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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목교회'에 해당되는 글 7건
2013.01.04 10:05

언젠가 나들목교회에 청소하러 간 적이 있다. 청소 끝나고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내가 제일 늦었다. 다들 늦었다고 뭐라 그럴 때 한 친구가 이런 말로 마무리했다. “얘는 청소시키면 안 돼요.” 그 친구는 안다. 내가 한 번 하면 끝장을 본다는 것을. 

우리가 청소하기로 한 건물은 4층짜리 건물로, 내게 할당된 구역은 4층 남자 화장실이었다. 화장실 청소라기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원 없이 물청소를 할 수 있겠구나!’ 아무도 못 들어오게 문을 걸어 잠그고 세면대에 물을 받아 놓고 세제를 풀었다. 그러고는 거품 내서 구석구석 수세미로 문지르고 바가지로 물을 뿌려 닦아 냈다. 이럴 때는 호스가 아쉽다. 호스로 물을 뿌리면 정말 기분 좋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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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2013년을 맞아 2012년 12월 31일 오후에 새해맞이 대청소를 했다. 원래는 이날도 야근으로 마감하려 했는데 뭔 바람이 들었는지 갑자기 청소가 하고 싶어졌다. 의욕이 불끈 솟으니 자꾸 일을 만든다. 기왕 하는 거 가구 배치도 바꾸고 기왕 하는 거 창문에 뽁뽁이도 바르고...... 

4시간이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러나 2시에 점심 먹고 3시에 시작한 작업은 밤 1시에나 끝났다. 무려 10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청소를 위해 준비한 걸레가 모두 여덟 개였다. 집에 있는 걸레 여섯 개로 모자랄 거 같아 사무실에서 두 개를 더 가져갔는데 그걸 다 썼다. 거기에 혹시나 해서 모아 놓은 구멍 난 양말까지 있었으니 내가 생각해도 정말 열심히 닦고 또 닦은 셈이다. 

방을 새롭게 꾸며서 새해를 차분하고 우아하게 맞겠다는 내 야무진 계획은 계획이 야무진 만큼 야멸차고 야물딱지게 나를 배반했다. 차분하고 우아한 새해는커녕 여기저기 쑤시고 베이고 까지고 해서 힘들었다. 무엇보다 그 많은 책과 그 무거운 책장을 옮기느라 고생 꽤 했다. 10시간 작업한 대가는 이튿날 12시간 수면으로 치렀다. 한 30개월 그렇게 살았으니까 앞으로 30개월 정도는 이렇게 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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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에 뽁뽁이(알파문구 가서 “뽁뽁이 주세요” 하니까 “아, 에어캡이오?”라고 하더라. 전문용어로는 ‘에어캡’인가 보다) 바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양면테이프 벗겨내는 게 제일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창문 양쪽에 다 바르니까 효과가 있는 듯했다. 창문 틈으로 바람이 들어오는지 확인해서 뽁뽁이로 막았다. 추위도 추위지만 옆집 처자들 떠드는 소리도 덜 들리는 듯하고 가로등 빛도 덜 들어오는 듯하다. 기분 탓인가? 아무튼 10시간 고생한 대가니 뽁뽁이 효과라고 믿고 싶다.  


뽁뽁이 시공 전. 원래 이렇게 돼 있었다.


책장 들어내고 창틀도 들어내고.


가운데 큰 창에는 방에 굴러다니는 스노우화이트 사륙전지를 붙였다. 혹시나 더 따뜻할까 싶어서.


완성. 사진은 모두 아이폰 5로 찍었다.


뱀 다리 1. 대청소를 하니까 좋은 점 하나. 숨어 있는 돈을 찾았다. 600원. 다행히 바퀴벌레 시체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뱀 다리 2. 나보고 청소시키면 안 된다고 한 친구가 나한테 붙여 준 별명이 있다. “0데시벨의 사나이”라고. 뭐 그런 게 있다. 내가 10시간 동안 청소할 수 있는 것도 다 0데시벨 근성 때문이다. 2012년에 무려 열세 권이나 작업할 수 있었던 것도 그 근성 때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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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0 21:22

2007년 1월에 원주에 출장 간 적이 있는데 그때 하루 묵은 모텔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람들이랑 늦게까지 얘기하느라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그래서 기념으로 한 장 남겼다.


지난 주 금요일 밤에 김형국 목사님네서 나오다 현관에서 딱 걸렸다는 얘기는 <긴 하루 지나고>에서 잠깐 언급했다. 그날 현관 앞에서 김 목사님이랑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이번 주부터 성에 관해 설교하니까 꼭 와서 들어라."

"총각한테 뭐 그런 게 필요하겠어요?"

"아냐, 총각이니까 꼭 들어야 하는 거야."


10월 14일부터 11월 11일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되는 설교 시리즈 '성(性)?(聖)!, 성(城)!!'를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聖)스러운 목사님께서 성(性)스러운 이야기를 하시겠다는데 성(?)도인 내가 어찌 내뺄 수 있으랴. 

아마 김 목사님이 나들목교회에서 성을 주제로 설교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사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프로이트가 모든 문제를 성적인 문제에서 비롯했다고 한 건 상당히 과장한 듯하지만 어쩌면 모든 문제가 결국 성 문제로 수렴하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정치 문제, 계급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여성 문제, 성차별 문제, 성 소수자 문제 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성 문제가 인간의 생존에 관련한 오래된 문제라는 점과 민주주의를 우리 일상에서 실현하는 문제와 연관이 깊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주제임에도 우리 사회와 교회에서는 성 문제를 드러내 놓고 얘기하는 걸 상당히 꺼린다. 우리 사회만큼 성이 문란한 사회도 없다고 하는데 이런 얘기를 제대로 다뤄 보자고 하면 다들 얼굴만 뻘게질 뿐이다. 총각뿐만 아니라 누구나 반드시 검토해야 할 주제인 셈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건 인간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였다.


목사님 설교 중에서 제일 와 닿은 부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사실이 그렇다. 우리가 아는 인간이라는 건 개념일 뿐이다. 우리가 실제로 상대해야 하는 건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체다. 나도 비슷하게 생각해 왔다. 아니, 최근에 생각이 변했다. 내 장점이라면 장점, 단점이라면 단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눠서 차별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나는 "남자가 말이야", "여자가 말이야" 이런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이 말이야"라고 하는 편이다. 그 사람을 사람 자체로 만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기도 하고,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구체성보다 인간이라는 보편성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로 나눠서 생각하는 것이 성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기도 했다. 꽤 효과가 있기는 했나 보다. 어떤 여자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랑 얘기하면 '얘가 날 여자로 생각하지 않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 사람은 나한테 "무장 해제"라는 말까지 했다. 나는 이 말을 좋게 해석했다. 재밌게 수다를 떨 수 있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인데 뒤집어 생각하면 그래서 내가 여자 친구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싶다.  

그러다 생각이 좀 바뀌었다. 남자를 남자로, 여자를 여자로 보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뻔히 있는 여자를 탈색해서 사람으로 본다는 게 외려 요상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남성과 여성으로 분화해 진화했건 신이 그렇게 창조했건 남성과 여성이라는 특별함이 실재하는데 그것을 일부러 걷어내 버린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여자를 여자로 보지 않는 것 또한 문제가 아닌가 말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 사람을 여자로 여기지 않는다는 걸 이 여자가 받아들였다는 건 그 여자 또한 나를 남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두 사람은 사람으로서는 만날 수 있을지언정 각자의 독특한 성 정체성은 잃고 만 셈이다. 

꽤 오랫동안 나는 왜 신이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셨을까, 아니면 왜 사람이 여성과 남성으로 나뉘어 진화했을까 궁금했다(나는 창조론도 진화론도 믿지 않는다)이 질문은 '단성생식보다 양성생식이 진화에 유리하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본 뒤로는 사라졌다. 물론 세상이 남성이나 여성 하나로 돼 있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싶기는 하다. 매우 다른 두 존재가 공존하는 게 더 보기 좋다. 신이 인간을 그렇게 창조했든 생명이 알아서 그렇게 진화했든 양성생식이 세상을 더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든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날 설교에서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도 남성과 여성이 서로 끌리는 이유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독특함을 살리는 게 인간으로서, 아니 남성으로서 또는 여성으로서 추구해야 할 바가 아닌가 싶다. 창조든 진화든 독특함과 차이, 다양성 같은 것을 바라고 기대할 테니까. 오래된 책에서 한 구절 꺼내 봤다. 


"동일은 같은 것을 차이에서 밝힌 것이고, 차이는 다른 것을 동일에서 밝힌 것"이라는 원효 대사의 <금강삼매경론>을 원용해서 위의 주장을 풀이한다면, 남녀의 평등은 같은 인간이라는 문제'차이'서 밝힌 것이고, 남녀의 차이는 다른 것을 '같은' 인간이라는 문제에서 밝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송두율, <21세기와의 대화> 169쪽. 


'섬섬옥수' 꼭지에 글을 쓴 게 3년 6개월 만이다. 여자 얘기나 므흣한 얘기는 참 할 얘기가 많은데 게으름이 무섭다. 목사님 설교도 훌륭했다는 아부로 이 글을 마친다. 설교를 다 듣고 싶은 분은 아래 동영상을 클릭하시라. 동영상은 연극 <생각 담는 카메라>를 먼저 보여준다. 


 

121014_나들목교회 '성에대해서이야기해도되나요?' 김형국 대표목사 from NADULMOK COMMUNITY CHURCH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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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7 09:49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땅 위에 있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들이 너희의 먹을거리가 될 것이다.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에 사는 모든 것, 곧 생명을 지닌 모든 것에게도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준다."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창세기> 1장 29~30절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창세기> 2장 16~17절 

요즘 성경을 읽고 있다. 교회 다니는 사람으로서 경전인 성경을 한 번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건 내가 생각해도 좀 괘씸한 일인 듯 싶고, 고전으로서 인정받는 텍스트를 완독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쪽수가 많아서 2년 안에 완독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내가 보는 성경은 10년 전에 산 표준새번역 성경인데 신구약 합쳐서 1,588쪽에 달한다. 그것도 글꼴이 대략 7, 8포인트 정도에 2단 편집이라 양이 엄청나다. 내 신심으로는 2년 안에 끝내는 것도 기적일 터. 2년 안에는커녕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하나님은 지극히 관대하신 분이라 애쓰는 나를 기꺼워하시리라 믿는다(천연덕스럽게 이런 말을 써 놓다니.... 내가 생각해도 가소롭다). 이런 성경을 인기는 몇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목사로서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대단하다 싶다. 

가끔 사람들에게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천국에서는 고기를 먹을 수 없을 테니 살아 있을 때 많이 먹어 두라고. 이 생각은 히브리 민요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에서 따온 것이다.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 내리라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가 되면 
사막이 꽃동산 되리 
사자들이 어린 양과 뛰놀고 
어린이들 함께 뒹구는 
참 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1절  


그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이사야서> 11장 6~9절 

사자들이 어린 양과 뛰놀다, "어이 양, 내가 배고프거든" 하고 점심거리로 양을 잡아 먹을 거 같지는 않다. 이사야가 전하듯이 앞으로 올 하나님 나라에서 서로 잡아먹는 일이 없다면 그 옛날 에덴동산에서도 다른 생명의 피와 고기를 먹지 않았을 것이다. 창세기를 읽으면 내 말이 구라는 아닌 듯하다. 창세기 1장 29~30절과 2장 16~17절에 채소와 열매만이 먹을거리로 허락되어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짐승 또한 푸른 풀을 먹이로 삼았다. 육식, 그러니까 고기가 먹을거리로 처음 언급된 건 홍수 사건 이후다(창세기 9장 3절).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너희의 먹을거리가 될 것이다. 내가 전에 푸른 채소를 너희에게 먹을거리로 준 것같이, 내가 이것들도 다 너희에게 준다. 
<창세기> 9장 3절 

내가 전문가는 아니라 확실하게 말하기는 뭐하고 돼지고기랑 정크푸드를 빼면 내 식도락에서 남는 게 없지만, 오랫동안 채식주의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올바르다 생각했다(요즘은 생태적으로도 올바른 일이 되었다)하나님이 사람에게 고기 대신 채소와 열매를 먹을거리로 준 데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고기를 먹는 것이 이래저래 바람직한 선택은 아닌 듯하다. 

그렇지만 질문도 있다. 창세기를 읽어 보면 아벨이 양을 치는 목자였고, 야발은 집짐승을 치는 사람의 조상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왜 짐승을 쳤을까? 제사에나 쓰려고 길렀을까? 눈 앞에 먹음직스러운 고기덩어리가 있는데 정말 참고 먹지 않았을까? 좀 의심스럽다. 아무튼 고기를 끊지는 못하더라도 좀 줄여야 하는데 쉽지 않다. 특히 요즘은 물가가 하도 올라 푸성귀 사 먹는 것조차 나 같은 차상위자로서는 버거운 일이다. 
 

내가 다니는 나들목교회 예배 모습. 2009년 5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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