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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dle
2009.05.06 01:07

이런 말 하기는 우습지만, 요즘 내가 참 대견스럽다. 전에는 절대 하지 않았을 짓, 전혀 꿈꾸지도 못했을 짓을 하기 때문이다. 또 혼자 산에 다녀왔다. 등산이라는 것을 할 때 나처럼 게으른 족속들이 보여 주는 행태란 뻔하다. 마치 백두산이라도 오를 듯 거창하게 계획을 세우지만 막상 산자락에 닿으면 으레 이렇게 말하기 일쑤다. "땀 흘리는 건 아랫것들이나 하는 짓이야." 내가 지금껏 고수해 온 이 뿌리 깊은 전통을 최근에 저버렸다. 내 동지들에게는 도리가 아닌 듯하지만 말이다. 

2009년 마지막 연휴(아직 5월인데도 마지막 연휴란다)를 맞아 무얼 할까 고민하다 혼자 훌쩍 북한산에 다녀왔다. 지난 번에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포기한 불광매표소에서 시작해, 향림담과 향로봉을 거쳐 비봉까지 오를 계획을 잡았다. 6호선 독바위역에 도착한 시각이 2시 45분께였다. 날씨가 더워 남방을 벗고 신발끈을 다시 묶었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는 했지만 얼마만큼 오를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나도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으니까. 오늘은 또 무슨 핑계로 나를 속일지 사뭇 궁금하기는 했다. 

2시 55분 불광매표소를 지났다. 사람이 많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뿔싸, 사람이 없어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 무슨 초장부터 낭팬가. 대충 아무 암벽이나 기어오르다 길을 찾기는 했지만 '등산로 아님'이란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참 오늘 산행도 험난하겠다 싶었다. 사람이 다닌 흔적이 있다고 해서 다 길은 아니었다. 

향림담에 도착한 시각은 얼추 3시 30분. 기대하지 않았지만 향림담은 아주 조그만 연못이었다. 밑에 찍어 놓은 사진이 있다. 보면 알 것이다. 향림담에서 향로봉을 오르는 길은 지루했다. 대략 한 시간 정도 걷고 또 걷기만 했다. 요즘 내가 사람답게 살고 있어서 그런지 힘들지는 않았다. 작년에 족두리봉 오르다 심장 터지는 줄 알았던 걸 생각해 보면 정말 사람답게 살고 있다 싶다. 

열심히 열심히 올라왔는데 아쉽게도 향로봉에는 오를 수 없었다. 떡하니 '출입제한구역'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비봉도 마찬가지였다. 봉우리가 바위 봉우리라 장비가 없으면, 두 사람 이상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고 쓰여 있었다. 말 잘 듣고(귀가 얇고) 규칙 어기지 않는(벌금이 두려운) 나로서는 그대로 따를 수밖에...... 그렇게 향로봉, 비봉을 지나 사모바위까지 보고 내려왔다. 사모바위에 도착한 시각은 5시께. 내려오는 길은 승가사 쪽으로 잡았다. 승가사에 5시 20분쯤, 승가공원지킴터에 5시 35분에 닿았다. 마지막으로 이북5도청 정류장에서 버스를 탄 시각이 5시 50분이었다. 세 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힘들지만 산에 다녀오면 뿌듯하다. 굉장히 어려운 과제를 해치운 느낌이랄까. 아주 상쾌하다. 사실 별거 아닌데도 기분이 좋다. 그래서 자주 가고 싶지만 내 주체하지 못하는 게으름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실 내려오면서 이번 주 토요일에 또 갈 마음을 먹기는 했다. 누구 같이 갈 사람이 있으면 더 좋겠는데..... 다만 나랑 성염색체 구성이 다른 사람이면 좋겠는데.... 그러니까 XY 말고 XX 말이다. 헌데 XX들은 등산 좋아하지 않는다지? 결론은 꿈 깨라?

재미있게도 주점 이름이 '요산요수'다. 여기서 한잔 걸치고 갈걸 그랬다.


요게 향림담이었다.


작년 12월에 오른 족두리봉. 이럴 때 망원렌즈가 아쉽다.


출입제한구역이 된 향로봉. 바로 앞에서 물러나야 해 많이 아쉬웠다.


멀리서 바라본 비봉. 진흥왕순수비가 보인다.


비봉. 암벽이라 보호장비가 없는 사람, 두 명 이상으로 조를 짜지 않은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게 제한하고 있었다.


사모바위. 장군바위라고도 한다. 어느 처자를 사모하던 총각이 바위가 된 사연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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