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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느낌'에 해당되는 글 46건
2011. 1. 20. 07:15

아이캘(iCal)을 다이어리 삼아 쓰면 좋은 게, 놓치지 말아야 할 날들을 관리하기 편하다는 점이다. 한 번 적고 '반복'을 '매년'으로 설정해 놓으면 때마다 알려 준다. 가까운 사람들의 생일이나 무슨 기념일(이런 날들을 말하자면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특정한 대가를 치루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따위 같은 개인적인 날들과 함께 의무감 비슷한 마음으로 적어 놓는 날들이 있다. 쭉 적어 보자면, 1월 18일 문익환 목사님 기일, 2월 13일 김남주 시인 기일과 14일 윤동주 시인 기일, 11월 13일 전태일 열사 기일 등이 그렇다. 


벌써 17년 전 일이다. 1994년 1월 22일 난 친구들과 함께 대학로에 있었다. 그곳에서는 18일 세상을 떠난 문익환 목사님 노제가 있었다. 지금도 난 그분을 떠올리면 서럽다. 


문 목사님은 맘만 먹으면 편하게 살 수 있었다. 김영삼 정부 이후에는 더욱 그랬다. 비록 겉모습만이었지만 민주주의가 형식 민주주의라는 모습으로 어느 정도 진척을 이루었으니 어느 한자리 꿰찼어도 핑계거리는 충분했을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김영삼은 문 목사님의 아버지인 문재린 목사님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이런 개인적인 친분과 윤동주의 몇 안 남은 친구라는 배경으로 그리고 군사정권 때 보여 준 빛나는 투쟁으로 맘만 먹었으면 어느 장관 자리 하나쯤은 충분히 차지하고도 남았으리라(물론 조선일보 같은 놈들이 얌전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겠지만). 


그전에도 충분히 그 정도 대접은 받을 수 있었다. 문 목사님은 뛰어난 신학자였다. 특히 이사야서 연구의 권위자로 이름을 떨쳤다. 개신교와 가톨릭이 함께 성서를 번역할 때 구약 번역 책임자였다는 것만으로도 설명은 충분할 것이다. 


그 노신사의 모습에서 나는 신앙인의 삶의 어떤 영감 같은 것을 읽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분이 누군 줄도 몰랐고 감히 말도 걸 생각도 못했다. ... 그분이 바로 문익환 목사님이었던 것이다. 당대 구약학의 대가! ... 내가 처음 뵈웠을 때의 문익환 선생은 정말 완벽하게 그런 분위기와는 무관한 정신세계에 사시고 계셨던 진정한 수도인의 한 사람이었다. 그 뒤 나는 그분에게서 구약개론을 들었다. 그리고 물론 그분의 강의는 매우 듣기 쉬었고, 또 히브리 원전을 완전히 소화한 데서 우러나오는 내용이 풍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깨끗한 영적 체험담으로 우리 수강자들을 감동시키곤 했던 것이다. 저 멀리 교단에 서 계신 모습은 항상 광채나는 해맑은 모습이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 글은 콧대 높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른다는 김용옥이 문 목사님에 대해 쓴 글이다. 그런 분이 보장된 미래를 마다하고 단식으로 감옥으로 고문으로 가시밭길을 자청한 것이다. 만약 그분이 그런 것으로 부를 이루었다든지 아니면 진짜로 한자리 꿰차고 들어앉았다면 내가 이렇게 서럽지 않을 것이다. 서럽기는커녕 그 이름을 내 머리에서 지웠을 것이다. 


서럽다. 개념 없는 인간들이 외려 잘 먹고 잘살고, 사람도 짐승도 아닌 괴물까지 대통령이랍시고 설치고 있으니 참으로 서럽다. 힘들게 이루어 놓은 것을 엉뚱한 놈들이 차지하고는 죽이나 쑤고 있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더더욱 서럽다. 신을 믿지 않았을 때도 난 신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양심을 지켜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인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저주일 뿐이니까. 요즘 들어 내 개인의 삶에서나 우리 사회에서나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사무치도록 궁금하지만, 그래도 난 그분이 우리 삶을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어 주시며,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공의의 나무, 주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 

이사야서 61장 1~3절 


문익환 목사님의 명복을 빈다. 


앞서 간 모든 이들에게 빚진 나. 


뉴스앤조이 문익환 목사님 17주기 기사: 평화와 통일의 꽃이 필 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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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 18. 09:21

2008년 1월 5일 포항 앞바다에서 찍은 해돋이. 50mm 렌즈로 찍었는데, 이럴 때는 정말 300mm가 필요해.


요 몇 해 동안 새해 계획이란 걸 세우지 않았다. 사실 나는 묵은해와 새해라는 선 긋기조차 달갑지 않다.그러니 내 머릿속에는 새해 계획이란 개념이 전혀 없을 수밖에. 이 박복한 사람은 그저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뿐이었다. 나는 하루하루가 참으로 버거웠다. 

한편으로는 늙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세시에 괜히 호기를 부렸다가 세밑에 낭패감만 남는 경험은 이제 할 만큼 한 셈이다. 가슴 아프게도, 하루하루 나이를 먹으며 깨달은 것은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나이를 먹는 것만큼 절망 또한 깊어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뭔가를 꿈꿀 수 있다. 외려 절망이라는 나락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존재가 인간이지 않은가? 내 박복한 신세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 삶을 즐겁게 해 줄 작은 계획 몇 개를 준비하련다. 세계 평화를 이룰 수는 없어도 내 마음만큼은 평화로울 수 있을 테니까.   

1. 공부 
편집자로서 우리말 공부는 꾸준히 해 왔다. 올해도 계속 공부하고 궁리할 생각이다. 대신 영어랑 한문, 수학을 공부 좀 하련다. 수학은 고등학교 때 보던 <수학의 정석>을 다시 보는 것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거의 20년이나 지났지만 아직 안 버렸다. 그 두꺼운 몇 권(고등학교 때 난 이과였다)을 여태 버리지 않은 나도 참 대단하다.   

2. 책 읽기 
책은 지금껏 해 온 대로 읽을 테지만, 권수를 좀 줄일 생각이다. 한 서른 권 정도? 대신 좋은 책 한 권을 두 번, 세 번 읽을 생각이다. 되풀이해 읽은 책은 서평도 쓸 생각이다. 특별히 시를 많이 읽을 생각이다. 집에 시집이 쉰 권 정도 있다. 한 주에 한 권씩 읽으면 올해 안에 다 읽을 수 있을 듯하다. 

3. 커피 줄이기, 시럽 안 먹기 
한 달에 커피값으로 10만 원 정도 쓴다. 내가 마시는 데 7만 원가량, 남들 사 주는 데 3만 원가량 나가는데 거의 매일 마시는 셈이다. 좀 줄일 생각이다. 우선 홀수날만 마시기로 했다. 아직은 잘 지키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나는 커피를 마실 때 시럽을 많이 넣어 아주 달게 마시는 편이다. 이제는 달게 마시지 않으려고 한다. 이 다짐도 아직 잘 지키고 있다. 

4. 음악 듣기 
집에 시디가 한 250장 정도 있다. 하루에 한 장씩 들으려고 한다. 거진 일 년이면 다 들을 듯한다. 어제 고른 시디는 핑크플로이드(Pink Floyd)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the Dark Side of the Moon)이다. 지금은 콜드플레이(Coldplay) <레프트라이트레프트라이트레프트>(LeftRightLeftRightLeft)를 듣고 있다.

5. 일기 쓰기 
뭘 하고 사는지는 아이캘(iCal)로 정리해 놓지만 아무래도 일기 쓰기만 못한 거 같다. 요즘 느끼는 건데, 적는 자보다 무서운 사람이 없다. 올해부터는 일기를 꾸준하게 쓰려고 한다. 솔직히 아직 한 번도 안 썼다. 시간 내서 꾸준히 써야겠다. 

뭐 이정도? 

솔직히 올해 바라는 소원이 하나 있다. 예의 없고 개념 없는 것들 만나지 않기. 살면서 이 바람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요 몇 달 내가 당한 징한 일들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간절한 소원도 없다. 

새해 복들 많이 받으시기를....  

신동훈 | 2011.01.18 13:0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나도 커피 사조
Favicon of https://heartone.tistory.com BlogIcon 심장원 | 2011.01.18 21:18 신고 | PERMALINK | EDIT/DEL
사장님이 커피 사달라고 하니까 신기해.
내가 가로수길로 가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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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29. 14:18

가운데 박힌 무지갯빛 애플 로고가 그리울 듯하다.


아는 동생에게 집에 있는 매킨토시 중 한 대를 넘겼다. 그 친구는 최근에 결혼도 하고 맥북도 샀는데, 아내에게 클래식 환경으로 쿼크익스프레스(QuarkXpress)를 돌릴 수 있다고 한 모양이다. 아내가 디자이너라서 최신 매킨토시에 탁상출판 프로그램(DTP)인 쿼크를 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수지맞은 일은 없을 테니까. 더군다나 요즘은 윈도도 돌아가지 않는가. 

그렇지만 애플은 맥오에스(Mac OS) 10.5 레오파드(Leopard)를 내놓으면서 공식적으로 클래식 환경 지원을 끊었다. 이 친구가 클래식 환경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어 내게 전화했는데 나라고 무슨... 대신에 집에 남는 매킨토시가 있으니까 필요하면 가져다 쓰라고 했다. 이 파워북 월스트리트는 1998년에 나온 놈이다. 시피유는 지(G)3를 쓴다. 10년이 넘었는데 잘 돌아갈지 모르겠다. 못 쓰겠으면 돌려달라고 했다.   

내가 이 오래된 파워북을 중고로 산 것도 쿼크 때문이었다. 2007년 봄에 4년 정도 쓴 파워맥을 팔고 맥북으로 넘어오면서 거의 쿼크를 쓸 일이 없었지만, 그 '거의'에 잡히지 않는 아주 드문 일 탓에 한 대 장만하게 되었다. 그해 여름 5만 원에 사 지금껏 한 스무 번 정도 쓴 거 같다. 무지 무겁고, 안에 들어 있는 충전지가 방전되어 전원을 꼽고 좀 많이 기다려야 부팅하는 놈이었다. 막상 보내려고 하니 아깝고 아쉽기는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이삿짐에서 꺼내기조차 안 했는데 또 쓸 일이 있을까 싶었다.  

이놈의 쿼크. 재미있는 건 애플이 클래식 환경에서 온전히 맥오에스 엑스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용자들 또한 거의 모두 클래식 환경에서 오에스 엑스로 넘어갔지만, '거의 모두'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매킨토시 이용자들이라는 점이다. 아직까지도 아주 많은 출판사, 디자인 사무실, 출력소에서 쿼크를, 그것도 1996년에 나온 3.3k를 쓰고 있는 형편이다.  

먼저 출력소에서는 완전하게 자리 잡은 쿼크 대신 다른 프로그램을 시험해 볼 이유가 없고, 디자이너도 익숙한 프로그램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쿼크의 굼뜬 대응도 문제였다. 애플은 오래전부터 오에스 엑스로 넘어갈 것이라고 예고했지만, 쿼크가 오에스 엑스용을 내놓은 건 한참 뒤인 2003년이었다. 그사이에 어도비는 인디자인을 무기로 시장을 공략해 역전에 성공했다. 

쿼크를 제대로 쓰려면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았다. 쿼크 자체도 비쌌고, 프스트스크립 프린터랑 서체가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피디에프(pdf)로 변환하는 게 쉽지 않았다. 반면에 인디자인은 시에스(CS, Creative Suite)로 사면 쿼크 하나 값에 인디자인, 포토숍, 일러스트레이터, 아크로뱃을 살 수 있고, 비싼 프린터가 필요없다. 피디에프 변환은 기본이었다. 

이제는 출력소에서도 인디자인 출력, 피디에프 출력을 지원하고, 인디자인을 쓰는 디자이너도 많이 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세는 인디자인으로 기운 듯하다. 조만간 쿼크익스프레스는 옛날 자료를 열어 볼 때나 쓰는 프로그램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시장을 한 회사가 독점하는 것보다 여러 회사가 경쟁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가끔은 빠릿빠릿한 쿼크가 그리울 때가 있다. 새해에는 쿼크가 더 분발하기를 바란다.   

이제 남은 클래식 II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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