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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2 02:34
0시 22분.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12월 2일이란 얘기다. 아침 9시에 집을 나섰으니까 꼭 15시간 22분만에 돌아왔다는 소리고,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15시간 22분 동안 꼼짝 않고 일만 하다 들어왔다는 소리다. 그래도 한가지 위로와 기쁨이 있으니, 바로 수영이네서 얻어온 매실액이다. 들어오는 길에 자주 먹던 게토레이 자몽맛을 사 먹을까 했는데 집에 있는 매실액을 생각하니 한 시간 정도는 충분히 참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오늘처럼 힘든 날은 게토레이 하나 마시고 택시 잡아타고 들어와야 딱인데 말이다. 더군다나 오늘은 택시 타기가 조금 어중간 했다. 구로역까지 가는 전철이 11시 50분까지 있으니 무작정 신설동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여간 매실액 푼 물 500ml는 오늘 하루 충무로에서 신설동으로, 다시 홍대 찍고 신설동으로 떠돈 외근 인생, 그 발품과 고달픔을 모두 풀어 주었다. 정말 고맙다. 오늘 내가 마신 매실물을 아주 멋진 색감과 구도로 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필름이 없어 다음으로 미루겠다.

약속한 거라 쓰기는 쓰지만 내 글씨 정말 밉다. 그냥 덮고 싶게 만든다. 그래도 참아야지. 이번에는 꼭 약속 지키고 오래 오래 써야지 다짐한다. 그래서 생각한 건데. 먼저 손으로 괴발개발 대충 쓰고 블로그에 정리하면 어떨까 싶다. 난 손으로 쓰는 육필을 맹신하고 신봉하는 사람으로서 손으로 흰 종이에 자국을 남기는 아날로그적이며 전근대적인-이제는 전현대적이라고 해야겠다-짓거리를 소중하게 여기고 지키고 싶다. 그렇지만 못난 글씨가 확연하게 보여 주는 내 죄성, 인간의 죄성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이 짜증을 비켜갈 수도 없으니 참 거시기하다. 마찬가지로 쓰잘데 없이 이런 데서 종교로 도피하는 내 모습이 참 무참하다. 다시 말해서 매우 부끄럽다. 하여간 기술을 빌려 내 못난 글씨를 피해 가려고 한다. 이 방법이 오래 갈 수는 있을까?

오늘 하루 내가 어떻게 보냈나 대충 적어 보면 이렇다. 9시에 집을 나와 10시쯤 충무로에 닿았다. 바로 인쇄소로 갔는데 다행히 석달치 주보랑 '한해 살림 보고'는 다 찍혀 있었다. 사장님이 새벽 5시까지 일하셨다고 한다. 교회에서 야근수당을 더 드리는 것도 아닌데 고맙다. 단골이 이래서 좋은 거 아니겠나. 옆에 붙은 마름질집에 주보 7연(R)을  넘기자니 양이 꽤 많았다. 이제는 교회에 보낼 때도 오토바이가 아니라 다마스를 불러야 하게 되었다. '한해 살림 보고'는 중철할 곳을 찾다가 몇 군데를 거쳐 예전에 '자원봉사 안내' 책자 한 집에서 하게 됐다. 한 3년만인가. 아침까지도 모조지로 정한 게, 180g/m2로 정한 게 잘 고른 건지 못미더웠는데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사진 톤이 일정하지 않아 아쉽기는 하다(몇 가지 더 있지만 나중에). 교회에 들고 갔더니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유석진: 마지막으로 한 건 한 거야? 잘 나왔는데.
심장원: 마지막? 그럼 나 올해로 주보팀 관두는 거야? 신난다.
유석진: 아니지. 이게 올해 마지막이란 소리지. 내년에 또 해야지.
이대귀: 올해 마지막이라뇨? 11월 마지막이죠.

하여간 난 새해도 이 소굴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거 같다.

교회에서 목사님 햇반이랑 보쌈으로 늦은 아침 대충 때우고 목사님 알바 하고 있는데 현일이 형이 아뜰 행사 사진 찍어달라고 데리고 갔다. 김순녀 원장이랑 사진값 흥정을 했는데 끝까지 "고맙습니다"고는 하는데 돈 주겠다는 소리는 안 한다. 내가 20,000원 불렀는데도 말이다. 우리 사이에 돈이 오가는 것도 우습기는 해서 어차피 넘겨주려고는 했는데 김순녀 원장도 참 어지간 하다. 밥 약속이 담보라면 담보겠고.

오늘 사진 찍으면서 느끼고 배운 게 좀 있다. 우선 밝은 렌즈를 맹신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둘째, 행사나 취재 때는 빠른 에이에프(AF, Auto Focusing)가 정말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셋째, 사진도 꾸준히 찍어야지 벼락공부 하듯 할 건 아니다 싶었다. 밝은 렌즈는 어두운 곳에서도 빛을 더 많이 담을 수 있어서 좋지만 그에 맞추어 심도가 얕아지기 때문에 촛점만 살고 다른 대상이 다 사라지고 흐리게 된다. 그래서 한 사람만 찍을 때는 효과가 아주 좋지만 여러 사람을 찍을 때는 좋은 방법이 아님을 알았다. 역시 햇빛과 그 몫을 대신하는 스트로브가 아쉽다(아래에 사진이랑 설명이 있다). 홍대 앞 베니건스에서 만난 유숙이 누나네 모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저녁 때 실내여서 조리개를 활짝 열었지만 가족 사진 찍기에는 좋지 않았다. 어두워서 촛점 잡기도 쉽지 않았고 화이트발란스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 내일 교회에서 만나면 더 찍기로 했지만 아쉽기는 하다. 그나마 아뜰 사진 찍을 때는 흐리긴 했어도 바깥에서 찍어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내 청바지가 더러워져서 당혹스럽기는 하다. 특히 무릎이 많이 더러워졌다.

자야겠다. 해루가 운다. 젖 달라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촛점을 목사님 얼굴에 맞췄는데 그 때문에 민아가 흐리게 잡혔다. 조리개를 더 조였어야 하는데 방이 어두워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Favicon of https://www.greencarefarm.org BlogIcon 여름울 | 2007.12.04 17:29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마지막? 그럼 나 올해로 주보팀 관두는 거야? 신난다.' 글 읽다가, 형이 이야기하는 걸 직접 듣는 것처럼 이 문장이 귀에서 생생하게 + 확실한 구어체로 재생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ㅋㅋ 재밌어라.

+ 블로그 나머지 공부!! 트랙백이란 걸 보냈어요.
어떤건지 함 살펴보세요~ 뭐, 이미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ㅎㅎ
Favicon of https://cosmoslike.net BlogIcon cosmoslike | 2007.12.05 16:42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오호호~ 영광이예요. 링크까지 걸어주시고ㅋㅋ
매실 다먹으면, 담에 또 드릴께요. (친정엄마가 진짜 많이 해두셨다고 했으니^^)
그렇게 좋아하는줄 알았으면 진작 드릴걸~

오빠가 지난번 찍어준 우리 부부 사진 필름스캔받은거 있으면 좀 보내주세요.
넘 잼있게 나와서 블로그에 올리고 싶어요.

해루 넘 잘생겼더라. 우는 소리도 우렁차고. 손 자주 씻고 잘해줘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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