얘기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만주 웨스턴은 그나마 좋게 갖다 붙인 이름이고 난 양아치 영화, 아님 한때 유행한 조폭 영화 할아버지뻘 된다고 하는 게 정직할 듯하다.

영화 시간이 꽤 길었다. 2시간 20분 정도. 난 좋았다. 난 극장에서 짧은 영화를 보고 나오면 본전 생각 때문에 뭔가 허전하고 아쉽다. 그래서 영화는 '적당히' 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인데 그렇지만 늘어지면서 긴 영화는 반대로 욕 먹기 딱 좋다. <놈놈놈>은 지루하지 않았다. 앞부분에는 열차 습격 사건이, 중간에는 귀시장 전투 장면이, 마지막 부분에는 거침없는 속도감을 뽑내는 대평원 추격신이 나온다. 중간 중간 송강호가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와 '몸개그'에 뒹굴고, 피 튀기는 몇 장면에 깜짝깜짝 놀라다 보면 지루하다는 생각은 안 들 것이다. 

다만 마적단 두목으로 나오는 이병헌 캐릭터가 많이 낯설었다. 사람들 얘기를 들어 보고서야 일본 만화 쪽 캐릭터와 비슷한 걸 알았다. 겉멋만 잔뜩 들어서 현실감 없는, 그런 캐릭터가 나는 싫다. 허무맹랑하니까. 그리고 나는 끝에 또 다른 시점으로 영화를 보여 줄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이 부분은 영화 내용을 다 밝혀야 하기 때문에 더 쓰지는 않겠다. 끝부분에 작은 반전이 기다리고는 있다는 건 알고 계시라. 하여간 송강호가 보여 주는 천연덕스러운 연기는 국보급이다. 이병헌 캐릭터와는 정반대인, 우리가 늘 보는 아저씨, 형님 같은 모습이니까.

아무튼 심심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데이트하려는 남녀, 뭔가 보려고 극장에 나온 사람들, 간만에 문화생활 하려고 나온 일벌레들, 다 보시라. 다만 간혹 잔혹한 장면이 나온다는 것과 정우성에게 필이 꽂힌 아낙 때문에 남친분들께서 마음이 몹시 심란할 것이란 사실, 고건 알고 보시라. 정말 정우성은 멋있게 나오고, 송강호는 어리버리한 사람으로 나오다 나중에 반전, 이병헌은 흉폭한 사람으로 나온다. 이병헌의 짧은 기럭지도 안습이다.

솔직히 말해서 난 <놈놈놈>을 보는 내내 아주 많이 불편했다. 내 자리가 한가운데만 아니었어도 중간에 나갔을 것이다. 이 영화는 '15세 이상 관람가'다. 그런데 은비랑 원영이도 이 영화를 같이 봤다. 은비가 12살, 원영이가 10살인데 말이다. 유숙이 누나가 집에 아이들만 놓고 갈 수 없어 해서 데리고 보게 되었지만, 아무리 엄마가 같이 있다고 해도 이건 12살, 10살짜리 아이들이 볼 영화는 아니었다. 아이들이 보기에 잔혹한 장면도 많았고 매음굴 장면도 한 장면 나온단 말이다. 그 아이들과 같이 극장에 앉아 있다는 게 심히 불편했다. 영화 끝나고 나와서 정우성이 장총을 돌리는 모습을 흉내내는 원영이를 보고 있자니 심히 참담했다. 아이들이 어찌 클지 걱정이다. 

누군가 <놈놈놈> 보자고 하면 한 번 더 볼 생각이다. 그날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 솔직히 잘 생각나지도 않는다. 하여간 유쾌한 영화를 불쾌하게 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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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거진 마지막 장면. 누가 살아남을까? 영화 홍보 사이트에서 내려받았다.


Favicon of https://hunismom.tistory.com BlogIcon 허니즈맘 | 2008.08.22 03:01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장원아, 재미있다~.
근데, 실컷 재미나게 썰까지 풀고는 마무리는 왜 착찹이냐?^^삼촌 노릇이 맘이 저리고 쉽지 않지?
덕분에 나도 보고싶은 영화에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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