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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에 해당되는 글 6건
2012.04.06 09:36


운 없게도 본 홍보물로 연결되지 못한 2012년 중구 국회의원 예비 홍보물. 더 높게 도약하기 위한 짧은 쉼이면 좋겠다.


어찌 된 노릇인지 선거 때만 되면 해야 할 일이 하나 생긴다. 바로 선거 홍보물 만드는 일이다. 2000년에 민주노동당 당원이 됐지만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해야 매달 당비 내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2004년 여름에 서울시당 중구위원회 사람들과 영화 한 편 본 다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지역위원회에서 홍보물을 딱히 맡아 할 사람이 없다 보니 그 일이 내게 떨어진 것이다. 덕분에 2006년 지방선거 홍보물을 시작으로 2008년 총선 홍보물, 2010년 지방선거 홍보물 그리고 이번에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예비 홍보물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 조직이나 홍보 전략이 점점 좋아진 듯하다. 2006년에 처음 홍보물을 만들 때는 정말 맨땅에 헤딩 하는 기분이었다. 중앙당에서는 공약은 준비해 줬지만 디자인에 필요한 건 준비해 주지 않았다. 각 지역위원회별로 알아서 만들어야 했다. 그러니 당의 디자인 정체성을 걱정한다는 건 좀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0년 지방선거 때는 중앙당에서 기본 매뉴얼과 파일이 내려왔다. 중앙당에서 기본 틀을 잡아주고 지역위원회에 맞게 변형해 쓸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진보 정당의 대단한 진보였다. 비로소 중앙당이 제구실을 하는 거 같았다.             

구성도 많이 좋아졌다. 처음에는 넣어야 할 내용이 너무 많았다. 물론 이해는 한다. 유권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렇지만 글자만 빽빽한 홍보물은 답답해서 아무도 안 본다. 덕분에 글을 줄이고 여백을 살리려는 나랑 공약 하나라도 더 넣으려는 지역위원회 간부들이랑 많이 싸웠다. 선거를 치를 때마다 이런 충돌을 피할 수 없었는데 다행히 선거를 치를수록 글이 줄어들었다. 내 디자인 실력은 거기서 거기였지만 말이다.    

지난 2월에도 불려가 지역위원회 사람들과 예비 홍보물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좀 비장했다. 민주통합당과 벌이는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 결과에 따라 우리 통합진보당에서 중구 국회의원 후보를 내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무국장은 후보 단일화 전에 예비 홍보물이라도 돌려서 통합진보당을 알려야 한다는 결의가 대단했다. 그래서 원래 1면에 조그맣게 넣으려고 한 통합진보당 로고가 더 켜지게 됐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마침내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은 후보를 단일화했다. 4월 11일 수요일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이날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내 한 표로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는 날이다. 민간인이나 사찰하고 그 사실이 들통 나니까 은폐를 기도하다니. 참 나라꼴 한 번 제대로다. 이 놈의 정권은 도무지 염치라는 게 없다. 그리고 그 똘마니 새누리당 또한 심판해야 한다. 이름만 바꾸면 여당이 아닌가? 

1퍼센트 부자만 살판나고 99퍼센트 서민은 파탄 난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로 덜 걷힌 세금이 100조 원이다. 부자 증세를 추진할 수 있는 정당은 통합진보당밖에 없다. 그리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일자리가 필요하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들 정당은 통합진보당밖에 없다. 초등학생, 중고등학생들은 무상급식으로 배곯지 않고 대학생들은 등록금 걱정없이 공부할 수 있는 세상, 통합진보당이 원내교섭단체가 되면 가능하다. 변화는 내 한 표에 달려 있다. 

이제 복수할 시간이다. 달려라, 통합진보당!

후보는 야권 단일 후보에게! 비례대표는 4번 통합진보당에!



  

장현 | 2012.04.06 20:07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한번만 '김정은 개쉑키'라고 해줬으면 내가 모든 생을 걸고 통합진보당을 위해 살텐데.....
Favicon of http://heartone.tistory.com BlogIcon 심장원 | 2012.04.06 21:31 신고 | PERMALINK | EDIT/DEL
통합진보당 맘에 안 들면 진보신당 있잖아. 녹색당도 있고.
나도 통합진보당이 100퍼센트 맘에 드는 건 아니고.
인간관계 때문에 떠나지는 못하겠고.
아내랑 상의해서 꼭 필요한 데 투표해.
장현 | 2012.04.06 22:25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나마 녹색당 비례대표 찍을 생각임.
-김정은 개쇅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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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7 14:00

마크 트웨인이 그랬다고 한다. 

고전이란 사람들이 칭찬하면서도 결코 읽지 않는 책이다. 

어느날 문득 책장에 꼽혀 있는 <홍길동전>(보리출판사, 2007)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홍길동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홍길동전>을 읽게 된 건 이 때문이다. 고작 객기를 부린 것이었지만 그래도 좀 고상하게 부리고 싶었다.

<홍길동전>은 조선 시대 광해군 때 허균이 지은 소설로 우리나라 한글 소설의 효시다. 이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부분은 홍길동이 이름 있는 홍씨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서자라는 이유로 온갖 천대를 받으며 자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오니 어찌 사람이라 하오리까”(17쪽)라고 또박또박 대꾸하는 장면에서는 그 설움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결국 길동이 집을 떠나는 것으로 그 다음 부분이 시작된다. 길동은 정처 없이 헤매다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와 사는 곳’(37쪽)에 이르게 되고, 자신의 뛰어난 재주로 활빈당을 이끌며 조선 팔도를 들쑤셔 놓는다. 염불보다는 잿밥에만 마음이 쏠린 중과 패악스런 탐관오리들을 혼내 주고 그 재물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준다. 마지막 부분은 병조판서에 제수된 길동이 활빈당과 그 식솔 3,000여 명을 이끌고 조선을 떠나, 율도국이라는 새 세상을 건설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허균은 이달에게 시를 배웠다고 하는데, 바로 스승 이달이 서출이었다고 한다. 품은 뜻이 높고 그럴 능력 또한 충분히 갖추었음에도 서얼이라는 이유로 옥당(홍문관)에 참례하지 못’하고 ‘선전관이 될 수 없는 몸’(70쪽)이었다. 허균은 조정에 나아갈 기회조차 박탈당한 스승과 동기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적서 차별의 불합리성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자라는 족속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조선 사람들은 바로 몇 해 전 임진왜란을 겪으며 양반 사대부들이 얼마나 무능하고 엉뚱한지 직접 겪어 보았다. 오죽하면 임금이 도성을 버리고 의주까지 파천하고는 여차하면 명나라로 망명하려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홍길동전>에 담긴 온갖 탐관오리들과 그들에게 뇌물이나 챙기는 조정 대신들에게서 양반입네 하는 족속들의 무능하고도 사대적인 모습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어찌 보면 허균이 역모죄로 참형된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기존 체제를 거침없이 까 대는 사람을 권력이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허균과 <홍길동전>에도 한계는 있다. 첫째, 기존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조선이란 사회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다. 인간을 임금과 백성으로 나누고, 백성을 사대부와 양민과 천민으로, 혹은 사내와 계집으로 엄격하게 나누어 놓은 신분제도라는 거대한 차별에 견주면 적서는 차라리 사소한 문제였을 테지만, 신분제도 자체에 대한 고민과 이를 타파하려는 낌새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홍길동은 이상 사회인 율도국을 건설해 놓고도 스스로 신분제도의 정점인 왕으로 등극한다. 오히려 기존 체제를 이용해 한자리 꿰차기까지 한 것이다. 둘째로, 일부다처제에 대한 아무런 반성이 없다는 점이다. 보리판 <홍길동전>에는 그 내용이 없지만 원문을 보면 홍길동에게 아내가 두 사람 있었다. 백 씨 부인과 조 씨 부인이 그 둘이다. 아내가 둘 이상이라는 것은 적서 차별이 생길 수밖에 없는 조건이 아닌가? 한편으로는 이 두 가지 한계가 허균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닐 테다. 시대의 한계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렇지만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허균이 조금 더 깊이 있게 사고를 밀고 나가지 못한 점은 무척 아쉽다. 
  
“재상집에서 천한 몸으로 태어난 사람이 너뿐 아니거늘 어찌 이리 버릇없는 말을 함부로 하느냐?”(17쪽) 

이 말은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자, 홍 판서가 한 대답이다. 나는 이 구절이 <홍길동전>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그런데 이 말은 홍 판서만 한 게 아니다. 

“재상집에서 천한 신분을 타고난 사람이 어디 너뿐이더냐?”(33쪽) 

놀랍게도 이 말은 길동의 어머니 춘섬이 한 말이다.   

나는 요즘 이 말이 이렇게 들린다.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이 어디 너뿐이더냐?” 

조선 시대에 서자들이 서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기회조차 박탈된 채 그 차별에 울어야 했다면, 지금 우리는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그 차별에 피눈물 흘리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사람이 어디 너뿐이더냐?’라는 말 한마디에 인간답게 살 권리를 포기하고 잠잠해야 한단 말인가? 이 뿐만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돈이 없으면 배우지도 못하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가난이 가난을 대물림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도 ‘배우지 못한 사람이 어디 너뿐이더냐?’라는 말 한마디에 배울 권리를 포기하고 우리 아이에게 가난이 대물림되는 것을 뻔히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는 <홍길동전>에서 배워야 한다. 길동이 적서를 차별하는 집을 떠나 활빈당을 조직했듯이, 주자학에 빠져 뼈와 살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굳어 버린 조선 팔도를 휘젓고 나라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았듯이, 그리고 끝내는 새로운 세상을 이루어 적서 차별을 끊었듯이 우리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 어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단 말인가? 

헤겔은 <역사철학>이라는 책을 쓰며 그 서문에 이런 말을 남겼다. 

“경험과 역사가 가르치는 바는 이러하다. 국민과 정부는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거기서 얻은 원칙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험과 역사에서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단 말인가? 이제는 헤겔의 비야냥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웃자고 덧붙이는 글

01. 
길동이에게 서자로 태어나지 않을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원문을 보면 홍 판서가 용을 품에 안는 태몽을 꾸고 정부인 유 씨에게 가 은근히 수작을 거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부인 유 씨가 비루하다 홍 판서를 내친다. 홍 판서는 부인의 지식 없음을 한탄하고 여종 춘섬을 침실로 끌어들인다. 곧 길동이 서자로 태어난 것은 목석 같은 부인 유 씨 탓이 크다. 이 황당하고도 당황스런 이야기를 왜 넣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말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부인 유 씨가 임신을 했으면 홍길동 같은 아이는 낳지 못했을 거 같다. 적자 홍길동이 적서 차별이라는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아마 작품을 위해서 홍길동은 서자로 태어나야 할 운명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02. 
재미있는 건 홍길동 때문에 골머리 썩은 왕이 바로 세종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아는 세종은 성품이 어질고 지혜로운 임금으로, 할아버지 태조가 세운 조선의 기틀을 굳건히 다졌다. 단연코 조선 시대 임금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임금이었다. 그렇지만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세종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얼마나 아랫 사람들을 단속하지 못했으면 사모관대를 걸친 벼슬아치치고 탐관오리 아닌 자가 없으며, 그 가렴주구가 얼마나 혹독했으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데가 깊은 산골밖에 없었겠는가? 그리고 지혜롭지도 않다. 어리숙하게도 홍길동을 병조판서에 제수하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허균에게 무슨 원한이 있어 성군 세종을 이렇게 깎아내렸는지 궁금하다. 소설일 뿐이라고, 창작일 뿐이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 말이다. 

03. 
이런 '무협' 소설을 볼 때마다 아쉬운 게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개발할 게 아니라 차라리 축지법을 연구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석유 때문에 머리 싸매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화장이나 성형 기술보다 먼 옛날 도사들이 부렸다는 둔갑술을 계승해 발전시켰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요즘도 화장술이나 성형 기술을 일컬어 변장술, 둔갑술이라고는 하지만, 홍길동이 부린 둔갑술이야말로 진짜 '원조'며, '원천' 기술 아닌가? 축지법이든 둔갑술이든 며느리도 모르게 몇몇 제자에게만 몰래 몰래 전해 준 도사들의 밴댕이 같은 소갈머리가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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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4 18:30
지난 달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짧게 쓴 글이 있다. 바로 앞에 있는 글인데, 시간도 없고 남들과 나눌 만큼 깊은 생각도 없어 옛날에 어느 게시판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올렸다. 그런데 그 글을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노회찬이 쓴 글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글이다. '세계 여성의 날'의 유래를 밝히고, 그 정신을 좇아서 여성운동을 정치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함을 역설한 글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내에게 붉은 장미를 건넴으로써 자신의 다짐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으니 어쩌면 이리 아름답게 글을 맺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만 내가 쓴 글에는 그만한 깊이나 의지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기껏 일 년에 한 번 꽃으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로 때우려 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다. 결국 나도 한낱 수컷에 지나지 않을 뿐임을 스스로 고백한 꼴이다. 

여성운동의 지난한 역사를 돌이켜보면, 여성의 권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원래 남성들이 너그러워서? 물론 여성 인권을 위해 성심껏 도운 남성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성과 여성 가운데 남성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이상 여성운동에 뜻을 같이한 남성은 소수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엄마의 과거에, 우리 아내의 현재에, 우리 딸의 미래에 강력하고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고 끼치고 있으며 앞으로 끼칠 테지만, 기득권자로서 정치적, 경제적인 이익에서 자유로울 아버지, 남편, 아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굳이 '삼종지도'[각주:1]를 들먹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따라서 분명하다. 여성의 권리는 여성이 쟁취해야 한다.  

여성 스스로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투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운동이 모든 여성이 함께해야 하는 운동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또한 중요하다. 남성과 여성이 평등한 세상은 몇몇 여성이 사회적으로 성공한다고 이룰 수 있는 세상은 아니다. 요즘 '골드 미스'라 불리는 여성들이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잘나가는 여성이 꽤 있다는 소식이 나쁘지는 않다. 그렇지만 전체 여성이 처한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다. 2005년 자료를 보면 여성 임금은 남성 임금의 61%에 지나지 않으며, 여성 세 명 가운데 두 명은 비정규직이다. 지난 1년 동안 일자리를 잃은 103,000명 가운데 남성은 19,000여 명이지만 여성은 무려 84,000여 명이라고 한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현실은 몇몇 잘나가는 '골드 미스'로 덮어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쯤에서 고백해야겠다. 여성 문제와 관련해 뭔가 대단한 경험이 내게 있는 것은 아니며, 이 문제에 관심이 많아 열심히 공부한 것 또한 아니다. 내가 사회적으로 보잘것없는 '차상위자'기는 하지만,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느껴 본 적이 나는 없다. 그리고 나는 잠을 줄여 딴청을 필 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절대 아니다. 다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하나 있을 따름이다. 그것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것이다. 뭔가가 되기를 바라고 뭔가를 가지고 싶은 마음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누구나 똑같이 욕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하여 남성에게 허용된 것이 여성에게는 허용될 수 없단 말인가?  

그렇다고 여성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은 사회를 남성들이 두려워할 이유는 없을 듯하다. 이치와 도리에 맞게 돌아가는 사회, 상식에 어긋나지 않게 움직이는 사회야말로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충분히 누리며 행복할 수 있는 사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난 이 세상의 반쪽인 여성들을 응원할 것이다, 열렬히.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책에서 한 구절을 인용한다. 

남성 주체의 해체는 여성 주체의 해체를, 그리고 여성 주체의 해체는 남성 주체의 해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동일은 같은 것을 차이에서 밝힌 것이고, 차이는 다른 것을 동일에서 밝힌 것"이라는 원효 대사의 <금강삼매경론>을 원용해 위의 주장을 풀이한다면, 남녀의 평등은 같은 인간이라는 문제를 차이에서 밝힌 것이고, 남녀의 차이는 다른 것을 같은 인간이라는 문제에서 밝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와의 대화> 169쪽, 송두율 씀, 한겨레출판 펴냄.
  1. 三從之道: 여자가 마땅히 좇아야 할 세 가지 도리를 말한다. 어릴 때는 아버지 뜻을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며,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 뜻을 따라야 한다는 뜻. 여성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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