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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지학'에 해당되는 글 11건
2012.05.16 02:31

원래는 제19대 총선 총평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온 천하에 생중계된 통진당 사태로 그나마 얻은 성과마저 다 사라져 버렸다. 안타깝다. 민족주의 우파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꼴통스러울 줄은 정말 몰랐다. 

아무튼 이번 총선 때도 어떤 당이 어떤 공보물을 어떻게 만들어 보내는지 좀 유심히 살펴봤다. 단연 녹색당이었다. 공보물이 딱 한 장짜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자기네 빛깔을 충분히 보여 준 듯하다. 글꼴은 고딕 하나로만, 색은 검은색과 연두색 단 두 가지 색으로만 꾸몄는데도 무척 세련돼 보이고, 공약 다섯 가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구성을 짠 게 돋보였다. 녹색당답게 재생지를 쓴 것도 좋았다. 누가 기획하고 디자인했는지 궁금하다. 만나고 싶다. 

총선은 끝났다. 통합진보당에서 엔엘(NL) 꼴통들 다 치우고 녹색당, 진보신당을 모두 아우르는 진보대연합을 하면 좋겠다. 

클릭하면 자세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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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06:37
나는 일이든 놀이든 '거의' 모든 것을 매킨토시로 한다. 일할 때는 인디자인을 가장 많이 쓰는 편이고 놀 때는 이것저것 띄워서 논다. 영화 볼 때는 무비스트(Movist), 다운받을 때는 뮤토렌트(uTorrent), 음악이나 강의 들을 때는 아이튠스(iTunes), 블로그 글 쓸 때는 사파리(Safari)를 주로 쓴다. 편하고 예뻐서 좋다. 그렇지만 '모두'라고 하지 못하고 '거의'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터넷 뱅킹과 아래아 한글 때문이다.

다행히 요즘은 매킨토시에서도 인터넷 뱅킹을 할 수 있다. 인텔맥으로 넘어오기 전에는 인터넷 뱅킹은 꿈도 못꾸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부트 캠프(Boot Camp), 브이엠웨어 퓨전(VMware Fusion), 패러럴 데스크톱(Parallel Desktop)같은 소프트웨어를 쓰면 윈도, 리눅스 등 다른 운영체계를 돌릴 수 있다. 게다가 최근 몇몇 은행이 다른 운영체계에서 인터넷 뱅킹을 할 수 있게 홈페이지를 개편했다. 신한은행, 우리은행, 국민은행이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 문제는 단 하나, 아래아 한글뿐이다.  

그동안 매킨토시용 한글이 없었던 건 아니다. 우선 OS 9용 한글 97이 있었다. 윈도용 한글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는데, 한글용 글꼴 폴더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왜 글꼴을 시스템에서 관리하지 못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맥용답게 만들지 않아 전혀 예쁘지 않았다. 별로 쓰고 싶지 않았다. 한글 파일을 텍스트 파일로 바꾸고, 표나 각주가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로만 썼다. 차라리 다른 컴퓨터에 파일 띄워 놓고 확인하는 게 더 속 편했다. 2006년에는 OS X용 한글 2006이 나왔지만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불행하게도 한글 2006이 발표될 때는 애플이 시피유(CPU)를 파워피시에서 인텔로 바꾸는 과도기였는데, 한글 2006이 파워피시용으로 나온 것이다. 차라리 조금 늦게 인텔맥용으로 나왔으면 좋으련만, 지지리 운도 없었다. 제품 개발은 한글과컴퓨터가 한 게 아니라 두고테크에서 했다.  

3월 25일에 한글과컴퓨터에서 맥용 한글 오피스 뷰어를 발표했다. 일단 속는 셈 치고 내려받아 설치했다. 다행히 이번에 나온 뷰어는 좀더 맥용다워졌다. 깔끔한 모양새가 아크로뱃 리더(Acrobat Reader)를 보는 느낌이다. 표나 각주는 깨지지 않고 잘 나오고, 원고지 매수를 알려 주는 기능도 있어, 뷰어로서 기본은 갖춘 듯하다. 이 정도면 굳이 윈도를 띄우지 않아도 될 듯하다. 다만 '선택', '베끼기', '붙이기' 기능이 없다(프린트는 할 수 있다). 뷰어답게 보기만 하라는 것 같은데.... 물론 방법은 있다. 파일을 피디에프(pdf)로 변환해 필요한 부분을 긁으면 된다(매킨토시가 좋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모든 파일을 피디에프로 변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자료 관리, 검색이 아주 편하다). 이런 꽁수가 있지만, 다음 버전에서는 이 기능들이 포함되면 좋겠다.

다운로드는 여기서 '한컴오피스 한글 뷰어(맥용)' 

한컴오피스 한글 뷰어 아이콘


나쁘지 않은 뷰어 모양새. 각주가 깨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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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31 19:53
"죽음은 삶의 끝에 있지 않습니다. 언제나 삶과 함께합니다." 
실감나는 말이었다. 젊은 시절 사고를 당해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을 때다.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죽음이 바로 옆에 다가와 있었다. 그런데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말치고는 심오했다. 알고 보니 생명보험 회사의 광고였다. 

요즘 전에 미처 읽지 못한 신문들을 몰아서 보고 있다. 5월께부터는 바빠서 신문을 제목 정도만 대충 봤다. 나중에라도 볼 요량으로 쌓아 놓았는데, 두 달 치니 그 양이 꽤 된다. 대강이라도 훑어보고 버리려 건성으로 신문지를 넘기다가 위에 옮긴 문장이 내 눈에 팍 꽂혔다. 이 구절은 작년 10월 18일 치 <한겨레>에 실린 글(김지석의 종횡사해: 삶으로 죽음을 이기는 문화) 가운데 일부다. 올해 신문들뿐인 줄 알았는데 작년 신문도 이따금 끼어 있었던 것이다. 이 문장을 작년에 봤다면 특별하지 않은, 한낱 몸짓에 지나지 않은 구절일 터. 그러나 2009년 여름 내게 예사롭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정치 한답시고 대운하로 사기나 치는 소인배스런 잡놈들이 우글거리는 우리 시대에 정치가다운 빛깔과 향기를 남긴 두 사람의 죽음 때문이다. 오늘은 '선상님' 한 사람만 이야기하련다. 

흔히 정치인과 유권자 관계가 그렇듯, 김대중과 나 또한 중간에 다리를 놓아 줄 뭔가가 있어야만 하는 사이였다. 이를테면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 같은 데서 보도를 해 줘야 정치인 김대중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사이라고나 할까? 그러니 당연히 우리 관계는 평등할 리 없었다. 나는 뉴스에 나온 그 사람이 정치인 김대중이라는 것을 익히 알지만, 정치인 김대중은 유권자 심 아무개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을 테니 완전히 일방적인 관계라고 할 수밖에.  

대의민주제를 채택한 사회에서 정치인과 유권자가 직접 만나는 순간이 딱 한 번 있기는 하다. 바로 선거 때다. 그렇지만 김대중과 내게 이 또한 별 인연이 없었다. 김대중은 대통령 선거에 네 번이나 출마했는데, 난 한 번도 표를 준 적이 없다. 1971년 선거와 1987년 선거는 내가 태어나기 전이거나 너무 어려서 투표하지 못했고, 1992년 선거 때는 아쉽게도 두 달 차이로 투표를 하지 못했다.[각주:1] 1997년 대통령 선거는 내가 처음으로 참여한 선거였다. 그런데 다른 선거 때와는 달리 친구들 사이에 의견이 갈렸다. 대개 김대중과 권영길, 이렇데 두 편으로 나뉘었다. 다행히 이회창을 찍겠다는 바보는 없었다. 인기는 정권 교체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편이었고, 인철이랑 나는 "보수 야당 따위는 필요없어" 하는 쪽이었다. 결국 인기는 김대중에게, 인철이와 나는 권영길에게 투표했다. 이 선거에서 김대중은 이회창을 꺾고 대통령에 당선해 마침내 꿈을 이루었다. 그렇지만 난 그이가 대통령이 되는 데 전혀 도와준 것이 없었다.

우리 세대는 다르고 달라야 한다 생각했다. 그러기에는 삼김이라 불린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은 보수 정치인이란 이미지, 구시대 정치인이란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마빡에 피도 마르면서, 내가 신문도 좀 보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어떤지 어렴풋하게나마 가늠할 수 있게 되면서, 지금껏 배운 교과서와 현실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대다수 정치인들은 국가와 민족을 팔아먹는 모리배에 지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나는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그네들은 그저 노회한 늙은이들일 뿐이라고.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 세 사람을 싸잡아 비난하는 게 공평하지도 가당치도 않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사실 김대중은 남다른 정치인이었다. 근본이 똑똑하고 기품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것을 채우려 끊임 없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깜냥도 안 되면서 나라님 한 번 해 보겠다는 노욕에 사로잡혀 사욕을 채우는 데 여념이 없던 김영삼, 김종필에 견주기에는 급이 다른 정치인이었다. 낭중지추(囊中之錐)[각주:2]라고 했던가? 감추기 어려운 매력들이 그이에게서 은은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퍼져 나와 사람들을 매혹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연설을 정치인으로서 갖춰야 할 첫째 덕목으로 친다면 김대중은 단연 가장 출중한 정치인으로 꼽힐 것이다. 1964년 4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어느 의원에 대한 구속 동의안을 저지하기 위해 다섯 시간 이십 분 동안 연설한 일화는 유명하다. 거침없고 논리 정연한 김대중의 연설은, 그저 남이 써 주는 원고를 받아 교과서 읽듯 하는 다른 정치인들의 연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그이는 고매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이를 높게 평가하는 건, 그이가 아랫사람에게도 결코 하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랫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가 얼마나 성숙한지 가늠할 수 있다. 대통령이랍시고 아무에게나 가리지 않고 반말을 지껄이는 이 아무개는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김대중을 보면 내가 좋아하는 바틀렛 대통령이 떠오른다.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The West Wing)에 나오는 바틀렛 대통령(마틴 신이 연기했다)은 김대중을 모델로 삼은 듯 둘은 쏙 빼닮았다. 청중을 휘어잡는 연설가라는 점, 깊이와 폭을 알 수 없을 만큼 박식하다는 점, 엄격한 기품뿐 아니라 다른 이를 배려하는 재치도 겸비했다는 점, 어떤 사람이라도 허투루 대하지 않고 진심으로 존중하는 인격자라는 점이 그렇다. 분야는 다르지만 노벨상을 받은 것까지도 똑같고, 시리즈가 끝나 바틀렛 대통령을 볼 수 없는 것처럼 김대중 대통령도 더는 볼 수 없게 된 점까지 똑같다. 대통령이 어떠해야 하는지 7년 동안 보고 배웠으면 강아지라도 뭔가 배우지 않았을까? 어디 작은 나라에서 대통령 노릇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나라 정치인과 유권자들은 개만도 못하다는 소린가? 도대체 무얼 보고 배웠기에 이처럼 요망한 잡것이 나라님인 양 행세하려 들 수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이제 사자후를 토하는 연설가, 우리 시대 마지막 연설가가 이 땅을 떠났다. 
그리하여 이제 소통을 아는 정치인, 들을 귀 있는 정치인이 이 땅을 떠났다. 
그리하여 이제 힘 없는 이들을 편드는 투사, 무지렁이 같은 그들을 위해 목소리 높여 줄 투사가 이 땅을 떠났다. 
그리하여 이제 끊어진 조국의 허리를 다시 이은 통일 일꾼, 겨레의 앞날을 걱정하는 통일 일꾼이 이 땅을 떠났다. 
그리하여 이제 사람 사랑을 실천하는 휴머니스트, 가슴 뜨꺼운 휴머니스트가 이 땅을 떠났다. 
그리하여 이제 진정한 거인이 소인들의 나라를 떠났다. 

쇼펜하우어는 진실이 그 정당성을 얻으려면 세 가지 단계가 거쳐야 한다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모든 진실은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 단계에서는 비웃음을 사고, 둘째 단계에서는 격렬한 반대를 받는다. 마지막 셋째 단계에서야 비로소 자명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빨갱이라고 하기엔 너무 우파스러웠던 당신, 김대중 선생님. 
당신은 온갖 비웃음과 격렬한 탄압을 끝내 극복하고 이제 진정한 거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영면하시길…….

  1. 덕분에 선거권도 없는 애송이라는 놀림을 당해야 했다. 재미있는 건 나를 놀린 장본인인 인철이도 하루 차이로 투표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선거날은 12월 18일이었는데, 인철이 생일은 12월 20일이었다. 아마 1972년 12월 19일 생까지만 투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본문으로]
  2. 주머니에 든 송곳을 이름.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됨을 뜻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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