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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해당되는 글 2건
2012.10.20 21:22

2007년 1월에 원주에 출장 간 적이 있는데 그때 하루 묵은 모텔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람들이랑 늦게까지 얘기하느라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그래서 기념으로 한 장 남겼다.


지난 주 금요일 밤에 김형국 목사님네서 나오다 현관에서 딱 걸렸다는 얘기는 <긴 하루 지나고>에서 잠깐 언급했다. 그날 현관 앞에서 김 목사님이랑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이번 주부터 성에 관해 설교하니까 꼭 와서 들어라."

"총각한테 뭐 그런 게 필요하겠어요?"

"아냐, 총각이니까 꼭 들어야 하는 거야."


10월 14일부터 11월 11일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되는 설교 시리즈 '성(性)?(聖)!, 성(城)!!'를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聖)스러운 목사님께서 성(性)스러운 이야기를 하시겠다는데 성(?)도인 내가 어찌 내뺄 수 있으랴. 

아마 김 목사님이 나들목교회에서 성을 주제로 설교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사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프로이트가 모든 문제를 성적인 문제에서 비롯했다고 한 건 상당히 과장한 듯하지만 어쩌면 모든 문제가 결국 성 문제로 수렴하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정치 문제, 계급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여성 문제, 성차별 문제, 성 소수자 문제 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성 문제가 인간의 생존에 관련한 오래된 문제라는 점과 민주주의를 우리 일상에서 실현하는 문제와 연관이 깊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주제임에도 우리 사회와 교회에서는 성 문제를 드러내 놓고 얘기하는 걸 상당히 꺼린다. 우리 사회만큼 성이 문란한 사회도 없다고 하는데 이런 얘기를 제대로 다뤄 보자고 하면 다들 얼굴만 뻘게질 뿐이다. 총각뿐만 아니라 누구나 반드시 검토해야 할 주제인 셈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건 인간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였다.


목사님 설교 중에서 제일 와 닿은 부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사실이 그렇다. 우리가 아는 인간이라는 건 개념일 뿐이다. 우리가 실제로 상대해야 하는 건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체다. 나도 비슷하게 생각해 왔다. 아니, 최근에 생각이 변했다. 내 장점이라면 장점, 단점이라면 단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눠서 차별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나는 "남자가 말이야", "여자가 말이야" 이런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이 말이야"라고 하는 편이다. 그 사람을 사람 자체로 만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기도 하고,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구체성보다 인간이라는 보편성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로 나눠서 생각하는 것이 성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기도 했다. 꽤 효과가 있기는 했나 보다. 어떤 여자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랑 얘기하면 '얘가 날 여자로 생각하지 않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 사람은 나한테 "무장 해제"라는 말까지 했다. 나는 이 말을 좋게 해석했다. 재밌게 수다를 떨 수 있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인데 뒤집어 생각하면 그래서 내가 여자 친구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싶다.  

그러다 생각이 좀 바뀌었다. 남자를 남자로, 여자를 여자로 보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뻔히 있는 여자를 탈색해서 사람으로 본다는 게 외려 요상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남성과 여성으로 분화해 진화했건 신이 그렇게 창조했건 남성과 여성이라는 특별함이 실재하는데 그것을 일부러 걷어내 버린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여자를 여자로 보지 않는 것 또한 문제가 아닌가 말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 사람을 여자로 여기지 않는다는 걸 이 여자가 받아들였다는 건 그 여자 또한 나를 남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두 사람은 사람으로서는 만날 수 있을지언정 각자의 독특한 성 정체성은 잃고 만 셈이다. 

꽤 오랫동안 나는 왜 신이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셨을까, 아니면 왜 사람이 여성과 남성으로 나뉘어 진화했을까 궁금했다(나는 창조론도 진화론도 믿지 않는다)이 질문은 '단성생식보다 양성생식이 진화에 유리하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본 뒤로는 사라졌다. 물론 세상이 남성이나 여성 하나로 돼 있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싶기는 하다. 매우 다른 두 존재가 공존하는 게 더 보기 좋다. 신이 인간을 그렇게 창조했든 생명이 알아서 그렇게 진화했든 양성생식이 세상을 더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든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날 설교에서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도 남성과 여성이 서로 끌리는 이유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독특함을 살리는 게 인간으로서, 아니 남성으로서 또는 여성으로서 추구해야 할 바가 아닌가 싶다. 창조든 진화든 독특함과 차이, 다양성 같은 것을 바라고 기대할 테니까. 오래된 책에서 한 구절 꺼내 봤다. 


"동일은 같은 것을 차이에서 밝힌 것이고, 차이는 다른 것을 동일에서 밝힌 것"이라는 원효 대사의 <금강삼매경론>을 원용해서 위의 주장을 풀이한다면, 남녀의 평등은 같은 인간이라는 문제'차이'서 밝힌 것이고, 남녀의 차이는 다른 것을 '같은' 인간이라는 문제에서 밝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송두율, <21세기와의 대화> 169쪽. 


'섬섬옥수' 꼭지에 글을 쓴 게 3년 6개월 만이다. 여자 얘기나 므흣한 얘기는 참 할 얘기가 많은데 게으름이 무섭다. 목사님 설교도 훌륭했다는 아부로 이 글을 마친다. 설교를 다 듣고 싶은 분은 아래 동영상을 클릭하시라. 동영상은 연극 <생각 담는 카메라>를 먼저 보여준다. 


 

121014_나들목교회 '성에대해서이야기해도되나요?' 김형국 대표목사 from NADULMOK COMMUNITY CHURCH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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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0 07:15

아이캘(iCal)을 다이어리 삼아 쓰면 좋은 게, 놓치지 말아야 할 날들을 관리하기 편하다는 점이다. 한 번 적고 '반복'을 '매년'으로 설정해 놓으면 때마다 알려 준다. 가까운 사람들의 생일이나 무슨 기념일(이런 날들을 말하자면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특정한 대가를 치루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따위 같은 개인적인 날들과 함께 의무감 비슷한 마음으로 적어 놓는 날들이 있다. 쭉 적어 보자면, 1월 18일 문익환 목사님 기일, 2월 13일 김남주 시인 기일과 14일 윤동주 시인 기일, 11월 13일 전태일 열사 기일 등이 그렇다. 


벌써 17년 전 일이다. 1994년 1월 22일 난 친구들과 함께 대학로에 있었다. 그곳에서는 18일 세상을 떠난 문익환 목사님 노제가 있었다. 지금도 난 그분을 떠올리면 서럽다. 


문 목사님은 맘만 먹으면 편하게 살 수 있었다. 김영삼 정부 이후에는 더욱 그랬다. 비록 겉모습만이었지만 민주주의가 형식 민주주의라는 모습으로 어느 정도 진척을 이루었으니 어느 한자리 꿰찼어도 핑계거리는 충분했을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김영삼은 문 목사님의 아버지인 문재린 목사님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이런 개인적인 친분과 윤동주의 몇 안 남은 친구라는 배경으로 그리고 군사정권 때 보여 준 빛나는 투쟁으로 맘만 먹었으면 어느 장관 자리 하나쯤은 충분히 차지하고도 남았으리라(물론 조선일보 같은 놈들이 얌전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겠지만). 


그전에도 충분히 그 정도 대접은 받을 수 있었다. 문 목사님은 뛰어난 신학자였다. 특히 이사야서 연구의 권위자로 이름을 떨쳤다. 개신교와 가톨릭이 함께 성서를 번역할 때 구약 번역 책임자였다는 것만으로도 설명은 충분할 것이다. 


그 노신사의 모습에서 나는 신앙인의 삶의 어떤 영감 같은 것을 읽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분이 누군 줄도 몰랐고 감히 말도 걸 생각도 못했다. ... 그분이 바로 문익환 목사님이었던 것이다. 당대 구약학의 대가! ... 내가 처음 뵈웠을 때의 문익환 선생은 정말 완벽하게 그런 분위기와는 무관한 정신세계에 사시고 계셨던 진정한 수도인의 한 사람이었다. 그 뒤 나는 그분에게서 구약개론을 들었다. 그리고 물론 그분의 강의는 매우 듣기 쉬었고, 또 히브리 원전을 완전히 소화한 데서 우러나오는 내용이 풍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깨끗한 영적 체험담으로 우리 수강자들을 감동시키곤 했던 것이다. 저 멀리 교단에 서 계신 모습은 항상 광채나는 해맑은 모습이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 글은 콧대 높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른다는 김용옥이 문 목사님에 대해 쓴 글이다. 그런 분이 보장된 미래를 마다하고 단식으로 감옥으로 고문으로 가시밭길을 자청한 것이다. 만약 그분이 그런 것으로 부를 이루었다든지 아니면 진짜로 한자리 꿰차고 들어앉았다면 내가 이렇게 서럽지 않을 것이다. 서럽기는커녕 그 이름을 내 머리에서 지웠을 것이다. 


서럽다. 개념 없는 인간들이 외려 잘 먹고 잘살고, 사람도 짐승도 아닌 괴물까지 대통령이랍시고 설치고 있으니 참으로 서럽다. 힘들게 이루어 놓은 것을 엉뚱한 놈들이 차지하고는 죽이나 쑤고 있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더더욱 서럽다. 신을 믿지 않았을 때도 난 신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양심을 지켜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인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저주일 뿐이니까. 요즘 들어 내 개인의 삶에서나 우리 사회에서나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사무치도록 궁금하지만, 그래도 난 그분이 우리 삶을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어 주시며,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공의의 나무, 주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 

이사야서 61장 1~3절 


문익환 목사님의 명복을 빈다. 


앞서 간 모든 이들에게 빚진 나. 


뉴스앤조이 문익환 목사님 17주기 기사: 평화와 통일의 꽃이 필 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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