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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에 해당되는 글 2건
2012.07.03 19:53


로드 the Road 코맥 매카시 씀, 정영묵 옮김, 문학동네, 2008년 6월 

모두 불타 버렸다. 온통 잿빛이다. 그 거대한 회색빛에 세상은 제 빛깔을 잃었다. 몇몇 살아남은 이들은 빛깔과 함께 이름마저 잃었다. 주인공은 남자, 아이는 소년일 뿐이다. 이름을 잃으면 인간성 또한 사라지기 마련일까? 그나마 목숨을 부지한 이들 사이에 약탈이 횡행한다. 언제 어디서 습격당할지 모른다. 잡히면 체온이 날아가기도 전에 바로 바비큐가 될 운명이다. 세상은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투쟁, 아니 사냥하는 곳으로 돌변했다. 그저 모든 빛을 집어삼킨 잿빛 사이로 숨어 다닐 뿐이다. 

언제, 어떻게 불이 세상을 삼켜 버렸는지 알 수 없다. 기억은 희미할뿐더러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제 와서 아는 건 중요하지 않다. 남자는 목숨을 이어가는 게, 무엇보다도 이 잿빛 세상에서 아들을 지켜 주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이다. 두 사람은 남쪽 바다로 향한다. 가능할까? 정작 자신은 병들었지 않은가? 바다는 잿빛 육지와 다를까? 그곳은 따뜻할까? 바다는 두 사람에게 안식처가 돼 줄까? 희망은, 구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한텐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죠?”
“그래.”
“우리는 불을 운반하니까요.”
“그래, 우리는 불을 운반하니까.”


글을 이렇게 건조하게 쓰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물론 더 신기한 건 이 소설이 2006년에 출간된 뒤로 꽤 많이 팔렸을 뿐만 아니라 2007년에 퓰리처상까지 받았다는 사실일 듯). 잿빛 세상에 못지않은 잿빛 문체였다. 책 읽기 또한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래알처럼 망막을 긁어 대는 기분이었다. 하도 괴롭고 힘들어서 그냥 흘려 넘긴 부분도 상당하다. 읽는 데 3시간쯤 걸렸다. 328쪽, 한 쪽에 20행씩이니까 분량이 많은 책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사실 난 별 감흥이 없었다. 내 감성은 하도 메마르고 메말라 거의 황무지 같은데 잿빛 문체로 그런 마음을 녹인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다만 막막하고 답답했다. 나라면 자살용으로 남긴 총알 두 알을 진작 쓰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나 같지 않았다. 그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를 이끌고 길을 나섰고 어떻게든 먹을 것을 찾아냈다. 남자는 마지막 총알을 끝까지 유보한다. 아들이 있기 때문일까? 나야 늘 혼자라 무책임하고 무심할 수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그 잿빛 세상으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게 있었겠지만 내 눈은 그걸 감별해 내기에는 많이 부족한 듯하다.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만 잇따른다. 남자와 아이가 잃지 않으려 애쓴 그 불은 무엇을 뜻할까? 단지 작가는 인간이 희망을 잃으면 인간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삶이란 게 굳이 종말을 맞은 세상이 아니더라도 황량한 건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하루 마흔 명씩 자살하는 우리 사회야말로 벌써 잿빛 사회가 아닐까? 어떤 소설 제목처럼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인 세상이다.

처음에는 책도 읽고 2010년에 개봉한 영화도 찾아서 보려고 했지만 잿빛 영상에 내 마음이 아예 새까맣게 타 버릴까 봐 보지 않기로 했다. 인간에게 희망은 없는 것일까? 며칠 전에 김형국 목사님이랑 통화했다. 그나마 (인간이) 공동체와 예배를 포기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대답할 말이 없었다. 정녕 구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런 게 있기는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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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0 22:45
유현이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더라?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2007년 3월 17일 서울역 앞이다. 그날 이라크 침공을 규탄하는 반전집회가 있었다. 집회에 나는 시위대로, 유현이는 인권감시단으로 참여했다. 그렇게 길에서 잠깐 인사한 것이 마지막이었던 셈이다. 가끔씩 생각나고 연락해 보고도 싶었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유현이를 알게 된 건 작은책 출판사 다닐 때였는데 작은책을 갑자기 그만두게 되면서 한동안 연락하기 좀 뻘쭘했다. 작은책을 그만둔 건 안 사장이 작은책에서 사장입네 하는 꼴이 가증스러웠기 때문이다. 

'노동해방'을 부르짖는 출판사에서 사용자 행세를 하자니 정신 없잖아요? 직원들 수당 없이 야근시켜야지, 직원들이 뭐라 하면 권위주의로 찍어 눌러야지, 말도 안 되는 꼬투리 잡아 직원 짤라야지...... 도움상회에서는 이런 분들을 위해 특별한 상품을 내 놓았습니다. ......

글쎄, 이런 사람을 위해서는 무슨 상품을 개발해야 할까? 내 머리로는 답이 안 나온다. 

아무튼 일을 핑계로 유현이를 만났다. 유현이는 올해 스무 살이지만 아무런 공식 학력이 없다. 딱 하나 있는 게 유치원 졸업장이라고 한다. 10여 년 전쯤 한살림 활동가 출신인 아버지가 평택에서 '아침에 집'이라는 공동체를 시작하면서, 유현이는 이 공동체에서 자랐다. '남은들'은 '아침에 집'에서 불리는 유현이 이름이다. '아침에 집'은 공동체 식구가 일곱 명뿐인 단촐한 공동체지만 아이들 교육은 모두 공동체에서 맡아 한다. 그래서 유현이는 중학교,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초등학교까지 다니지 않았다. 대신 '아침에 집' 공동체와 자연을 학교 삼아 언니들에게 배우고 동생들을 가르쳤다. 배움과 가르침이 함께한 과정이었다. 

평택에 터를 잡은 공동체로서 2006년 '대추리 사건'은 남의 일이 될 수 없었다. '아침에 집' 식구들은 이 사건을 외면하지 않았다. 열일곱 유현이도 마찬가지였다. 알아서 집회에 참여했고 대추리의 사정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내가 유현이를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내가 서른넷일 때니까 딱 내 나이 반밖에 안 되는 여자아이였지만 누구보다 사려 깊고 당당했다.
 
지금은 주로 공동체에서 꾸리는 생활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일주일에 하루쯤 수원 '다산인권센터'에서 자원 활동을 하고 있다. 작년에는 일 년 동안 다산인권센터에서 라디오방송을 진행했다고 한다. 인터넷 라디오라는데 방송 작가 노릇을 했다고. 보기에 따라서는 단촐한 생활이지만 요즘은 통 글 쓰는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바쁘다고 한다. 유현이는 글 솜씨도 상당하다. 그래서 꾸준히 글을 쓰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많이 아쉽다. 헤어지면서 글 쓰는 걸 그만두지 말라고 부탁했다. 사실 내게 욕심이 좀 있다. 그것은 유현이가 쓴 글의 첫 독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오해하지 마시라. 이 바닥에서는 흔히 편집자를 작가의 첫 독자라 부른다). 

이 친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사뭇 궁금하다. 정규 교육과정을 전혀 밟지 않았음에도 당당하게 자기 삶을 일궈 나가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러면서도 자기 삶이 특별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특별한 부모님 덕에 자기는 남들과 다르게 살 수 있었을 뿐이라고. 그래서 오히려 고민이 많다고 한다. 어떻게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해야 할지 고민이란다. 어쩜 이토록 예쁘게 말할 수 있을까? 

일 때문이건 뭐 때문이건 가끔이나마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랬으면 좋겠다. 

2007년 1월 20일 토요일 작은책 글쓰기 모임 때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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