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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 해당되는 글 6건
2012.10.02 01:42


2006년 12월에 한겨레를 다시 구독하면서 기념으로 찍은 사진.


요즘은 신문을 몰아서 읽다 보니 칼럼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읽지 않은 신문이 두세 달 치 쌓여 있는데 이걸 언제 다 읽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오늘 눈에 띄는 칼럼이 있어 몇 구절 옮겨 놓는다. 


글쓰기는 결국 그 누구도 아닌 글쟁이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이 그렇듯이. 평화운동가 에이브러햄 머스트(1885~1967)의 일화. 그는 베트남전쟁 당시 백악관 앞에서 밤마다 촛불을 들었다. 어느 비 오는 날 저녁, 한 방송 기자가 물었다. "혼자서 이런다고 세상이 변하고 나라 정책이 바뀌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난 이 나라의 정책을 변화시키겠다고 여기 있는 게 아닙니다. 이 나라가 나를 변질시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글쓰기의 소임도 그렇지 않을까? 거창하게 남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국가와 비틀어진 현실이 “나를 변질시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가냘프지만 의미있는 행위. 

오길영 충남대 교수·영문학, <어느 에세이스트의 절필>


“종교적 통찰은 관념적인 사색이 아니라 영성수련과 헌신적인 삶의 방식으로부터 나온다. 그러한 실천 없이 종교적 교리의 진리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녀 출신 신학자 캐런 암스트롱의 말이다.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주일 미사와 자동차>


요즘 키보드 치는 재미가 쏠쏠하다. 타자기 소리를 내주는 프로그램을 깔았는데 정말 타자기 치는 기분이다. 매킨토시 쓰는 사람이라면,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깔아 보시라. 자세한 건 요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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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8 19:12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 I Remember Nothing: And Other Reflections,

노라 에프런 씀, 김용언 옮김, 반비, 2012년 6월 8일


‘뉴욕것’ 그러니까 ‘뉴요커’(New Yorker)는 어떻게 살까? 


<한겨레>에 실린 책 소개 기사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야 <섹스 앤드 더 시티>(Sex and the City)나 <프렌즈>(Friends)처럼 손발이 오그라드는 ‘미드’는 잘 보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네들 삶이 어떤지 궁금했다. 같은 한국 사람끼리도 알고 보면 얼마나 다른가? 더 다를 수밖에 없는 딴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그런 게 늘 궁금했다. 


더군다나 <뉴욕 타임스> 편집장 출신에, 로맨틱 코미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쓴 작가란다. 어쩌면 말로만 듣던 리무진 진보주의자(limousine liberals)의 일상을 엿볼 수 있을지 모른다. 괜한 관음증 비슷한 것일까? 아무튼 궁금한 걸 어쩌겠는가? 


대충 이런 게 서강도서관에 다른 책 반납하러 갔다가 신간 코너에 있는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를 냉큼 빌린 이유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은 여행 다니는 것도 싫어하고 나처럼 돈 없는 사람은 여행 다닐 여유도 없으니 결국 도서관에서 책이나 빌려 보는 것으로 대신할밖에......  


제일 앞에 있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는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억지로 글을 쓰는지 뭔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검색하러 갔다 오겠다고 하질 않나, 무슨 목록을 줄줄 써 놓지 않나...... 그런데 알고 보면 이 글은 기억에 관한 글이다(사실 이 책 전체가 기억과 늙음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수년 동안 뭔가를 잊어왔다. 요즘 나는 뭔가 새로운 방식으로 잊어버리고 있다. 이전에는 잊은 것이 무엇이건 그것을 곧 기억에서 끄집어내서 머릿속으로 가져올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이제 나는 그럴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안다. 잊어버린 것은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말들을 기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_12쪽.


그런데 이 양반, 좀 심하다. 


“그보다 한 달 전에 라스베이거스의 어느 백화점에서 나는 무척 호감 가게 생긴 여자가 웃으며 나에게 다가와 두 팔을 뻗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이 여자 도대체 누구지? 어디서 봤더라? 그녀가 뭔가를 말했고, 그제야 나는 그녀가 내 동생 에이미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에이, 동생이 라스베이거스에 있을지 어떻게 알았겠어. 미안하다. 사실 그날 내가 그 백화점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이 바로 내 동생이었다.” _13쪽.


그래도 글쓴이는 망각이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에 금방 적응한 듯하다. 바로 신기술이다. 


“나는 구글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여기에는 장점도 있다. 뭔가를 잊어버리면 아이폰을 채찍질해서 구글로 검색해보면 된다. 시니어 모먼트(나이 많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깜빡깜빡하는 건망증 증세-옮긴이)는 구글 모먼트가 되어가고 있다. 

(중략)

그냥 구글로 가서 찾아오면 끝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삶을 찾아올 수는 없다. (위키피디아에 나올 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당신은 삶의 뭔가 왜곡된 버전을 찾아오게 될 것이다.)” _21쪽.


역시나 노라 에프런은 위키에 자기 페이지가 있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면 클릭해 보시라. 노라 에프런 위키 페이지. 


내가 제일 재미있게 읽은 꼭지는 <저널리즘에 대한 러브 스토리>다. 자신이 어떻게 기자가 됐는지 들려주는 꼭지다. 1962년 노라는 웰즐리 대학교를 졸업하고 <뉴스위크>에 우편 담당 아가씨로 입사한다. 고등학생일 때부터 기자를 꿈꾸기는 했지만 <뉴스위크>에 면접 보러 간 건 순전히 직업소개소의 추천 때문이란다. 당시 <뉴스위크>에는 여성 필자(writer, 그 무렵에는 리포터가 기삿거리를 취재해 보내면, 필자가 사무실에서 리포터가 보내오는 자료를 취사선택해 기사를 썼다고 한다)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회사도 여성 필자를 키울 의지, 아니 생각조차 없었다. 우편 담당 아가씨 노라는 곧 ‘엘리엇 아가씨’가 된다. 엘리엇 아가씨가 됐다는 건 노라가 필자가 보낸 원고를 에디터에게 배달하는 일을 하게 됐다는 뜻이다(에디터 중 한 사람이 오즈번 엘리엇이라서 자신을 그렇게 부른 듯하다)


“일은 정말 자기 몰입적인 방식으로 흥미진진했다. 이것이야말로 저널리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 세계에서는 어떤 출판물을 만드는 사람이건 자신이 우주의 중심에 있고, 나머지 세계가 전부 초조하게 다음 호, 다음 출간물을 기다리고 있다고 정말로 믿게 된다.” _32쪽. 


몇 달 뒤 노라는 전국 신문을 날마다 스크랩하는 자료 정리 담당자가 됐고 다시 석 달 뒤에는 조사 담당자가 된다. 이렇게 우편 담당 아가씨에서 조사 담당자가 되는 데 여섯 달이 걸렸다. 그러다 <뉴욕 포스트>의 리포터 테스트를 제의받고 정규직 리포터가 된다. 그 과정 또한 재미있다. 노라는 빅터 나바스키라는 친구의 부탁으로 틈틈이 <뉴욕 포스트>를 패러디한 <뉴욕 페스트>에 패러디 기사를 쓴다. <뉴욕 포스트> 에디터들은 <뉴욕 페스트>를 고소해야 한다고 방방 뛰지만, 외려 <뉴욕 포스트> 발행인인 도로시 시프는 이렇게 말한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그 사람들이 <뉴욕 포스트>를 패러디할 수 있으면, <뉴욕 포스트> 기사도 쓸 수 있을 거야. 그 사람들 다 고용해!”_42쪽. 


 “나는 <뉴욕 포스트>를 사랑했다. 그곳도 물론 동물원이었다. 에디터는 완전히 호색한이었고 경영 담당 에디터는 사이코였다. 때로는 직원의 반 이상이 만취 상태인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내 일을 사랑했다. 그곳에서 보낸 첫 한 해 동안 나는 글 쓰는 법을 배웠다. (시작할 땐 글쓰기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에디터와 카피 에디터(에디터를 보조하는 역할. 글의 각종 오류를 체크하고 전체적인 수정 방향을 제안하는 역할을 한다.-옮긴이)들이 나를 훈련시켰다. 그들은 말 그대로 내 유모들이었다. 처음엔 짧은 글을 쓰게 하고, 그다음엔 좀 더 긴 글들을 쓰게 하고, 그러다 다섯 쪽짜리 연재물을 맡겼다. 나는 그 과제들을 해내면서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웠다. _46쪽. 


외삼촌이 남긴 '막대한' 유산 때문에 동생 하나와 사이가 어그러진 이야기를 담은 <나는 상속녀였다>와 “나는 비버리힐스에 있는 스페인식 집에서 성장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전설>도 재미있다. 좀 산만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로맨틱 코미디의 대가가 쓴 책답게 재미있다. 물론 재미있기만 한 건 아니다. 반전도 있다. 이를테면, 자기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 그렇다. 


“한번은 어머니가 이 사람을 포함해 다른 동료 여성들과의 점심 식사 자리에 나를 데려간 적이 있는데, 그들 중 아무도 일과 육아를 병행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병행했다. 게다가 어머니가 번번이 강조했다시피, 요리도 맛있게 했다. 내조도 거뜬히 해냈고 심지어 옷도 근사하게 차려 입었다. 

이는 모든 걸 다해내는 슈퍼우먼에 대한 생각이 유행하기도 전의 일이다. 우리 어머니는 정말 그 모든 것을 다 해치웠다. 그리고 미치광이 주정쟁이로 전락하면서 이야기를 망쳐버렸다. 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다.” _51쪽. 


노라는 대단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렇지만 그 대단한 어머니가 몰락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노라가 세 번 결혼한 것과 그 결혼 전에 두 번이나 이혼했다는 사실에 비춰 보면 한편으로는 유쾌한 인생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애잔한 인생이었을 듯하다. 인생이란 게 그런 것인가? 그래도 노라가 이 책을 쓸 수 있었던 건 그 자신이 삶을 낙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배고프다. 이 문장을 인용하는 걸로 마치련다. 


“그리고 나는 살아남았다. 나의 신념은 ‘털고 일어나자’다.” _172쪽. 


아, 방금(2012년 7월 19일 아침 9시 45분) 알게 된 소식. 노라 에프런이 2012년 6월 26일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올해로 일흔한 살....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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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6 00:43



돈이 고개를 저었다. 

“타타르의 죽음은 우리에게 실로 슬픈 일이지. 물론 친구로서 말일세. 하지만 말이야, 엠시. 우리 일은 매우 힘들어. 누구나 도망치고 싶어 하지. 처음엔 단순한 흥미로 시작하는 사람도 있을 걸세. 하지만 난생 처음 보는 육체의 변화와 생명의 집요한 저항, 피와 살, 살갗과 내장의 교향악은 상상 이상으로 기술자를 피폐하게 만드네. 실제로는 교향곡이라기보다 '고객'의 독창이지만 말이야.” 

290쪽. <괴물 같은 얼굴을 한 여자와 녹은 시계 같은 머리의 남자>


이 책은 2008년 7월 7일 <한겨레>에 실린 기사 ‘무더위도 모르는 색다른 독서 체험’을 보고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올렸다. 그 기사에 실린 책은 모두 세 권이었는데, <왓치맨>,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웨스팅 게임>이었다. 그래픽 노블 <왓치맨>은 2010년 여름에, <웨스팅 게임>
(<웨스팅 게임> 이야기는 요기에)은 2008년 가을에 읽었으니까 추천된 세 권을 다 본 셈이다(<왓치맨>은 영화로도 나와 있다). 기사를 쓴 구본준 기자는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을 ‘기괴함’과 ‘끔찍함’이란 낱말로 소개했으니 더 궁금할 수밖에. 


사실 재미있고 기괴하기는 했지만 끔찍하지는 않은 듯했다. “뭐 이 정도 쯤이야.” 그런데 마지막 단편인 <괴물 같은……>은 차마 읽지도 못할 만큼 끔찍했다. ‘고객’을 고통스럽게 죽이는 이야기는 읽는 사람까지 고통스럽게 해 정말 ‘피와 살, 살갗과 내장의 교향악’을 듣는 듯했다. 돈이 말한 대로다. 읽는 사람도 도망치고 싶을 지경인데 일을 하는 사람은 오죽할까. 파트너 타타르는 피폐함에 지쳐서 스스로 염산을 마신 것인지도 모른다. 


<끔찍한 열대>는 돈벌이를 위해 밀림으로 떠난 아버지와 아들이 주인공이다. 둘은 밀림에 고립되자 시체를 태워 구조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두 사람 앞에 나타나는 것은 얼룩무늬 군단, 호랑이 떼였다. 삶이 그런 게 아닐까?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라도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 잘 풀리는 듯하다가도 뭔가에 뒤통수 맞는 것 말이다. 


좀 끔찍하지만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히라야마 유메아키 씀, 권일영 옮김, 이미지박스 펴냄, 350쪽 2008년 6월 1일 1판 1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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